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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계의 '오만한 내정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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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 재계의 '오만한 내정간섭'

"집단소송제,포괄상속제 도입 반대", 전경련은 내심 환호

기업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해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다시한번 입증됐다. 미국기업들이 한국기업들을 지원사격하며 노골적으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경제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 재계, "집단소송제, 상속세 확대 신중 기해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2일 "미국 경제계가 노무현 정부의 경제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집단소송제도와 상속세 제도 확대 등의 정책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전경련은 지난 19~21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제16차 한.미 재계회의 운영위원회 합동회의에 참가한 미국 대표단이 강봉균 민주당의원이 설명한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철학을 들은 뒤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측은 회의 폐막에 맞춰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한국 차기정부의 규제개혁 의지와 노동시장 개혁을 포함한 새 대통령의 비전에 대해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미국 대표들은 "미국기업들도 미국에서 집단소송제와 상속세 제도 확대 등이 폐지되거나 개혁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이같은 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재계는 또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동북아 허브구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를 촉구하면서 기업이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 고용을 조정하고 근로조건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측은 또 "한국에서 노동법이 적절하게 집행돼야 하고 서비스 산업의 경우, 근로시간 등 근무조건을 보다 유연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모든 산업에 노동법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전경련은 또 미국 재계가 "노 당선자가 미국을 방문할 경우 현지 경제계에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뜻도 밝혔다고 전했다.

이번 운영위 합동회의에는 한국측에서는 조석래 위원장 (효성 회장)을 비롯하여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구평회 LG-칼텍스 명예회장, 류진 풍산 회장,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 김동진 현대자동차 사장,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조동만 한솔 iGlobe 회장, 김영훈 대구도시가스 회장 등 35명이 참석했다.

미국측에서는 토마스 어셔(Thomas Usher) US Steel 회장, 안토니 마사로(Anthony Massaro) Lincoln Electric 사장, 마이클 바노스크(Michael Barnoski) Alston 사장, 존 제프리(John Jeffrey) Deloitte & Touche 파트너, 앨런 털리(Alan Turley) FeDex 부사장 등 24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또 이번 합동회의에는 미국 상공회의소가 미국측 기관대표로 선정된 이후 처음 참석했다.

***강봉균 의원 강연후 나타난 예기치 못한 반응**

미국 재계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20일 저녁 디너 스피커로 참석한 강봉균 민주당의원의 연설을 들은 뒤 정리된 것이서 특히 주목된다.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교사'라 불리기도 하는 강의원은 미국측이 인수위측 고위인사의 참석을 희망함에 따라 이날 강연을 하게 됐다.

강 의원은 이날 연설에서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경제구조개혁이 어렵게 되는 사례를 일본에서 볼 수 있다”며 “정치개혁의 성공은 김대중 정부가 완성하지 못한 경제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노 당선자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가해지는 불공정한 요소들이 개선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노사정 합의시스템의 공과를 면밀히 분석해 실효성 있는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노 당선자는 시장경제시스템의 공정성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우선적으로 재벌그룹내 금융회사와 계열기업 사이에 차단벽(Firewall)을 만들 것”이라면서 아울러 “일정 범위내에서의 집단소송제와 포괄적 과세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교사'다운 분명한 메시지 전달이었다. 그러나 미국측 반응은 의외였다.

미국 재계가 노 당선자의 노동정책을 문제삼고 나오리라는 것은 미리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증권 집단소송제와 포괄적 상속.증여세 도입에 제동을 걸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이같은 제도 도입은 그동안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있는 미국 등 외국계의 일관적 요구사항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의 전횡을 막고 자신들이 공정경쟁을 할 수 있기 위해선 반드시 이같은 제도들을 도입해야 한다는 게 그동안 이들의 주문이었다.

***미국 재계의 일방주의적 내정간섭**

하지만 이같은 주문을 한 미국측 인사들이 미국기업의 CEO들이라는 점을 보면 상당 부분 의문은 풀린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대해 증권 집단소송제 등의 도입을 주문해온 외국계는 대부분 기업인이 아닌 금융투자가들이다. 이들 금융투자가는 주로 주식 등을 거래하는 까닭에 기업의 투명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며, "재벌로 상징되는 한국의 잘못된 기업지배 구조가 개선되면 주가가 최소한 현재보다 30%는 오를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날 한미재계회의에 참석한 미국측 인사들은 대다수가 기업인들로, 집단소송제와 같은 시장의 견제장치에 몸서리를 치는 당사자들이다. 또한 이들은 세율이 55%에 달하는 상속세 등에도 저항하는 인사들로, 부시 정부에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상속세를 대폭 낮추는 쪽의 로비를 펴온 이들이기도 하다. 물론 조지 소로스나 빌 게이츠 2세 등 미국의 몇몇 양식있는 부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증폭시킬 위험이 크다"는 이유에서 부시의 상속세 인하에 정면 제동을 걸고 있기는 하나, 대다수 기업인들은 상속세 인하를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이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이날 이들이 보인 행태는 다분히 일방주의적이고 내정간섭적 측면이 강하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은 강봉균 의원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노 당선자가 미국을 방문할 경우 현지 경제계에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주문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불러다가 직접 압박을 가하겠다는 식의 오만한 접근법이다.

***전경련, 과연 어느나라 단체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미국측의 오만함에 대해 우리측 참석자들은 과연 어떤 대응 자세를 보였는가이다. 우리측 기관대표는 전경련이다. 전경련은 이날 회의결과를 상세히 국내에 중계해 '그것 봐라. 미국기업들도 반대하지 않느냐'는 뉴양스를 느끼게 했다. 그동안 집단소송제 도입,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 등에 공개적으로 반대해온 전경련이다 보니 그럴 만 하다.

그러나 '과연 전경련은 어느나라 단체인가'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경련의 손병두 부회장을 비롯한 한국측 참석자들의 대응은 개탄을 낳기에 충분하다.

노무현시대의 야당지를 천명한 조선일보조차 23일 '한-미 재계의 조언과 훈수'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을 정도다.

"미국측이 간접적이나마 노 당선자의 '직접 설명'을 거론한 것은 썩 절절한 것 같지는 않다. 노 당선자가 미국을 방문하면 자연스럽게 현지 경제인들과 대화할 기회를 갖게 될 것임에도 굳이 이를 '주문'한 것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지나친 처사다.

또 공동성명이 '집단소송제와 상속세 포괄주의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제도가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해결할 문제다.

한-미관계 복원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일방통행식 주문과 훈수는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빚을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전경련의 존재 이유를 의문시하는 시각이 많다. 전경련등 국내 재계인사들이 보인 이번 행태는 이같은 의문을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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