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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한국GM을 따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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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한국GM을 따라하고 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신종 민주노조 파괴 수단, 회사 분할

"회사 분할시 신설 법인에 기존 단체협약은 승계됩니까? 노동조합 승계는요?"
"관계 법령에 따라 여러분의 기존 근로조건과 고용은 모두 승계됩니다."
"누가 고용과 근로조건 물어봤습니까? 단협과 노조 승계가 되냐고 물었잖아요."
"여러분 고용과 기존 근로조건은 모두 신설법인으로 그대로 승계됩니다."

고장난 AI나 챗봇(Chat-bot)과의 대화가 아니다. 작년 연말에는 한국GM에서,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하나는 인천에 본사를 둔 완성차업체이고, 다른 하나는 울산에 본거지를 둔 조선소인데 왜 저런 똑같은 광경이 펼쳐진 것일까?

회사를 쪼개면 노조도, 단협도 쪼개진다

바로 '회사 분할', 쉽게 말해 기업을 쪼개는 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에 GM이 연구개발 부문을 분리해 멀쩡한 회사를 2개로 쪼갠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한국GM 2대 주주인 산업은행도 발끈했고 이는 GM과의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결론은 가처분 소송까지 승소해놓고도 산업은행이 GM의 회사 분할에 동의해 줌으로써 한국GM에서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가 신설법인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 신설법인으로 옮겨지는 노동자들의 임금·고용과 노동조건은 어떻게 될까? 노·사 합의로 조합원들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을 규정해놓은 단체협약은?

이런 것들이 궁금해 조합원들이 질문하면 한국GM은 매번 녹음기를 튼 것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기존 근로조건과 고용은 모두 승계됩니다." 단체협약 승계가 어찌 되는지를 묻는데 그 답은 하지 않고 동문서답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체 단협을 승계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법인이 쪼개진 뒤 기존 단협은 무효가 되었고 새로운 단협을 체결하기 위해 신설법인과 완전히 처음부터 교섭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신설법인은 올해 3월에 무려 70개 조항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단협 개악안을 던지게 된다. 즉, 회사의 저 답변은 "절대로 단체협약 승계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이미 2017년 2월에 회사를 4개로 쪼개는 분할을 감행한 바 있다. 당시에도 단협을 승계하지 않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저항이 이어졌다. 3~4개월 가량 투쟁이 이어지자 결국 현대중공업은 기존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을 승계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하게 된다.

문제는 그때가 아니고 지금이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계획과 함께 발표된 인수방법에 또다시 현대중공업을 2개로 분할하는 계획이 들어 있었다. 이번에도 단협은 승계하지 않을까? 하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지난번엔 단협 승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지만, 이번엔 "고용·근로조건은 승계됩니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아하, 이거 한국GM에서 본 상황과 완전히 똑같다. 회사의 저 답변은 "절대로 단협 승계 따위는 해주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회사 분할 문외한, 한국의 노동법

회사가 자기 필요에 따라 분할을 실시하는데, 노동자들은 이에 반대할 권리도 없다. 회사 분할에 반대해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ILO 협약 비준도 하지 못한 노동후진국 이 나라 행정부는 ‘권리분쟁’ 운운하며 불법이라고 선언할 것이다.

그런데 수십 년 싸워서 쟁취해온 단체협약은 회사가 분할되면 그날로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불공정한 것 아닌가? 회사 분할에 반대할 권리도 없고, 싸울 권리도 없으며, 그냥 앉아서 단협을 모두 빼앗겨야 한다니 말이다.

한국의 노동법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까? 놀랍게도 이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다. 미국처럼 기업 분할·합병이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분할·합병 과정에서 그동안 한국 자본가들은 노동조합 권리에 대한 공격을 자주 감행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회사 분할과정에서 노사관계가 문제가 되면 모조리 법원으로 갔다. 하지만 단협 승계가 쟁점이 된 사례는 없었고, 대부분 고용이나 근로조건 승계가 쟁점이었다. 회사가 분할되더라도 고용은 물론이고 단협과 노조 승계까지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인사이드경제>가 아는 한 회사 분할과정에 단협을 승계하지 않아 소송까지 간 사례는 2017년 현대중공업이 사상 최초였다. 한국에 노동관계법이 만들어진지 무려 67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사실 이 사건에서 노조가 패소하리라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고용과 근로조건 승계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모두 승계하라는 판결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노조가 제기한 가처분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회사 분할시 단협을 승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처분 판결이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중공업이 단협 승계에 합의했기 때문에 노조는 소송을 취하했다. 따라서 상급 법원의 태도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정리를 해보자면,

△법령에는 명문의 규정이 전혀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고용과 근로조건은 신설법인에 승계되어야 한다.
단체협약 관련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으나, 2년 전에 단체협약 승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하급심 판례가 처음 나온 바 있다.

한국의 노동법이 알고 있는 회사 분할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모든 것이 이 수준이다. 자, 이런 상황전개를 가장 관심 있게 쳐다본 이들이 누구일까? 바로 한국의 재벌 대기업과 대형 로펌이다. "아하~ 회사를 쪼개면 노동조합도 쪼개고 단체협약도 쪼개고 노동자들의 힘도 쪼갤 수 있구나! 저런 훌륭한 방법을 지금까지 몰랐다니."

신종 노조 파괴수단, 회사 분할

현대중공업 분할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쌓은 자본가들이 다음 먹잇감으로 선택한 것은 한국GM이었다. 한국의 노동법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이들은 신종 노조탄압 수법을 개발한 것이다. "노사관계 골치 아프면 회사를 분할해요. 그리고 단협 승계를 안해주겠다고 버티면 노동조합 손발을 꽁꽁 묶어둘 수 있어요."

결국 올해 1월 1일자로 연구개발 법인(GMTCK)이 분리·신설되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 GM 측은 단협 승계는 물론이고 조합비 거출(Check-Off)마저 거부하고 있다. 작년 12월 31일까지 멀쩡하게 인정해주던 노조 전임자들의 전임도 하루아침에 불인정으로 바뀌었다.

고용과 근로조건은 승계한다고 했으니 그나마 다행인 게 아닐까? 하지만 기존 단체협약이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회사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밟으면 언제든지 임금도 깎을 수 있고 근로조건도 개악시킬 수 있다.

신설법인(GMTCK) 노사 교섭에서 사측은 △배치전환시 조합원 권리 삭제 △징계와 해고 사유 확대 △기존 임금테이블 폐지 △회사 기준 성과급제 도입(성과급 노사 교섭 불가)을 고집하고 있다. 지난해 구조조정 사태가 끝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GM은 노사분쟁을 주도하고 있다.

이 실험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본가들은 현대중공업에 2차 회사 분할을 일으키며 새로운 실험을 벌이고 있다. 1차 분할 시에는 막판에 단협 승계 합의서를 써줬지만, 한국GM에서 경험을 쌓은 자본가들은 이번엔 그냥 밀어붙이겠다는 태세이다.

완벽한 닮은꼴, 현대중공업과 한국GM 회사 분할

현대중공업의 1차 회사 분할은 여러 면에서 ‘예행연습’에 불과했다. 오는 5월 31일 주주총회에서 의결할 현대중공업 2차 회사 분할과 한국GM 연구개발법인 분할은, 앞서 얘기한 노조 쪼개기, 단협 쪼개기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사이드경제>는 이걸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① 회사 분할로 중간지주사 만들기

현대중공업 2차 분할은 현대중공업을 물적 분할을 통해 2개로 쪼갠 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현대중공업을 기존 회사의 자회사로 만들어 버린다. 기존 회사(존속법인)는 향후 대우조선 인수를 주도하는 새로운 ‘중간지주회사’가 되며 이름도 ‘한국조선해양’으로 바뀐다.(아래 그림)

▴ 4월 29일 <현대중공업 법인(물적)분할 주주총회 무엇이 문제인가> 긴급토론회,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실장 발제문

한국GM 역시 회사 분할과정에서 캐딜락 수입판매 법인이었던 GM코리아(캐딜락코리아)를 GM 아태본부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뿐이 아니라 한국GM과는 로열티 지급계약을 체결하고 GMTCK와는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며 사실상의 중간지주사로 도약하게 된다.(아래 그림) 현대중공업의 그림과 비교하면 놀랍도록 유사하지 않은가.


② 특수관계인에게 이윤 빼돌리기

현대중공업 관계사의 주요 업종은 배를 짓는 사업이다. 그런데 실제로 배를 짓는 회사는 맨 밑의 자회사로 내려놓고, 그 위에 촘촘히 중간지주-현대중공업지주를 쌓아올린다. 배를 짓는 자회사 현대중공업 이윤은 얼마든지 중간지주나 지주사로 빼돌릴 수 있다. 특허권이나 각종 지적 재산권 역시 자연스럽게 중간지주나 지주사 차지가 될 것이다.

회사 분할로 한국GM이 본사와 체결해온 기존 CSA(비용분담계약)가 해지되면서 기존 기술사용권이 사라지게 된다. 그 CSA 계약은 GM 아태본부라는 새로운 중간지주사와 체결하면서 아태본부는 한국GM으로부터 로열티를 지급받게 된다. 지적 재산권과 라이센스 관련 권한도 모두 GM 아태본부가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현대중공업에서는 지주사와 중간지주사를 지배하고 있는 정몽준 일가, 그리고 한국GM에서는 GM 본사라는 특수관계인에게 이윤을 빼돌릴 수 있게 된다. 실제 생산업무를 담당하는 맨 밑의 자회사에는 이윤이 남지 않도록 만들어 노사 교섭에서 임금·성과급 등을 쥐어짜기 위한 협박수단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③ 굿 컴퍼니, 배드 컴퍼니… 노동자 양보경쟁 시키기

한국GM 회사 분할이 도대체 존속법인에 유리한가, 신설법인에 유리한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글로벌에서 연구·개발 역량은 최고라고 인정받았다"라며 신설법인이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었고, "품질 면에서는 한국GM이 단연 1위다"라며 존속법인이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둘 다 틀렸다. 존속법인이건 신설법인이건 GM 아태본부의 통제와 지휘 아래 이윤을 빼앗기는 하청회사가 되고 만 것이다. 지금 신설법인에 회사 기준 성과급제를 들이민 것은, 결국 존속법인에도 똑같은 족쇄를 적용하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현대중공업 역시 생산법인이 맨 밑의 자회사로 내려가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부채를 떠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겨우 몇 백 명만 남을 것으로 보이는 존속법인에 오히려 자산이 집중된다. 결국 어디가 굿 컴퍼니고 어디가 배드 컴퍼니인가를 놓고 노동자들 사이에 끝없는 양보경쟁을 시키며 ‘바닥으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가 진행된다.

④ 모두 비상장사로 만들어 기업정보 숨기기

애초에 현대중공업은 상장사, 한국GM은 비상장사였다. 한국GM은 기업정보와 관련해 1년에 한번, 그것도 대부분의 내용을 암호로 채워넣은 ‘감사보고서’ 하나만 공개될 뿐이다. 그나마 현대중공업은 사업보고서는 물론이고 분기보고서와 IR(실적보고) 자료 등 비교적 많은 기업정보를 공개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2차 분할을 통해 ‘비상장사’로 변신하게 된다. 실제로 배를 짓는 현대중공업의 기업정보는 이제 베일 뒤에 숨게 된다. 정몽준 일가는 지금까지 GM이 그랬던 것처럼, 현대중공업 회계장부를 얼마든지 망가뜨릴 수 있고 그 과정 일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구린 냄새를 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두 개의 사례가 닮은꼴, 아니 판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중공업과 한국GM 사태 전개 과정에 모두 산업은행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 현대중공업과 한국GM 회사 분할 관련 같은 법률사무소(김&장)가 대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이쯤 되면 "자본가들의 다음 타겟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 관심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놓아두면 과거 타임오프·창구단일화 조항을 활용해 창조컨설팅과 같은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업체가 창궐하던 시절이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논의를 모아야 한다. 기업 분할·양도·매각 시 단체협약과 노동조합을 승계하도록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사실 이런 요구가 낯선 것도 아니다. 하청·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떨어야 했던 300만~400만 간접고용 비정규직에게도 절실한 요구이다.

5월 31일에 현대중공업 주주총회가 예정되어 있고, 한국GM 신설법인은 이미 80% 이상의 높은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시킨 상태이다. 그렇다면 ILO 협약 비준 요구와 함께 노동자들이 5~6월을 뜨겁게 달굴 의제가 되기에 충분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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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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