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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이 말하는 '재벌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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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이 말하는 '재벌과의 전쟁'

"대통령 의지만 분명하면 재벌개혁 반드시 성공"

노무현 새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로 유력한 김종인 전경제수석(63)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지대하다. 아니 관심이라기보다는 긴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성 싶다. 특히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노무현 새정부의 재벌개혁 의지가 분명히 드러난 만큼 재계의 긴장은 극에 달한 상태다.

이런 마당에 강력한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씨의 출현에 재계가 초긴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한 재벌그룹 구조본 관계자는 17일 "우리 정보 네트워크를 동원한 결과 차기 경제부총리는 김종인씨로 거의 굳혀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김종인씨는 도대체 왜 재계에 그렇게 적대적인지 모르겠다"고 불만 섞인 긴장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같은 재계의 긴장에 김 전수석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반응이다. 그가 경제수석으로 재직하던 지난 90~92년에 말 그대로 치열한 전쟁이 벌여졌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한번 해 보자는 거냐. 대통령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김종인 전 수석은 얼마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90~92년 청와대 경제수석 재직시 '정치권력과 재벌의 관계'를 극명히 보여주는 자신의 몇가지 경험을 말했다.

김 전 수석에 따르면, 그는 원래 88년 노태우 정권 출범때도 경제수석 가능성이 깊숙이 타진됐었다. 하지만 노대통령이 부담스러웠던지 그를 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노 정권 초기에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노대통령이 다시 그에게 청와대 입성을 타진한 것은 90년초의 일이다. 노대통령의 2백만호 건설로 부동산 거품이 극에 달하고, 이 와중에 재벌들의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재벌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들끓던 때였다. 강력한 재벌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김 전 수석은 노대통령에게 두가지 요구를 했다.

첫번째는, 경제문제에 관한 전권(全權)이었다.
두번째는, 대통령이 재벌총수와 독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노대통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고, 그는 청와대 경제수석이 됐다.

경제수석이 된 후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재벌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토지 매각이었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잡지 않으면 경제가 골병이 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노대통령으로 하여금 5대 재벌총수들을 청와대로 함께 불러 만나도록 했고, 노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재벌총수들을 불러들였다. 노대통령은 김종인 수석의 주문대로 재벌들이 보유하고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즉각 매각하도록 주문했다. 재벌총수들은 침통한 분위기였으나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고 물러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꿩 궈 먹은 식으로 아무런 조처가 나오지 않았다. 김종인 수석은 강영훈 당시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총리께서 한번 재벌총수들을 만나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독려해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뒤 강 총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수석, 우리나라에서 총리는 허깨비인가 봐. 내가 한번 보자고 해도 총수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아무도 만나려 하질 않아."

김수석은 "수고 많으셨다"고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5대 재벌 기조실장들을 소집, 호통을 쳤다.

"한번 해 보자는 거냐. 대통령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단호한 최후통첩이었다. 그때서야 경악한 재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벌들의 '트릭'**

그후 재벌들이 보인 반응은 흥미로왔다.

처음에는 10대재벌이 비업무용 부동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정리한 계획서를 갖고 왔다.

그러자 나머지 재벌들이 앞다퉈 "왜 10대 재벌만 파느냐. 우리도 비업무용 땅을 팔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섰다. 가만히 있다가 무슨 날벼락을 맞을지 모른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30대 재벌들까지 앞다퉈 매각 계획서를 내놓았다. 그 결과 당초 정부가 목표치보다 두배 이상 많은 3천여만평의 비업무용 땅을 처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도 교묘한 '트릭(속임수)'과 저항은 계속됐다. 운수재벌인 H그룹이 그런 대표적 예였다.

H그룹은 제주도에 4백만평의 비업무용 땅을 보유하고 있었다. H그룹은 이 가운데 3백만평을 처분하겠다고 밝혀왔다. 외형상 큰 성의를 보인 것인양 비쳤다. 김종인 수석은 그러나 H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제주도 땅의 지적도를 가져오라 해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 결과 결정적 트릭을 찾아낼 수 있었다. H그룹이 내놓은 땅 3백만평은 별 쓸모 없는 땅인 데 반해, 안 내놓은 1백만평이야말로 그야말로 알토란이었던 것이다.

김종인 수석은 곧바로 H그룹을 불러 "이런 식으로 정부를 기만하기냐"고 호통쳤고, 결국 H그룹은 눈물을 흘리며 그 땅마저 팔아야 했다. 당시 재벌들 가운데에는 헐값에 땅을 팔기가 억울해(?) 주위 대학등에 이를 기부한 이들도 있었다.

"재벌개혁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역사회에 좋은 일 많이 한 셈"이라고 김종인 수석은 껄껄 웃었다.

***"대통령의 의지가 재벌개혁의 최대 관건"**

"재벌개혁은 원칙대로만 하면 된다. 특히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90년대초 재벌개혁은 노태우 대통령이 내게 한 두가지 약속 중 하나를 깨면서 중단됐다. 재벌총수들을 독대하지 말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밀리에 만났다. 재벌총수가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나 할 얘기가 뭐였겠나. 정치자금이 오갔을 것이고, 그 결과 재벌개혁은 중단된 것이다.

재벌을 개혁하고자 하는 대통령은 절대로 재벌총수들을 밀실에서 만나서는 안된다. 만나더라도 공개석상에서 만나는 데 그쳐야 한다."

김종인 전 수석의 경험에서 나온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 대한 조언이다. 최근 손길승 전경련회장이 노 당선자에게 재벌총수들과의 회동을 제언한 데 따른 충언이기도 하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여소야대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소야대에서는 국회에서 법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있는 법만 갖고서도 재벌을 충분히 개혁할 수 있다. 대통령이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재벌개혁은 가능하다."

그는 재벌개혁 과정에 숱한 저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얼마 전 전경련의 김석중 상무가 인수위를 보고 '사회주의자'라고 했는데, 재벌들은 90년에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재벌의 대응은 매사 이런 식이다. 개의치 말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집권 6개월이내에 재벌개혁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현재 거명되는 후보들 가운데 누구보다 재벌개혁 의지가 강한 김종인 전 수석이 과연 노무현 새정부의 초대 재벌개혁 사령관직을 맡게 될 것인지, 그가 경제부총리가 됐을 때 과연 어떤 격변이 일어날지, 지금 각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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