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소속 매체로는 최초로 이회창 후보 공개지지를 밝혀 파문을 빚고 있는 중앙일보 자매지인 <에머지>가 지난해부터 대기업 연합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전폭적 지원 아래 발행돼온 사실상의 전경련 산하 잡지인 것으로 밝혀져 파문을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
전경련이 이회창 후보 당선을 위해 <에머지>를 통해 이 후보를 지지토록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에머지>, 전경련에서 매달 수천부씩 사줘 간신히 연명**
12일 중앙일보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 이회창 지지를 공개천명해 물의를 빚고 있는 <에머지>는 만성적 적자 누적으로 1년여 전쯤 폐간할 계획이었다. 지난 99년 9월 <에머지 새천년>이라는 제호로 창간한 이래 이 잡지는 지나치게 사변적 글과 편집으로 독자확보에 실패해 만성적 적자에 시달려 왔다.
이처럼 잡지가 폐간위기에 직면하자 강위석 <에머지 새천년> 대표 겸 편집인은 폐간을 막기 위해 평소 친분이 두텁던 전경련을 찾아가 SOS를 요청했다. 이에 전경련은 <에머지 새천년>이 정상운영될 수 있도록 매달 수천부씩 잡지를 유가 구입해 산하 회원사들에게 배포하는 대신, 잡지 이름을 <에머지>로 바꾸고 잡지에서 '중앙일보'라는 이름과 중앙일보 마크도 뺄 것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그 결과 현재 <에머지>의 주식소유 현황은 중앙일보가 최대주주로 돼 있으나, 사실상 경영권은 전경련으로 넘어가게 됐다는 게 중앙일보측 해명이다.
***중앙일보, "잡지 발행전 '편집감사'도 할 수 없었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이렇게 상황이 바뀐 이래 <에머지>의 내용에 대해 중앙일보가 사전에 '편집감사'를 할 수 없게 되는 등 사실상 중앙일보와 별개의 독립회사 형태로 운영돼 왔다"며 "이번 이회창 공개지지 사실도 책이 나온 뒤에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과 같이 향후 대선판도를 알 수 없는 예민한 시기에 중앙일보가 사전에 이같은 내용을 알았다면 잡지 발행을 허용했겠냐"며 "차제에 <에머지>가 정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위석 편집인의 경우 평소 잡지를 만들면서 과도할 정도로 자유주의경제에 편향된 편집을 해 한때 <에머지> 편집위원으로 참석했던 중앙일보 사람들로부터 지나친 게 아니냐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중앙일보가 해명하고 나섬에 따라 세간의 의혹은 <에머지>의 이번 이회창 후보 지지가 단순한 강위석 편집인의 개인 의지가 아니라, <에머지>의 생명선을 쥐고 있는 전경련의 입김에 따른 게 아니냐는 쪽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다.
이런 의혹이 가능한 것은 전경련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기정권에 대한 재계의 요구사항을 공개하면서 금명간 대선후보들 가운데 지지할 후보를 밝히겠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에머지>의 이회창 공개 지지에 이같은 전경련의 입김이 작용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전경련은 '우회적 선거운동' 개입을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강위석 편집인은 폐간호가 될지도 모를 <에머지> 12월호 권두언에서 다음과 같은 '자유주의' 논리를 내세워 이회창 후보를 공개지지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번 선거의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서 분명하게 자유주의를 최고의 이념으로 내 건 사람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 실패의 첫째 이유는 사상적으로 자유주의를 이념으로서 분명하게 가진 후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사실처럼 실망스러운 것은 없다. 둘째 이유는 표를 얻기 위한 전략만 좇는 나머지 '스승도 따르고 사랑도 따르는' 두리뭉실한 실천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주의 원칙에 가장 가까운 후보를 한 사람 고르는 방식 대신에 자유주의 원칙과 가장 먼 주장을 가진 후보를 하나씩 제외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하여 남은 두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였다. 이 두 후보 가운데서 하나를 제외하는 것은 그 주장의 불분명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남북관계, 자유주의 기업, 법치적 민주주의, 부패척결, 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자유주의 원칙이 덜 분명한 한 사람을 제외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미흡한 점은 많으나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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