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물었다. 발아(發芽)의 3대 조건이 무엇이냐고?
발아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의 아이들이 많아서
'싹이 틀 발(發)' '싹 아(芽)'로
'식물의 싹이 나는 것'이라 설명해 주었지만
흙, 물, 햇볕, 영양분, 공기, 비료 등을 이야기할 뿐
'온도' '산소' '수분' 세 가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서너 명의 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공부하는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가?
배웠음에도 알지 못하는 공부,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공부,
생각 없이 암기하고, 이해 없이 암기만 하였다 잊어버리는 공부.
10개월간 독일 고등학교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학생은,
독일 친구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하던데.......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해왔고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해 왔음이 부끄러워졌다고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는데
멜로디의 아름다움에 취해서가 아니라
자막으로 나오는 노랫말 음미하는 일에 재미 붙였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부끄럽게도 젊은 날에는
노랫말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리듬 박자에만 신경 쓰면서 흥얼거렸다.
노랫말을 음미하며 노래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새로운 즐거움이 찾아와 날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노랫말의 의미도 모른 채 노래 흥얼거리는 것은
절반의 즐거움일 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만날 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헤어질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 잠깐만 잠깐만……"
정신이 맑아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말이었다니?
몇 십 번 들었기에 가사까지 외울 수 있는 노래임에도
생각 없이 듣고 불렀으며 진정한 맛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커다란 슬픔과 함께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린 미워하지 말아야 해......."
라는 '파초'의 노랫말 역시 근래에 깨달은 기쁨이다.
바보였다.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중얼거리기만 하였던 바보,
생각해보려는, 음미해보려는 노력 전혀 하지 못하였던 바보.
선생님의 강의 듣긴 들었지만 친구에게 설명해주진 못한다.
노트에 적었지만 적었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 풀었으면서도 설명할 능력은 없다.
대충 아는 것은 많지만 진짜 아는 것은 너무 적다.
대한민국 학생의 슬픈 민낯이다.
생각하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지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어른들의 역할이다.
아이들은 아직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신하여 생각해주는 것은 나쁘지만
생각할 기회 주고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른들의 책무다.
육체의 성장을 위해 음식을 제공하듯
영혼의 성장을 위해 생각할 기회를 주고 생각하도록 도와야 옳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일보다 중요한 어른의 역할은 없다.
질문하고 또 질문하라.
생각할 시간을 주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라.
함께 고민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출제위원장은 매 번
사고 능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출제하였노라 이야기한다.
틀린 말 아니라 생각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졌다.
단순 암기력 측정을 위한 문제 아닌
사고력 측정을 위한 문제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생각할 시간 너무 적게 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문제가 너무 많고 지문도 너무 길어
생각할 여유 가지고 깊게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한다면
지문의 길이를 줄이든 문제 수를 줄이든
시간을 더 주든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스스로 생각할 기회 주고
스스로 생각하여 결론 이끌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교육에서 엄청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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