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배달호씨 분신사건 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두산(주)의 이미지 또한차례 크게 실추됐다.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12일 정례회의 결과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외화표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국내기관을 대상으로 모집한 두산(주)에 대해 과징금 5억원을 부과키로 했다"고 밝혔다. 과징금 5억원은 관련규정상 부과할 수 있는 최고 상한선이다.
***두산, 관련규정상 최고 과징금 부과받아**
증선위에 따르면 두산은 지난 99년 7월 해외에서 BW를 발행한 것처럼 꾸며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를 피했으나 조사결과 실제로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모집한 것으로 밝혀져 공시의무를 위반했다.
이에 대해 두산측은 “금감원의 BW발행 과징금 부과는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두산 관계자는 "BW가 발행된 1999년은 IMF위기 직후로서 국가신용등급도 투자부적격이어서 많은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던 시기로서 BW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업계에서 유행하고 있던 시기였다"며 "두산은 당시 BW 주간사의 제안을 받아 해외BW를 발행함에 있어 적법한 공시를 거쳐 BW를 정상적으로 발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BW발행은 처음부터 해외발행의 의도로 추진되었고 주간사가 총액인수하기로 약정한 이상, 결과적으로 주간사가 판매하는 과정에서 BW를 국내에 판매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두산에 유가증권신고서 미제출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주간사인 동양종합금융 관계자는 “BW의 신주인수권은 분리해서 해외에 발행했고 채권으로는 해외매각이 어려워 국내에서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당시에는 금융당국도 다 알면서 용인했던 관행”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발행사로서 관리 책임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번 제재를 면하기는 어렵다”면서 “그같은 논리라면 과징금을 받은 두산이 주간사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서는 증권위의 이번 중징계에 모종의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게 아니냐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금융전문가는 “99년 7월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증선위가 3년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공시의무 위반으로 제재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라는 해석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이번 제재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등을 정면으로 반대해온 데다가 노조원 분신사태 등을 초래한 박용성 회장에 대한 새 정부측의 곱지 못한 시선이 반영된 게 아니냐고 보는이들이 적지않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아직 미흡"**
한편 지난해 10월 두산오너 일가의 편법증여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참여연대 관계자는 이번 공시의무 위반으로 인한 제재로 일정 성과를 거두었지만 편법증여 의혹이 밝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아직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채권 발행이 어려웠기 때문에 신주인수권을 붙여서라도 채권을 발행하는 것인데 신주인수권만 분리해서 해외에 매각한 뒤 이를 곧바로 박용성 회장 등 두산그룹 오너 일가가 인수했다는 것은 편법증여 의혹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이번 과징금 결정 정도로 물러서질 않겠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는 “박용성 회장이 그동안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주인수권(BW)를 붙여주면 회사채를 인수하겠다고 한 동양종금의 요청에 의해 발행했다고 해명한 말은 이번 조사로 거짓말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박용성 회장의 해명은 BW 인수자가 신주인수권과 사채권을 동시에 인수했을 때에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참여연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BW는 발행 즉시 신주인수권과 사채권이 분리되었으며, 신주인수권의 대다수(전체 2,370,259주 중에서 1,630,247주 (68.7%))는 장외매매 형태로 7월19일 지배주주 일가에 인수되었다”고 밝혔다. 즉 박용성 회장의 해명과는 달리 BW는 사채를 소화를 원활히 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양종금에 따르면 BW는 처음부터 신주인수권만 분리해 해외매각했다. 그런데 며칠만에 박용성 회장 등 두산오너 3세들이 장외매매 형태로 인수했다는 것은 ‘짜고 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박용성 등 두산그룹 재벌 3세들은 신주인수권을 취득(99년 7월19일)한 지 한달 보름만에(99년 9월3일) 박정원 등 재벌 4세에게 이를 매각했다. 참여연대는 이를 “신주인수권을 통해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시도된 거래”라면서 “편법증여 수단으로 신주인수권이 이용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게다가 3세로부터 4세로의 신주인수권 거래내역이 신고된 보유변동 보고서에는 신주인수권의 거래가격이 기재되어 있지 않는 것은 이런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신주인수권을 재벌 4세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증여가 아니다”라는 두산측 주장에 대해서도 “불법 여부를 떠나서 편법적 지분 이양이 명백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또 “오너들은 신주인수권만 인수함으로써 적은 금액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며 “두산그룹은 오너들을 대신해 금리가 낮은 BW의 사채 부분만 인수한 사람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굿뉴스'만 뉴스고 '나쁜 뉴스'는 숨겨**
참여연대는 “오너 일가가 인수한 신주인수권에는 ‘주가가 떨어질수록 인수자의 주식인수 행사가도 낮아지는 반면 일단 낮아진 행사가는 주가가 올라도 변하지 않는’ 특혜성 조건이 부여됐다“면서 “이것은 일반 주주들에게는 주가하락으로 인한 불이익이 예상되는 특혜조건을 붙인 것으로 당시 공시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실제로 두산은 당초 BW를 해외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고 밝힌 뒤 국내발행을 하면서 해외자금 유치라는 `굿뉴스'만 알려지고 특혜조건에 대한 `나쁜뉴스'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사주 91만주를 장내 매각함으로써 주가를 하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두산의 BW발행과 자사주 매각과정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에 해당된다.그러나 금감원측은 “문제가 있는 거래였으나 당시의 공시제도가 미비한 관계로 그 건에 대해서는 공시의무로 처벌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이번 과징금 결정을 계기로 집단소송 사례에 해당하는지 다각도로 검토해 재벌의 편법적인 경영행위에 대해 끝까지 추궁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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