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자폐성 장애 자녀를 살해한 어머니에게 집행 유예가 선고됐다. 담당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거의 40년 동안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양육하고 헌신적으로 보살펴오면서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면서 "자식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이 어떤 형벌보다 무거운 형벌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률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달장애인 및 가족을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피고인과 이들이 충분한 보호나 지원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고단한 삶
'2017년 장애인 백서'를 보면, 발달장애인으로 23만 명 정도가 등록되어 있고 최근 5년간 전체 장애인 수는 감소하고 있으나 발달장애인은 연평균 2.8%씩 증가하는 추세다. 발달장애인은 세면, 화장실 이용, 옷 입기와 벗기, 식사, 이동, 목욕 등의 일상생활, 그리고 과잉행동 등으로 인해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돌봄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영·유아기부터 시작된 돌봄은 장애인 부모의 전 생애를 통해 계속된다. 결국 매일매일 반복되는 이런 돌봄에 부모들도 지치게 된다. 이런 돌봄 부담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매년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극단적 선택인 '자살'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겠는가. 또 돌봄의 고통은 부모 대신 돌보던 형제와 자매조차 최악의 선택을 하게끔 한다.
2017년 장애인 실태 조사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부모와 가족이 82%에 달하고 있고, 활동지원사 등의 공적 돌봄 서비스 제공자는 14%에 불과하다. 그리고 15개 장애 유형 중에서 뇌병변장애(69.4%), 자폐성장애(49.4%)가 돌봄 부담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뇌병변장애는 뇌성마비 등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인해 발생한 신체적 장애를 말한다. 자폐증은 3세 이전부터 언어 표현과 이해, 애착 행동, 놀이 등에 대한 관심이 저조해지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사회기술, 언어, 의사소통의 발달이 지연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기능을 보이는 발달장애를 말한다.
발달장애와 뇌병변장애를 중복으로 가지고 있는 장애인 가족의 경우가 돌봄이 가장 과중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성정책개발원(2005)에 의하면, 1일 돌봄 시간은 유아와 아동을 돌보는 부모의 경우 11시간 36분, 노인 돌봄 제공자는 13시간, 장애 아동의 부모는 13시간 16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유아와 아동의 경우는 성장하면서 돌봄 시간이 줄어들고, 노인의 경우 생애 후기에 돌봄이 필요하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평생 동안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의 부모나 가족들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피로도는 매우 높다.
그러므로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정부와 국회에 발달장애인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도록 요구하였고, 그 결과로 2014년 '발달장애인 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실효성 있는 예산 확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을 위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라는 말을 하니,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이해하지 못한 일부 시민은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낸다. 이것 때문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더러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책임제는 국가가 발달장애인들을 무조건 '먹여 살리라'는 게 아니다. 동정과 시혜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발달장애인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인 장애인에게 '의미 있는 낮 활동' 지원이 필요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갈 곳'이 없어서 집에서 TV만 시청하고, 가정에서 방임·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운이 좋은 일부 장애인들은 보호시설에서 낮 동안 활동을 지원받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전 생애를 가정에서 지내거나 시설에서 보호만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이게 과연 '행복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장애인이라도 목적이 있는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둘째, 발달장애인의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은 일반 고용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 직업재활시설에서 보호 고용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2018년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2835원이다. 그나마 지적장애인의 72.5%, 자폐성장애인의 4.7%만이 보호작업장을 이용하고 있다. 뇌병변장애와 발달장애를 동반하는 중복장애인의 경우는 통계조차 없다. 발달장애인은 기능의 숙달 정도에서 개인 간 편차가 크고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의 고용이나 취업을 위해선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직무를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일반 고용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며, 고용의 유지율 또한 매우 낮다. 결국, 우리의 요구는 일반 사업체에 고용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직업 훈련을 받도록 해달라는 것이며,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직무의 개발과 사회적 공공 일자리의 확충을 희망하고 있다.
셋째, 시설이 아니면 평생을 부모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발달장애인도 독립해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주택 중심의 '주거 정책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공공 임대주택 물량을 늘리고 이를 발달장애인들에게 우선 지원하자. 공공 임대주택을 확보하기 어려울 경우 임대료 지원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자.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그리고 주거 코치 같은 지원인이 배치되면 발달장애인들도 충분히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
넷째, 발달장애인들 자신의 삶이 늘 가족이나 발달장애인 지원 종사자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주장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기권리 옹호'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법과 지자체별로 제정된 조례에 근거해서 당사자들의 의견이나 욕구가 정책에 반영되고 참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자. 현재 전국적으로 당사자의 자기 권리 옹호 활동을 지원하는 '피플 퍼스트'라는 발달장애인 단체가 설립되고 있지만, 정작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은 전혀 없다. 발달장애인의 자기 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양적으로, 질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 최소한의 경제 생활이 보장되는 삶을 위해 '소득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은 현실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해 살고 있다. 그래서 공적 소득보장 제도를 개선하여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장애인연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 지출 등 장애 가구의 특성을 고려해 생계 급여와 의료 급여를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빈곤 대응 및 미래 지원을 위해 본인 저축 대비 지자체 매칭으로 자산 형성이 가능하도록 지원 사업을 보다 강력하게 실시해야 한다.
여섯째, 은행이나 동사무소에서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금융거래나 행정 서류 발급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성년후견인제도가 아닌 지원 의사 결정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법적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일곱째, '중증 중복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구 지원, 추가 인력 지원, 주간 이용시설의 이용, 거점병원, 그리고 긍정행동지원센터를 원한다. '중증 중복'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반응 행동과 집착 행동이 나타나는 장애인은 늘 배제되었던 시설과 기관에서 이용자의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많은 사회복지시설은 인력 등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중증'이라는 이유로, 또 '행동이 과하다'는 이유로 '중증 중복장애인'들을 배제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장애인 가족을 위한 복지전달 체계를 확충하기 위해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확대하고 발달재활서비스의 예산을 증액해 장애 아동에 대한 치료가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 사례 관리가 가족 중심의 실천을 지향해야 하고, 부모 심리 상담, 휴식 지원, 형제·자매들에 대한 지원도 해야 한다.
2018년 9월 발표한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부모들의 이런 절박한 목소리에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응답했다. 작년 9월, 청와대에서 "발달장애인도 행복한 포용국가"를 위해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영·유아기 진단검사부터 보육, 영유아 부모 교육 지원, 학령기의 방과 후 서비스와 진로 지원, 특수교사 증원, 특수학급과 특수학교의 신·증설, 탈 시설 자립생활 지원,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돌봄, 건강 인프라 확대, 공공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 확대 등이 종합대책에 포함됐다. 또, 발달장애인을 위한 거점병원, 행동증진센터, 성 교육과 정서적 지원 등의 지원 방안이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작년에 발표한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은 큰 기대와 함께 많은 아쉬움도 남겼다. 자립생활을 위한 소득 보장, 주거 대책, 법적 권리의 보장, 중증 중복 장애인에 대한 지원, 농어촌 장애인에 대한 지원, 노령화에 대한 대책, 인권 침해 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7년 85억 원에 불과하던 발달장애 예산은 '의미 있는 낮 활동'에만 191억 원이 확보됐다. 이 성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발달장애인 자신에겐 학교 졸업 후 '활동할 곳'을 제공하고, 부모들에겐 낮 시간 동안 쉴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시행되는 주간 활동지원 서비스는 올해 2500명을 사업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전체 발달장애인의 1.5%에 불과하다. 또 하루에 지원되는 활동시간이 4시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피부에 닿는 실효성은 낮다. 한편, 이 사업에 참여하면 개인 활동 지원 급여가 삭감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큰 문제다. 그래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했던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보건복지부의 지침과 시행 과정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재협의를 요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에게도 인간답게 살 권리 보장해야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 가족이 평생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발달장애인이나 장애인의 가족이 되는 순간, 가족 중의 누구 한 명은 직장 생활, 여가 생활, 가족 행사 등 일체의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단지 당사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발달장애인 정책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행한 '2018년 한국의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응답자의 48.3%가 부모 부양을 가족과 정부·사회가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2010년 이후의 추세를 보면 부모 부양을 정부나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증가하는 반면, 가족이 부양을 담당해야 한다는 응답은 감소세가 뚜렷하다. 이런 결과를 볼 때, 이미 우리 사회는 돌봄의 역할이 가족이나 개인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개인 간의 이해관계'가 아닌 '인간적·사회적 필요'에 의해 제도적으로 연대하고 있고, 무상보육, 무상급식, 치매 국가책임제, 청년수당 같은 보편적 복지의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조 원의 예산을 확보해서 그동안 가족에게 떠맡겼던 치매 노인의 부양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치매 노인 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치매 환자의 치료와 돌봄을 위한 지원 체계를 마련한다고 약속했다. 현재 70만 명의 치매 노인과 가족이 이런 혜택을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책임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연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의 특성을 더 많이 고려해야 할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는 더 큰 기회를 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국가와 사회가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 사회 정의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장애인 가족의 역할과 기능을 더 많이 고려하고, 발달장애인의 원활한 사회통합을 위해 가족 지원을 중요한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기본적 단위인 가족 사회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더불어 발달장애인들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발달장애인들도 그 삶이 우리 사회에서 빛나는 존재가 돼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핵심이고, 포용적 복지국가의 길에도 부합할 것이다.
(김신애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23세 발달 장애 자녀를 돌보는 부모입니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http://www.podbbang.com/ch/10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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