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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말하는 지도자가 그립다"

<데스크 칼럼> 세계공황적 위기에 한국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위기'를 말하는 대선후보가 없다. 모두가 '핑크빛 청사진'만 제시할 뿐이다.

'위기'를 말하는 언론이 없다. 모두가 이전투구성 정치기사로 1면을 도배할 뿐이다.

'위기'를 말하는 지식인이 없다. 모두가 술자리에선 여전히 정치얘기 뿐이다.

***지금 세계는 '공황 전야(前夜)'**

지금 세계경제는 한마디로 '공황 전야(前夜)'의 삼엄한 분위기다.

미국 다우존스 주가가 연일 폭락을 거듭, 7천2백선까지 떨어졌다. "5천선까지 떨어질 것"(빌 그로스)라는 전망까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나스닥지수는 1천1백선까지 떨어졌다. 1천선 붕괴도 초읽기로 읽힌다.
유럽연합(EU) 주가도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주는 19년전 수준으로 폭락한 상태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다. 닛케이지수가 8천3백선까지 붕괴했고, 일본의 붕어빵 격인 대만 가권지수도 4천선이 붕괴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코스닥지수가 사상최저치로 폭락한 데 이어, 10일 종합주가지수도 장중 한때 6백선이 붕괴했다. 말 그대로 패닉(Panic) 상태다.

기업, 가계, 정부 등 경제주체 모두가 아연실색한 분위기다.

둘 이상 모이기만 하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주가는 어디까지 빠질 것이냐" "아파트값은 오를 거냐 폭락할 거냐" "또 감원이 시작되지 않겠냐" 등 온통 경제얘기다. 청명한 가을 하늘 위로 난 데 없이 몰려드는 시커먼 먹구름을 보고 불안해하고 방향을 못잡고 있다.

그러나 대선후보, 언론, 지식인 등 언필칭 한국의 지도층만은 '위기'를 말하지 않고 있다.

***'2002 위기'와 '97~98 위기'의 차이: '중심부 위기' vs '주변부 위기'**

이번 '2002년 위기'는 세계체제론적 시각에서 볼 때 '97~98 위기' 때보다 내용적으로 몇배나 심각한 지경이다.

97~98 위기는 '주변부 위기'였다.

97년 봄 태국에서 시작돼 동남아를 거쳐 북상하면서 그해말 한국이 휘말려들었고, 다음해인 98년 9월 러시아를 거쳐 10월 중남미로 금융ㆍ외환위기가 확산돼갔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서 차단됐다. 위기가 미국 등 중심부로 확산될 것을 우려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공격적 금리인하와 돈풀기로, 위기는 주변부에서 멈췄다.

이 과정에 도리어 미국과 유럽 등 앵글로색슨권은 엄청난 반사이익을 거두었다. 한국 등에서 시장에 헐값에 나온 알짜기업과 금융기관, 주식들을 매집해 미국, 유럽 등 중심부는 사상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또한 위기에 감염되면서 환율이 폭락한 주변부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초저가로 수입해 중심부 소비자들은 전례없이 펑펑 소비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반사이익에 기초해 중심부 주가도 폭등을 거듭했다.

한마디로 97~98년 위기는 '주변부는 멍들고 중심부는 배를 불린 주변부 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2002 위기'는 '중심부 위기'다.
이번에는 미국, 일본, 독일 등 세계경제의 3대 중심축에서 위기가 시작됐다. 위기발발 요인도 '수요-공급 미스매치(불일치)'라는 대표적 구조위기다.

수요가 사라졌다. 쉬운 말로 "돈을 투자할 데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경제 신화'라는 매력적 투자처가 있었다. 전세계 돈이 IT(정보통신)이라는 신경제 부문으로 쏟아부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과잉중복투자라는 거품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유럽연합의 경우 6천억달러의 과잉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IT거품은 2000년 3월 나스닥주가 폭락이 시작된 이래 2년반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수요는 사라진 반면, 공급은 엄청난 상태다. 97~98 위기가 발발하자 미 연준을 비롯한 전세계 중앙은행은 공격적으로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다. 그 후 일시 금리를 올리는 듯 싶다가 2000년부터 중심부에서 불황이 시작된 데다가 지난해 9.11테러까지 발발하자 미 연준은 내수부양을 위해 금리를 40년래 최저수준인 1.75%까지 끌어내렸다. 다른 나라들의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돈이 지천으로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돈은 '갈 곳'을 못 찾고 낭인처럼 헤매고 있다. 신규투자처가 없다 보니 갈 곳은 부동산뿐이었다. 그 결과 중심부를 비롯해 한국 등 주요경제권의 부동산값이 1년여 사이에 평균 50% 이상 폭등했다. 하지만 거품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 이제 그 거품이 꺼지려 하고 있고, 이에 세계 주가는 미국을 진앙으로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2002 위기는 '중심부에서 시작돼 주변부로 번지는 중심-주변 공망(共亡)의 중심부 위기'인 것이다.

***"'설마 우리야?'라는 식의 생각을 뜯어고쳐달라"**

이처럼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일각에서 '1929년 대공황'에 비유할 만큼 심각한 위기다. 우리의 모든 경제주체, 정치주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시시각각 돌아가는 상황을 체크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해도 과연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여부를 자신할 수 없는 대단히 중차대한 위기다.

이틀 전인 지난 8일 S그룹 초대로 과장, 부장급 중간간부 수백여명을 대상으로 두시간 가량 강연을 한 바 있다. 주최측이 요구한 강연주제는 '세계경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였다. 강연 전에 만난 S그룹 관계자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S그룹은 올해 사상최대 수익이 예상된다. 일본 소니를 앞질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위기상황에 '설마 우리야?'라는 식의 긴장완화 현상이 읽힌다.
어디 우리 기업뿐인가. 나라 전체로도 '설마 우리나라야?'라는 식이다. 지금 전세계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데 우리만 긴장하지 않다가는 심각한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직원들에게 긴장감을 심어달라."

이처럼 이미 민간부문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공황적 상황까지 전제해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최고경영자들의 비상지시가 잇따라 내려지고 있는 준엄한 상황이다.

한국은행 고위관계자조차 "앞으로 미국경제가 향후 3~5년간 2%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나라도 3~5년간 저성장을 전제로 구조개혁을 단행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는 지금 '위기'를 말하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몇달 뒤 정권을 책임지겠다는 대선후보들이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제위기를 사전에 모니터링해야할 언론만은 '예외지대'다.

이들에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경제위기는 '관심사밖'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들에겐 어떻게 해야 권력을 잡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내가가 미는 후보가 권력을 잡을 것인가만 관심사로 보일 정도로 '위기'란 애당초 관심밖인 것처럼 보인다.

그 대신 이들은 "내가 집권하면 향후 20년간 6% 또는 7% 성장" "실업자 없는 완전고용" "일자리 수백만개 창출" "세계경제 8강 진입" 등을 약속하고 있다. 지금 직면한 위기는 어떤 것인가, 세계공황적 위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선 우리 구성원들이 어떤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세계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범지구적 플랜은 어떤 것이 있는가 등등 정작 국민들이 듣고자 하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몰라서 안하는 것인가, 알면서도 '고통'을 말하면 표가 안 모일 것 같아 안하는 것인가.

작금의 돌아가는 경제상황을 보면, 다음 정권은 누가 집권하더라도 '위기 관리' '위기 돌파'가 최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이제 대선후보들은 '위기'를 말해야 한다.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 것인가 '해법'을 말해야 한다.

'위기'를 말하지 않고, '해법'을 말하지 않는 이는 4천7백만 국민의 경제생존을 책임 맡을 자격이 없다.

우리는 지금 '위기'를 말하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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