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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 취임사와 새 얼굴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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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월25일 취임사와 새 얼굴이 관건"

<김종인 전 경제수석 인터뷰> "재계 저항 별 것 아니다"

노무현 당선자의 총리 인선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유력후보중 하나로 거명되고 있는 김종인 전 경제수석(63)을 14일 오전 프레시안의 박태견 편집국장이 서울 평창동 개인사무실에서 1시간여 만나 심도 깊은 인터뷰를 가졌다.

김종인 전 수석은 노태우 정부시절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을 거쳐 90년부터 92년까지 3년간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아 강도높은 재벌개혁을 단행한 까닭에 지금도 재계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 있는 대표적 재벌개혁론자다.

한국경제학계의 거목 정운찬 서울대총장은 그를 일컬어 "한국에서 가장 선이 굵은 경제개혁가"로 평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정 총장이 지난 87년 서울대에서 호헌반대서명운동을 주도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이 정 교수 구속을 지시했으나 당시 민정당 의원이던 김 전수석이 정교수와 일면도 없었음에도 적극 만류했던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로도 유명하다.

김종인 전 수석은 노태우 정권 말기에 당시 청와대내에서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자격을 문제삼은 까닭에 YS정권 출범후 동화은행 사건에 연루되는 불명예를 겪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총리 후보 거명과 관련, "아무런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며 언론의 추측보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집권 6개월내에 집권기반을 확고히 다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오는 2월25일 취임식때 발표될 취임사와 새 얼굴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혔다.

김 전 수석은 또 노 당선자의 '개혁대통령, 안정총리' 구상에 대해선 "기본 철학을 제시하는 곳은 청와대지만 개혁을 주도할 곳, 집행하는 곳은 내각이다. 내각이 안정이란 명분으로 안주하면 안 된다"고 비판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개혁형 총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와 함께 총리의 요건과 관련, "공무원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에 불과하다. 지휘자가 바뀌면 새 지휘자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지휘자에 누구로 기용하는가도 문제인데, 지휘자가 조율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도 안 된다. 관중이 다 나가버린다. 이처럼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내각과 더불어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초기 몇 개월간 대통령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으면 엉망이 된다"고 말함으로써 행정경험이 있는 개혁적 성향의 인물을 총리 및 각료로 선발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은 또 최근 전경련의 '사회주의' 발언과 관련해선 "미국도 루즈벨트가 뉴딜을 할 때 극보수주의자들은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했다"며 "그런 갈등 과정을 거쳐 오늘날 미국 경제가 제대로 정착이 됐고, 미국의 경제계와 정부 관계가 확고히 확립된 것"이라며 재계의 저항에 밀려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정부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기업이 반기를 들고, 반기를 들면 정부가 조금 물러나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던 나라였다"며 "이번에도 당선자의 의도에 맞게 행정부가 따라가려고 한다고 재계가 비판하는데, 이것은 교묘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이는 자기들이 누려왔던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지속하려고 하는 것이지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과 사회의 기본적인 조화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재벌개혁에 관한 단호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김종인 전 수석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노 당선자는 남에게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프레시안 :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특별히 느낀 점은.

김종인 : 구태정치를 없애야 한다는 국민들의 마음이다. 이인제씨가 대통령 후보가 안 된 과정이나 노무현 당선자가 국민경선 이후 지지율 추락을 맛본 과정이나,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이인제는 권노갑에 의탁했다가 안 된 것이고, 노 당선자도 처음에는 'DJ를 잡았으니까 호남표가 오고, YS만 잡으면 영남표가 온다'는 공식을 따랐다. 그런 구식 사고방식 때문에 지지율이 추락했던 거다.

프레시안 : 이회창 후보 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김종인 : 이회창씨 쪽은 시대의 흐름을 조금도 이해 못했다.

프레시안 : 노 당선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종인 : 당선자와 대선 전에 몇 차례 얘기해볼 기회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남한테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 주변에서 자기들 분위기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리라고 본다.
노 당선자는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를 제대로 읽고 부응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자기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떠나지 않게 하고, 다음으로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놓친다. 이건 정권의 상식이다.

프레시안 : 노 당선자 쪽의 큰 정책흐름이 어디로 갈 것으로 보는가.

김종인 : 일단 금년에는 자기 베이스를 지킬 것으로 본다. 국회 의석수가 적은 상황에서 오히려 일하기 쉬울 수도 있다. 미국 전 대통령 클린턴도 당선 시에는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었는데, 그때는 민주당에 휘둘려서 아무것도 못했다. 오히려 2년 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소수가 되자 행정부 개편 등 일을 더 많이 했다.

우리나라 민주당도 형편이 나았다면 당선자에게 여러 개입을 했을 텐데, 선거기간 구주류들은 선거에 크게 기여를 안했기 때문에 할말이 없는 상황이다. 반면에 기여를 했다는 사람들은 "영남대통령, 호남총리" 등등 말이 너무 많다. 대통령의 의중을 그렇게 모르는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더라. 각자가 제일 큰 공신이라고 생각해 발언권을 강화하려고 하니 문제다.

프레시안 : 대통령이 소수당 내 비주류 출신이라도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는 상황이 바뀌는 거 아닌가.

김종인 : 물론이다. 대통령제의 특성이 바로 거기에 있다. 당선되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 케네디도 그랬다.

의회에서 소수라고 해서 국정을 이끌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통령을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노태우 대통령 시절 여소야대가 되어 2년 후에 결국 3당통합을 했는데, 그건 노 대통령 지도력의 문제였다. 5년짜리 대통령이 선거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하고 떠나면 그만인데, 퇴임 후에도 후계자를 두려고 당에 영향력을 미치려 했다. 후계자를 자신이 정했다고 성공한 사람 하나도 없다. 후계자 입장에서도 이전 정권과 뿌리가 같은 사람은 선임자를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소한 그런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도 없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 모양이다.

***"대북관계와 관련한 대미관계가 최대현안"**

프레시안 : DJ 당선시에는 미국의 지지, IMF 상황에서 재계의 저항 부재, 야당의 발언권 약화 같은 조건이 있었는데 노 당선자는 그게 없어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금 최대현안인 북미관계, 대미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나.

김종인 : 대북문제와 관련한 대미관계가 가장 큰 현안이라는 데 동의한다. 단순한 남북관계가 아니라 경제에도 연관되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현재는 DJ 재임기간이기 때문에 당선자로써 여러 얘기를 할 여건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당선자로서의 새로운 대북관계, 대북관계 발언이 나오면 당장 현 정부와 마찰이 있을 것으로 알고 당선자가 자제하고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2월25일 취임사를 봐야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한미공조 틀로 대북문제를 다뤘는데 DJ정부에서 그 틀을 좀 이탈했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남북관계를 해결할 수 있고 미국이 장애가 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많이 줬다. 그 점에서 DJ정부 출범후, 특히 부시 행정부 출범 후부터 대북정책에 균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오늘날 한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민주주의가 발전한 배경에 미국이란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저버릴 수 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건 인정하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상당수 사람들이 과거에 집착 말고 우리의 자존을 중요시하자고 하는데, 이론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세계는 그렇지가 않다.

더군다나 한국경제는 글로벌시대 국제경제와 밀착이 되어 있고, 국제경제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미관계가 어려워져, 외국인들이 '한국은 불안한 나라라서 한국에 대한 투자는 힘들다'는 인식을 가지면 자산의 이동이 있을 수 있고, 한국 주재 가족들이 나갈 수도 있다. 미국내 반한 무드가 고조되면 미군 철수 하자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그러면 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60년대 이후 경제적인 성장 속에서만 산 한국인들이 경제적 침체로 생활이 어려워지면, 저소득층이 결정적으로 영향 받고 사회문제로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현재 노 당선자가 권력기반확보를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어제 켈리 특사와 한 얘기처럼, 초기에 미국을 방문해서 종전과 같은 유대를 지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안정이 불가능하다.

***"통일 대비 차원에서도 한미관계 정상화 필요"**

프레시안 : 한미관계 정상화가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종인 : 1990년 경제수석때 한소경협 때문에 소련에 갔었다. 경협회의 첫날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일이고, 91년 1월 서울에서 경협 마무리회의를 시작하는 날이 미국의 바그다드 폭격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가 다국적군을 만들었는데, 경협협상 마치고 나니 우리가 과연 국제사회에서 능동적인 행위를 하는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다국적군 참여를 건의했다. 유엔도 가입했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사는데 필요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최소한 공군 수송기라도 보내자고 제의했다. 대통령이 분위기를 한번 만들라고 하더라.

그래서 국방부 등과 얘기 해 봤는데, 이구동성으로 미국에서 요구가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사실은 미국 사람들도 자기들이 요구해서 오는 걸 별로 달갑지 않아했던 것 같다. 미국의 도움으로 성장한 한국이 스스로 오길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수송기 4대를 파병했었다. 한국이 이 정도로 경제성장을 하고 국제사회의 위상이 높아졌는데 국제적 의무에 있어서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살았다. 그렇게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데에 미국이 한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과거 독재정권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현재 30대들이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현실적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 나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생활해봤는데, 의회는 물론이고 학생들도 미군철수 얘기를 안했다. 또 여야를 불구하고 독일의 경제 부흥과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것이 미국이라는 데에 다 감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통일의 계기를 맞아 프랑스, 영국 등 주변국들이 독일통일을 다 반대했을 때, 미국이 주도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도 결국은 소련과 미국 때문에 분단됐는데, 우리가 통일을 근본적으로 지향한다면 이 원인을 만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고 협조를 받아야 한다. 지금 연방제니 연합제니 하는 통일 방안들이 있는데, 그건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2차 대전으로 분단된 나라 중 월남은 무력으로 통일했고, 독일은 동독이 체제 자체의 존립근거를 상실해 스스로 무너져서 통일 되었다. 독일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다. 동독 체제가 무너졌고, 동독 사람들이 서독에 가길 원했으니까, 스스로 통일될 수밖에 없었다. 서독 정부가 의도적으로 흡수하려고 한 게 아니다.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때, 서독 콜 수상의 10개항 선언을 보면 당장 통일하자는 말이 없다. 동독 경제가 서독 수준으로 되었을 때 통일하고 그때까지 서독은 동독에 경제적인 협력만 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90년 3월에 동독에서 자유선거 실시했는데,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가자고 한 거다.

우리의 경우도 그럴 수 있다. 북한의 체제도 자신의 능력만큼 존립하는 것이지, 스스로가 존립할 능력이 없으면 어느 땐가는 와해될 수밖에 없다. 그때 북한 사람들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럼 생존을 위해 어딘가로 가려고 할 것이다. 이때 남한사람들이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됐으니까 오지 말라' 할 수 없는 거다. 운명적으로 우리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경제가 수치상 좋다고 하지만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많이 있는데, 그걸 수용할 능력이 생기기 어렵다. 국제적 협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협력을 요청할 수 있는 건 미국, 일본, 유럽이다. 이런 측면으로 볼 때 우리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우리 자존만은 지상가치로 생각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출발하는 정부가 조기에 한미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잘 풀릴 것 같나.

김종인 : 풀 수 없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게 통치자로서의 기술이고 통치자를 보좌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발휘가 되어야 한다. 그걸 못하면 나라운영 못한다.

***"2월25일 취임식날 나타나는 새 얼굴과 취임사가 관건"**

프레시안 : 노 당선자의 인선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인선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점은.

김종인 : 정권 초기 안정기반 조성에는 인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는 개혁, 총리는 안정'을 얘기하더라. 이건 서로 상치되는 얘기다. 기본 철학을 제시하는 곳은 청와대지만 개혁을 주도할 곳, 집행하는 곳은 내각이다. 내각이 안정이란 명분으로 안주하면 안 된다.

경제학에서는 '안정 균형'이냐 '불안정 균형'이냐 얘기하는데, 최근 시대 변화 속에서는 소위 다이내믹한 안정을 생각해야 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서 안정이라고 하면 그건 큰 착각이다. 안정을 추구한다고 지나치게 강조하면 정권 초기기반을 구축할 수 없다.

특히 노 당선자가 인선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은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동안의 난관 속에서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즉, 노무현 하면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겠지 하는 바람을 지켜야 한다. 인선 과정이 이 기대를 벗어나면 지지자들이 처음부터 실망할 수밖에 없고, 노무현의 기반을 구축할 수 없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최소한 무엇을 위해 대통령을 하려고 하는가를 생각했다고 본다. 그 목표를 향해 어떻게 인적 구성을 해야 하느냐는 당선자의 머릿속에 있다고 한다. 최근 거론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희망사항을 얘기하는 것 같고, 언론은 기사를 만들려고 이사람 저사람 쓰는 것뿐이다.

어쨌든 노 정권이 안정적인 기반을 초기에 구축할 수 있는가는 취임식 날 나타나는 새 얼굴과 취임사속에 담겨있는 정책방향이 결정적일 것이다.

***"루즈벨트가 뉴딜을 할 때 미국 극보수들은 그를 '공산주의자'라 했다"**

프레시안 : 노무현 당선 이후 각 부분에서 긴장과 갈등관계가 있다. 특히 재계의 반발이 꽤 심한 것 같은데.

김종인 : 노 당선자의 경제정책은 아직 확정된 게 아니다. 노 당선자가 좌파적인 기질이 있지 않느냐 하는 쓸데없는 우려를 하는데,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국가 전체를 운영하려고 하면 거기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되어 있다. 거기서 당선자가 기본원칙과 정체성을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서 한발이라도 물러나면 안 된다. 물론 단기적으로 전개되는 경제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재계는 정책의 요란스런 변화가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데, 재계가 기득권을 지켜왔던 그동안의 관행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편해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라 전체의 장기적인 방향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감내할 생각을 해야 한다.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도 기업이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도 루즈벨트가 뉴딜을 할 때 극보수주의자들은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 미국 경제가 제대로 정착이 됐고, 미국의 경제계와 정부 관계가 확고히 확립된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자본주의가 확고하게 구축되어 있지 않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기업이 반기를 들고, 반기를 들면 정부가 조금 물러나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던 나라다. 이번에도 당선자의 의도에 맞게 행정부가 따라가려고 한다고 재계가 비판하는데, 이것은 교묘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누려왔던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지속하려고 하는 것이지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과 사회의 기본적인 조화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 개인의 이윤추구를 욕할 수는 없지만, 지도자가 판단해서 가면 되는 것이다.

'재계의 저항이 심해서 힘들지 않겠냐'는 이유로 개혁을 못한다면, 그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경제가 급작스럽게 무너져버릴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걸 냉정하게 판단해서 기본원칙은 원칙대로 가고, 단기적 변화에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식으로 하면 된다.

***"재계의 저항때문에 개혁 못하면 대통령 자격 없다"**

프레시안 : 재계의 저항과 정부의 개입 양자에 모두 한계가 있는 게 아닌가.

김종인 : 어차피 헌법에 나온 자본주의 시장질서, 자유민주주의가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는 건데, 그동안 경제 사회적인 갈등요소가 해결되어야 경제의 효율이 향상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오늘날 글로벌 경제 속에서 개인의 창의력과 책임을 강조하는 경제 운용을 할 수밖에 없다. 재계의 소위 '경제력에 의한 횡포'는 여기에 배치되기 때문에 막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런 (재계의) 저항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리 정부가 뭘 하려고 해도 정부가 경제에 개입할 부분은 정해져 있다. 간섭을 최소화할 필요도 있지만, 필요한 만큼은 강하게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국경제의 효율과 사회의 조화가 같이 이뤄지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현상만으로 경제를 생각하면 안 된다. 경제정책으로 커버할 수 없는 요인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 긴장이 고조되어 외국인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면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또 사회에 극한 대립화 현상이 생기면 경제를 아무리 효율적으로 하려해도 안 된다. 이런 점을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 기업도 기업대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과거의 관행에서 조금이라도 변해야지 서로 화합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노동조합도 과거 같이 투쟁만 하면 전체 경제의 비효율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 양보를 해야 효율이 생기는 것이다. 무조건 '노무현' 하면 '반(反)기업, 적대적이라 안 된다'는 말은 곤란하다.

'사회주의 정권이다' 하는 쓸데없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 지금까지의 경제정책 운용자들이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뭔가 방향을 정하고 하는 척 하다가 재계의 저항이 좀 강하면 슬그머니 뒤로 돌아가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는 관행이 있었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다. 재벌들은 실제로 경제장관쯤은 자신들이 교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다보니'우리(재계)가 이렇게 강하게 얘기하면 처음부터 좌절하겠지'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정부는 정부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없다.

***"드골을 제왕적 대통령이라 욕하는 프랑스인들은 없다"**

프레시안 : 공무원과 장관들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김종인 : 공무원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에 불과하다. 지휘자가 바뀌면 새 지휘자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지휘자에 누구로 기용하는가도 문제인데, 지휘자가 조율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도 안 된다. 관중이 다 나가버린다. 이처럼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내각과 더불어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초기 몇 개월간 대통령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으면 엉망이 된다.

프레시안 : 책임총리제나 대통령 권력분산에 대한 생각은.

김종인 : 제왕적 대통령이라서 총리에게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내각제를 하지 않는 한 대통령제하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고 편의적으로 국정을 운영했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는 헌법상 권한을 가지고 강력하게 추진해 나라발전과 국민안정에 기여했다면, 오히려 강력한 게 나쁘지 않다. 대통령의 기본원칙으로 수행하지 않고 친인척이나 고향사람 배려하는 짓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대통령 그만 둔 후에도 혹시라도 영향력을 행사할까 해서 후계자를 키운다고 정당에 너무 관심을 표시했다. 자기 에너지를 다른 곳에 써서 국정을 제대로 못 살폈다.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니까 제왕적 대통령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황제 이상의 권위를 가졌는데, 그 사람이 프랑스 5공화국을 만들어 오늘날 근대 프랑스의 기반을 구축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제도가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프레시안 : 총리의 역할은 어떻게 보는가.

김종인 : 우리나라 정부 조직법상 가장 할 일 없는 사람이 총리다. 대통령한테 책임을 미루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잘했다고 평가받았다. 무난한 모습만 보이면 안정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또 총리가 일을 하는 데 있어 인간적으로 어려운 면도 있다. 대통령이 있는데 총리가 너무 의욕을 가지고 하면 대통령의 위상에 누를 끼친다는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총리 스스로 위축되어 제대로 일을 못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제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본다.

***"과거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변화를 겁내"**

프레시안 : 노 당선자가 '경험이 없고 급진적이다'는 일각의 평가를 어떻게 보는가.

김종인 : 왜곡이라고 본다. 과거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변화에 겁을 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19세기 말부터 세상이 변하는 것을 외면하다가 식민지가 되었다. IMF사태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한국은 구조적인 문제로 언젠가는 고통을 겪으리라 생각했다. 90년도 경제수석때 재계 구조조정을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동조도 못 받고 지탄만 받고 말았다. 당시 재계는 나를 보고 '공산주의자'라 했다. 변화를 해야 할 시기에 변화를 못해서 IMF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사회에서는 어떤 문제를 사전에 예측해서 대처하는 사람은 평가를 잘 못 받는다. 문제가 터지고 단기지적으로 미봉책으로라도 수습하면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일본 경제가 겪는 현재의 어려움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80년대말 일본인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시설 팽창시키고 부동산값 띄우고 그랬다. 90년대에 일본 GDP가 미국을 능가할 거라는 주장도 했다. 우리도 그런 환상 속에서 산다. 내부 구조가 어떻게 썩어 가는지 모른다. 일본의 문제도 지도자의 책임이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파벌들이 나눠먹기로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어, 관료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독일의 경우는 2차대전 후 히틀러 시대의 관료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나치시대에 저항운동을 했던 에른하르트가 경제장관을 10여년 하면서 관료들을 꼼짝 못하게 휘어잡고 확고하게 방향 설정을 해서 끌고 가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프랑스도 관료체제가 루이 14세부터 확립된 나라인데, 58년 드골이 등장하자마자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해서 몇 년 사이에 정돈을 했고 그를 기초로 오늘날의 근대 프랑스가 이뤄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그런 계기를 한번도 만든 적이 없다. 아주 빈약한 개발도상국에서 출발해서 성장을 지상목표로 경제를 운용해 와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게 되면서 우리나라도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새롭게 젊은 대통령이 출발한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 정치, 사회의 틀을 확고하게 재정비해서 많은 것은 못해도 기본적인 변화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권후 6개월내 정권기반 확실히 만들고 내년총선 임해야"**

프레시안 : 이번에 나온 국민들의 열망도 마찬가지 아닌가.

김종인 :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와 차이가 없으리라 본다. 정권 출범 후 6개월이 가장 중요하다. 정권의 기반이 확실하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이 보기에 그 기간동안 어느 정도 기대만큼 이뤄졌다고 생각하게 하고 내년 총선에 임해야 한다.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에 낙선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을 사람이라서 그런 점에 대해 인식이 남다를 거라는 기대를 한다.

프레시안 : 인수위가 학자들 중심으로 인적구성이 된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학자출신은 아마추어라는 지적에 대해.

김종인 : 학자 나름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를 매도하면 곤란하다. 학자들 중에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막연한 이론상의 주장만 할 것 이 아니라 그게 현실에 투영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총리나 장관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막상 하라고 하면 실질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대다수다. 그러니까 학자들이 그런 비판을 듣는 것이다. 만약 어떤 학자가 자기의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관료를 장악할 능력이 있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설득력도 없는 사람이 그 자리가 좋다고 해서 가면 안 된다.

정치인, 학자, 기업인, 관료도 마찬가지다. 준비 없으면 실패하게 마련이다. 관료 메커니즘이 해 주는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일본처럼 되고 만다. 과거 대통령을 보면, 관료들이 해주는 대로 하면 된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하면 안 된다. 기본적인 문제와 처리 방법을 심사숙고해 자기의 기본적 방향이 설정된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된 사람한테는 일단 기대해보자.

어느 직종을 보고 되고 안 되고 말해서는 안 된다. 지성인들이 국가 경영에 진짜 관심이 있으면 밖에서 편안하게 있지 말고 정치에 뛰어 들어야 한다. 정치판 논쟁을 통해 자기를 구축하면 나라의 중요한 일을 할 수 수 있다. 관료와 학자들이 서로 비난하기만 하면 안 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노 당선자가 초기 인선을 어떻게 잘하느냐이다.

프레시안 : 긴 시간 고견을 말해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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