지난 6월 5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환경의 날이었다. 매년 주제를 정하는데, 예전 리스트에 저탄소 경제(2008년)와 녹색 경제(2012년)가 있는 걸 보니 환경-사회-경제를 포괄하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넓은 의미의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올해 주제는 대기오염(Beat Air Pollution)이다. 올해 주최국인 중국 이외에도 많은 곳에서 관련 행사가 개최됐다.
한국은 1996년부터 환경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정하고 매년 기념 행사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환경수도'와 '수소산업 특별시'가 되길 바라는 창원에서 '푸른 하늘을 위한 오늘의 한 걸음'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 참가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수소버스 개통식과 수소충전소를 방문하면서 수소경제 띄우기에 나섰다.
언론이 주목한 수소 말고도 대통령 연설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깨끗한 공기는 국민의 권리"이고, 사회 재난이 된 미세먼지 대책으로 탈 석탄과 친환경차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탈 석탄 로드맵과 내연기관 퇴출 로드맵은 없고, 이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정책도 찾아보기 어렵다.
연설은 감동적인 말로 끝났다. "지금 우리의 실천이 아이들의 미래입니다. 오늘의 한걸음이 우리 아이들의 푸른 하늘, 깨끗한 공기가 되도록 모두 함께 해주십시오." 어른의 실천은 항상 강조되지만 그동안의 노력은 세대 간 형평성을 악화시켜왔음이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많은 청소년이 미래를 위한 국제기후파업(Global Climate Strike for Future)을 벌이고 있고, 기후변화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청소년기후소송단이 이 대열에 합류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이 태어나기 전,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피델 카스트로는 '내일은 늦으리'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우리가 오래전에 끝냈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너무 늦다"고 강조하면서 더 강력한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지속가능성 용어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1992년, 한국에서 환경보존 슈퍼콘서트 '내일은 늦으리'가 기획됐다. 당대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모여 화제를 모았다. 특히 신해철이 만든 타이틀곡 <더 늦기 전에>는 크게 히트를 쳤다. 공연에 참가한 가수들이 합창한 이 노래는 1995년 마지막 콘서트 이후 점차 잊히고 있지만, 방송에서 가끔 소환되어 우리가 사는 환경을 돌아보게 한다.
"~/ 이것이 우리가 원한 전부인가/ 그 누가 미래를 약속하는가/ 이제 느껴야하네/ 더 늦기 전에/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 볼 때에/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주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풀어내는 세상은 낙관이나 비관 따위의 감응보다는 현실 자체를 장르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주력한다. 계급, 공간, 환경, 신체, 이 모든 것에 내장된 불평등과 부조리의 세계. 지상으로 억척스럽게 침투하려는 신화적 '계획'도 실패하고, 잠깐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소주 한 잔>으로도 탈주할 수 없는 불편하지만 강렬한 진실. 지위 상승은 예외일 정도로 드물고, 설령 성공하더라도 자리바꿈은 또 다른 모순과 적대를 낳는다.
<기생충>에 등장한 기정과 기우가 그렇듯이 1990년대 초중반에 출생한 이들은 이제 20대 중후반이 돼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드물지만 소수는 사회단체에 참여하고 있고, 청년의 입장에서 에너지 전환과 기후 정의를 실현하려는 활동도 있다. 최근 청소년 기후 운동은 10대가 주축이어서 입시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 청소년은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대 구분이 사회 현상을 규정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청년과 청소년의 입장을 어떻게 대변하고, 나아가 정치적 주체로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이 질문이 전환시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관리대상이 아니라 전환정치의 권리를 갖는 주인 되기가 필요한 이유에서다.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워킹그룹 권고안에 대한 청년 권고안'(2018년 12월)은 "우리 청년은 기후변화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자, 기후변화의 영향과 무거운 짐을 온전히 떠안게 될 첫 세대"라고 자신들의 위치를 밝힌다. 성장주의와 소비주의가 많은 것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적자생존 경쟁과 자기계발 속박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기후변화 대응의 당사자성을 수용한다면, 여기에 계층적 형평성의 원칙을 반영하여, 이들에게 탄소해방전선(Carbon Liberation Front)의 지휘권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탄소와 핵은 인류세 논쟁의 중심을 차지한다. "지구는 자기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들뢰즈와 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에 수록된 '도덕의 지질학'의 어려운 질문이다. 그들의 진의는 차치하고, 인간 사회가 일차적으로 비인간과 자연을 규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질학도 윤리와 정치 문제를 비껴갈 수 없다. 대신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경합이나 적대의 양상은 달라진다. 가깝게는 2050년 이전에 어떤 식으로 얼마나 신속하게 지구행성을 바꿀지, 멀게는 몇 천 몇 만 년이 지나 우주연방에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할지 상상해보자.
더 중요한 것은 더 늦기 전에 당장 착수해야 할 일이다. 거짓 이념 논쟁이 아니라 진짜 이념 논쟁이 가능하도록, 그리고 보다 녹색으로, 보다 적색으로 향할 수 있게 정치를 개편해야 한다. 시장과 산업을 모두의 필요와 자유가 충족되는 녹색경제 경로로 재설정해야 한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에 사회적인 것의 자율성이 확고해야 생활 세계와 시민 사회가 움직일 조건이 마련된다.
불확실하지만 대안적인 계획을 전략적으로 실행하려면 여러 각도에서 실험이 검토돼야 한다. 점진적인 혁신 수단에 단절적인 해체 수단도 접목해야 한다. 실제로 에너지 정책과 기후변화 정책의 방식과 효과는 다양하다. 시민 참여와 수용성 확대와 같은 착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에너지 전환과 기후 정의를 위한 세금과 요금체계, 그리고 산업구조 개편과 같은 인기 없고 논쟁적이지만 근본적인 정책도 필요하다. 당장의 정권 지지율에 집착해서는 시기를 놓치게 될지 모른다. 상호 보완적인 정책들을 엮여야 통합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부작용도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더 늦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미래를 결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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