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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97년 위기의 재연을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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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97년 위기의 재연을 막아라"

<데스크 칼럼> '一株一權'의 경제법칙을 세워야

경제가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위기도 보통위기가 아니다. 97년 외환위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상황의 전개다.

***"97년의 악몽이 떠오른다"**

강남 청담동에서 부자고객을 많이 상대하는 H은행 지점장이 11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부자고객들이 달러를 많이 사들이고 있다. 이러다가 한국에서 전쟁이 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을 한다. 돌아가는 정세가 하두 뒤숭숭하니, 유사시에 대비해 달러 사재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거주자외화예금 추이를 보면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8일 98억7천만달러였던 거주자외화예금이 6일 현재 1백39억7천만달러로 한달 사이에 41억달러나 폭증했다. '달러 사재기'가 유한계층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부자들만 위기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서민이나 중산층들이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과 비교하면 부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사치스러울 정도다.

한 중년 택시기사의 말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손님이 급속히 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IMF때보다 더 손님이 없다. 길거리에 빈택시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밤에 북창동이나 신사동 같은 유흥가에 가봐라. 예전 같으면 합승도 못해 난리들이었으나 지금은 빈택시들이 줄 서 있다.

이같은 풍경은 지금 택시업계가 직면한 위기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지금 택시회사마다 절반의 택시가 영업을 나가지 않고 서 있다. 나가봤자 가스값만 날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유가가 폭등, 버스값.전철값 등이 줄줄이 오르는 데도 감히 택시값을 올리자는 소리를 누구도 못한다. 손님이 없는 판에 택시값마저 올리면 더 손님이 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끽소리 못하고 끝없는 늪으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재래시장 사람들을 만나봐도, 백화점 관계자를 만나봐도, 홈쇼핑 관계자도 만나봐도 얘기는 한결 같다. "97년의 악몽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모 재벌그룹 구조본 관계자는 "그룹의 주된 수익원이던 계열사 카드사의 올해 목표를 연초의 5천억원에서 최근 제로(0)로 하향수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수년간 1조원이상을 벌어들이던 카드사업에서 올해는 적자나 안보면 다행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작금에 돌아가는 경제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컨츄리 리스크'에 '기업 리스크' 가세**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은 대단히 복합적이다.

가장 큰 외생변수는 이라크전이다. 미국의 일방주의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초래된 위기로, 우리 힘으로 쉽게 바꿀 수 없는 고정변수다.

이같은 외생변수외에다 설상가상으로 우리경제에는 북핵위기마저 가세, 한층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북핵위기라는 것도 우리 힘이나 의지만 갖고선 쉽게 타개할 수 없는 외생변수에 가까운 위기요소다.

하지만 이처럼 가뜩이나 울고 싶은 데 뺨 때리는 격으로 한국경제를 불안하게 보고 있는 국내외 투자가들을 결정적으로 자극한 사건은 SK 분식회계 사태다.

SK 분식회계 사태는 정말 힘든 시점에 터졌다. 분식회계란 지난해 미국의 엔론사태 이후 국내외 투자가들이 가장 기피하는 재계의 암세포 같은 존재다. 이 암세포가 재계 랭킹 3위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발견된 것이다.

'신뢰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IMF사태후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이제 우리는 정말 깨끗해졌다"고 다짐해 왔었다. 이들의 주장을 1백% 믿지는 않았으나, IMF전과 비교할 때 국내외 투자가들의 한국기업 신뢰도는 많이 높아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SK 분식회계 사태로 일순간에 그 신뢰가 깨진 것이다. "역시 한국의 기업들은 강적이다. 바뀐 게 없다"는 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장의 싸늘한 시선인 것이다. '신뢰의 위기'가 재도래한 셈이다.

이라크전이나 북핵위기로 우리나라의 '컨츄리 리스크(국가위험도)'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분식회계 사태라는 '기업 리스크'까지 가세한 것이 지금 우리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이다.

문제는 이같은 기업 리스크가 SK 한 군데 문제로 그치지 않고 다른 대그룹들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모 재벌그룹의 구조본 임원은 "외국투자가들이 이번 분식회계를 SK 한 곳의 문제로 보지않고 다른 그룹들도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는 냉담한 분위기"라며 "이번 위기에 제대로 대처 못하면 한국 기업 전체에 대한 신뢰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국 금융의 경이로운 약진**

불행중 다행인 것은 IMF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금융계의 위기 대응력이 대단히 향상됐다는 점이다.

SK채권단은 검찰의 SK 분식회계 수사결과 발표가 있은 11일 긴급회의를 갖고 대단히 충격적 결정을 내렸다. 최태원 SK회장이 보유한 그룹 주식 전체를 매각하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최근 해외채권단이 채권 조기회수와 거래 중단을 추진할 정도로 크게 실추된 SK의 '기업 신인도'를 회복시키기 위해선 그룹 오너인 최회장가 그룹에서 떠나야 한다는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과거에도 채권단은 몇몇 재벌의 오너십을 회수한 적은 있다. 한보철강, 대우그룹 등 IMF사태후 줄줄이 쓰러진 재벌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은 이미 부도가 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후 취한 '사후적 조처'들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이번 SK에 대한 '사전적 조치'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최태원 회장은 아직은 SK글로벌의 보유주식 매각 의사만을 밝히고 있는 상태여서 향후 추이를 예견하기란 이른 상태다. 하지만 만약 최회장이 채권단 요구에 굴복한다면, 이는 한국자본주의사상 최초로 오너가 분식회계라는 경영범죄의 책임을 지고 오너십을 상실하는 혁명적 사건으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한국 금융의 약진을 보여주는 반가운 한 증거다.

***시장개혁을 둘러싼 두가지 상반된 견해**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몫이다. 정부는 최근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답은 기업 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단호한 '시장개혁'이다.

그러나 시장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방법론과 관련해 두가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도 그 한 가운데에서 최종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체질이 너무 허약한 만큼 수술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경제를 살려놓고 나서 개혁을 해도 해야지 지금 잘못 수술을 하다가는 환자를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수술 시기상조론'이다.

하지만 한 은행장은 정반대 주장을 편다. "저 건너편에서 폭풍이 몰려들고 있을 때 비탈에 선 나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한 뿌리를 깊게 내리는 일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요컨대 '컨츄리 리스크'라는 우리 혼자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만 놓고 개탄하기보다는 '기업 리스크'라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위기의 제거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다른 뱅커는 "SK사태를 계기로 차제에 '일주일권(一株一權)'의 주주자본주의 철학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주일권이란 주식 하나에 한 주의 권리가 있을뿐이라는 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벌 오너들은 불과 전체주식의 3%만 갖고서 나머지 주주들을 묵살하고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런 경영을 하려면 애당초 회사를 상장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왜 기업을 상장해 '타인자본'을 끌어들인 뒤 전횡을 계속하는가. 일주일권이라는 자본주의 정신에 충실해야만 한국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대다수 시장 전문가들은 후자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수술 시기상조론'은 과거 수십년간 되풀이돼온 주장이나, 그 결과는 이번 SK사태에서 볼 수 있듯 시간벌기에 불과했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위원장 누구를 꼽을 것인가가 중요**

그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이 어느 때보다 주목되는 시점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후 진통끝에 거의 모든 요직에 대한 인사가 끝났다. 단 한곳, 금융감독위원장 자리만 남았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초대 금감위원장은 국내외 투자가들의 고조된 '기업 리스크'를 해소시켜줄 수 있는 엄정한 민간인이 맡아야 한다. 특히 해외투자가들이 절대 신뢰하는 엄격한 '재벌 감시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누가 그런 인물인지는 노 대통령도 이미 알고 있을성 싶다.

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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