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가 여야 4당 패스트트랙 추진을 위해 연이어 초강수를 뒀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5일 오후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인 권은희 의원을 사임시키고, 임재훈 의원을 대신 보임시켜 달라는 요청을 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를 허가했다. 국회 관계자는 이날 오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사보임 절차가 완료됐다"고 확인했다.
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는 앞서 이날 오전 패스트트랙 반대파였던 오신환 의원을 강제 사임시키고, 찬성파인 채이배 의원을 대신 보임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채 의원과 권 의원은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 및 사개특위 간사·위원들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아 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들의 성안 작업을 오후 내내 해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권 의원은 공수처 등 사안에 대해 4당 원내대표 잠정합의안과 다른 내용을 주장했고, 김 원내대표는 이에 권 의원을 사임시키고 확실한 찬성파인 임재훈 의원으로 교체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과 채 의원은 오후 5시 50분께 협상장 밖으로 나와 별도 논의를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고, 채 의원은 "공수처 부분에 대해 조율 중"이라고 했다.
사개특위 위원장인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앞서 협상 도중 잠시 회의장을 나와 기자들에게 "(권 의원이) 본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본인 생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개인 생각은 있는 것이지만 접점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해 권 의원이 다른 협상 참여자들과 의견차를 빚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의원은 "권 의원이 그동안 간사가 아니었으니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하나씩 짚고 나가니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협상이 길어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개특위 관련 양당 원내대표 및 사개특위 위원들 간의 회의는 이날 오후 내내 열렸다.
권·임 의원의 사개특위 사보임안은 앞서 오·채 의원 사보임 때와 마찬가지로 의사과에 팩스를 보내는 방법으로 이뤄졌으며, 병원에 입원 중인 문희상 의장의 구두 지시에 의해 결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지도부가 반대파 의원들을 연달아 사보임시키는 초강수를 둔 배경은, 민주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 위원 가운데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이 무산되기 때문이다. 사개특위는 민주당 8명, 한국당 7명, 바른미래당 2명, 평화당 1명으로 구성돼 있고,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서는 전체 18명의 3/5인 11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권 의원은 전날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 정책위의장(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참석한 자리에서부터 "민주당은 수사-기소권을 분리하되 판사·검사·경무관 이상 경찰에 대해 기소권을 주는 것을 수정 제안해 왔으나, 수정 제안은 공수처가 옥상옥의 사정기관으로 변질되는 데 대해 아무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4당 원내대표 합의에 민주당 안을 하나의 예시로 두고 '실질적 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재수정 제안을 했고 이 재수정 제안에 여야 4당이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야 원내대표 합의와 결이 다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권 의원은 전날 회의에서 "때문에 사개특위를 열어 실질적 견제가 필요한 검사 등의 기소권을 국민에 돌려주는 기소대배심제 등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말하고, 회의 후 <프레시안> 기자와 만나 "당장 내일 공수처법이 사개특위에서 성안(成案)될지도 모른다"며 추가 수정 없이 4당 원내대표 합의안대로만 법안이 작성될 경우의 찬반 여부에 대해선 "특위에서 얘기를 해봐야 한다"고만 답해 불투명한 태도를 보였었다.
권 의원이 사임된 후, 여야 4당 원내지도부와 사개특위 위원들은 권 의원이 반대했던 4당 원내대표 합의안 내용대로 법안을 만들어 국회 의안과에 접수시켰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 설치법 법안에는 민주당·바른미래당 사개특위 위원 10명이 서명했고, 바른미래당에서는 채이배 의원과 임재훈 의원이 발의에 참여했다. 정개특위 소관 공직선거법은 이미 전날 심상정 위원장 대표발의로 접수돼 있어, 패스트트랙 지정까지는 두 특위 회의 개최 및 투표 절차만을 앞두게 됐다.
다만 잇단 강행돌파로 김관영 원내지도부는 거센 당내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오 의원 사보임 때부터 김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해온 바른정당계는 권 의원까지 사보임됐다는 소식에 격분했다.
바른정당계 구심인 유승민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방금 권 의원과 통화했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강제 사보임임을 확인했다"며 "권 의원은 공수처법에 대해 본인 주장을 계속해 왔고 그것이 합의되지 않으면 통과시킬 수 없다고 했는데 5시 50분쯤 '그때까지 합의한 내용으로만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해 (권 의원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협상)장소를 떠났고 그 직후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을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어제부터 사보임계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며 "거짓말을 일삼고 이런 식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김 원내대표와 이에 동조하는 채이배·임재훈 의원 모두 정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하고 "(사개특위를) 끝까지 몸으로 막겠다"고 선언했다. 유 의원과 오신환·유의동 의원 등은 이날 오전 오 의원의 사보임계가 처리된 후 여의도의 한 중국집에서 오찬 회동을 하며 대책을 상의하고, 사개특위 협상장을 방문해 민주·바른미래 원내지도부에 항의의 뜻을 전달한 후 운영위 회의장 앞에서 패스트트랙 저지 농성을 해오고 있었다.
바른미래당 내에서는 현재 손학규 대표와 김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호남계 의원들만 패스트트랙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창당 대주주인 유승민·안철수계 의원들은 오히려 이에 비판적이거나 거리를 두고 있다. 이태규·이동섭 의원 등 안철수 직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지난 23일 패스트트랙 합의안 추인 의원총회에서도 반대 투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찬성한 것으로 알려진 김삼화·신용현 의원도 이날 오전에는 '오 의원 사보임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며 패스트트랙 찬성파 대열에서 이탈했다.
특히 당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던 김삼화 의원은 이날 당직 사퇴 의사까지 밝혔다. 김 의원은 "선거제 개혁 노력 일환으로 팩스트트랙이 추진됐으나, 그 과정에서 당을 분열로 몰고가고 사분오열되는 모습에 참담했다"며 "당이 살자고 나선 길이 당을 분열시키고 무너지(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에 오 의원에 대한 사보임 반대 의견에 동의했으나 이는 지도부 의견과는 다른 것이므로 더 이상 수석대변인을 맡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오늘자로 직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이날 임명된 신임 사개특위 위원 두 명은 모두 손 대표와 가깝다. 임재훈 의원은 민주당 사무부총장 등을 지낸 당직자 출신이고, 채이배 의원은 현재 손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 이날은 손 대표의 최측근인 이찬열 의원이 유승민 의원을 "좁쌀영감"이라고 비난하며 "꼭두각시들 데리고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에 유 의원의 측근인 권성주 전 대변인이 이 의원을 허위사실 유표 및 폭언, 명예훼손으로 당 윤리위에 제소하기도 했다. 다만 유 의원은 이에 대해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오늘은 사개특위를 막는데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유 의원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뿐만 아니라, 한국당 의원들도 사개특위 회의가 열릴 만한 회의장 문앞마다 진을 치고 결사 저지 태세에 들어가 있다. 사개특위·정개특위 회의 개의와 패스트트랙 지정까지 남은 최후의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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