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다가왔다.
군 입대 전에도 몇 차례 찾아왔던, 3학년 담임 맡았던 제자였다.
고3 어느 날,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빼앗았더니
가방을 주섬주섬 싸서는 교실을 나가버렸고,
불렀음에도 들은 채 않고 사라졌던 제자였다.
아이들도 다 보고 있던 상황, 담임인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교사의 권위와 자존심, 교권을 완전히 짓밟아버렸던,
내 교직생활에서 가장 황당함을 주었던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참았다. 부모님께 전화하지도 않았다.
다음날, 잘못을 시인하며 고개를 떨어뜨렸고
다시는 그런 무례한 행동 하지 않겠노라 약속한 것으로
두 손 꼭 잡아주면서 깨끗하게 용서하고 마무리하였다.
반성문도 쓰게 하지 않았다.
군 입대 전 찾아왔을 때, 그때의 용서가 고마웠다 하였고
그때의 용서에 힘입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까지 받았노라 자랑하였다.
체벌은 물론 기합 한 번 주지 않은 지 5~6년이 지났다.
매스컴에서는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들의 스트레스가 심하다 하는데
나도 그렇지만 우리학교 동료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스트레스 별로 받은 것 같지 않다.
아이들이 착하기도 하지만
이해와 용서와 기다림의 결과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너나없이 어리석고 실수한다 생각하여
이해해주고 용서해주고 또 용서해주면,
용서는 또 다른 용서를 낳고, 그래서
관계가 좋아지고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젊었을 때는 작은 잘못에도 신경질 내고 폭언에 체벌까지 하였는데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깨달음을 내 것으로 만들었고
이후에 아이들에게 따뜻한 미소로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용서를 시작하자 용서가 쉬운 일이 되었고
그 용서가 평화와 미소를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교육은 폭력 앞에 순종하는 척하도록 가르치는 데 있지 않고
미봉책으로 넘어가는 데 있는 것 아니라
마음이 바뀌도록 해야 한다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내일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상대방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부는 긴장된 상태가 아닌
즐겁고 이완된 상태일 때 더 잘 된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철부지 교사 시절, 종아리에 피가 보일 때까지 체벌하여
학부모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일벌백계(一罰百戒)보다 나은 교육은 없다 생각하였고
대학입시를 위해서 하는 체벌과 폭언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장 나쁜 감정은 질투, 가장 무서운 죄는 두려움,
가장 무서운 사기꾼은 자신을 속이는 자,
가장 큰 실수는 포기해 버리는 것.
가장 어리석은 일은 남의 결점만 찾아내는 것.
가장 심각한 파산은 의욕을 상실해 버리는 것.
그러나 가장 좋은 선물은 용서"
라는 프랭크 크레인의 가르침을 만났다. 이후
용서를 가르침이 그 어떤 교육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울러 말로써 가르치는 것보다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교육적이라는 생각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용서가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겠는가?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일벌백계(一罰百戒)가 최선 아니겠는가?
잘못을 범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받음을 경험케 해
다시는 그런 잘못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육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니었다. 이상하게 아니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처럼
용서를 심었더니 용서가 나오고
처벌을 심었더니 분노와 미움과 비뚤어짐이 나왔다.
용서는 행복과 평화를 만들었고
그 행복과 평화가 에너지를 만들었지만
처벌은 분노와 화를 만들었고
그 분노와 화는 평화와 행복을 깨부수는 결과를 낳았다.
최소 교육 현장과 가정에서만큼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아닌
사랑과 이해와 존중과 포용과 용서가 정답임을
교단을 떠날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그래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의 실수와 잘못에 미소 지어주면서
'괜찮아, 실수하지 않고 사는 사람 누구 있더냐?'
'학창 시절 어리석지 않은 사람 누구 있더냐?'
'내가 용서한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
를 중얼거리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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