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우려했던 대로 대선후보들의 '공약 거품'이 본격적으로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감이 급확산되면서 공황 가능성마저 우려되는 상황에 국내에서만 대선후보들간에 공약 경쟁이 불붙으면서 경제상황을 무시한 핑크빛 전망이 확대재생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같은 7%대 고속성장 이룩하겠다?**
노무현 민주당대통령후보는 지난 9월30일 중앙선대본부 출범식에서 경제정책과 관련, 집권시 '연 7%선의 성장'을 약속했다.
현재 지속적으로 7%대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지구상 국가는 중국뿐이다. 노후보의 공약은 집권후 우리나라 성장속도를 앞으로 중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노후보의 이 공약은 그러나 두달여 전인 지난 7월26일 제주에서 전경련과 중소기협 공동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초청받아 한 공약과 자못 다른 것이다.
당시 노후보는 "민간과 국책 연구기관들은 대체로 연평균 4% 중반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으나 나는 이 수준을 다소 웃도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향후 10년간 최소한 연평균 5% 이상의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불과 두달여 사이에 집권후 '목표 성장률'이 무려 2%포인트나 상향조정된 것이다.
어떤 경제정책의 변화가 있었기에 이같은 대수정이 이뤄졌는가. 유감스럽게도 노후보는 이에 대한 어떤 납득할만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이회창 후보의 6% 성장 공약 의식한 뻥튀기 아닌가**
지난 7월 제주 강연에서 노후보는 "향후 10년간 최소한 5% 성장", 함께 참석했던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향후 20년간 6%이상의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노후보쪽에 보다 높은 점수를 주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대다수 국책.민간연구기관들이 잡고 있는 향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4% 중반선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높게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다간 '부동산 거품' 등 인플레가 불가피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해와 올해에 세계적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성장률이 6%대로 높게 나오고 있는 것도 작금 문제되고 있는 부동산 거품과, 이를 가능케 한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따라서 "향후 20년간 6%이상의 성장"을 주장한 이회창 후보보다는 "향후 10년간 최소한 5% 성장"을 내세운 노무현 후보쪽이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훨씬 '비(非)정치적. 친(親)경제적'이라는 게 이들의 평가였다.
그러나 이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던 노후보가 이번에 '연 7%선의 성장'을 들고 나왔다.
7% 성장이란 지금 세계최대 성장지대인 중국 지도부마저도 유지하기 힘들어 하는 성장 목표치다. 중국 지도부는 이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저금리, 저환율 정책과 내수부양책을 쓰고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연 7%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선 중국이상으로 세계자본을 빨아들일 수 있는 수출전진기지 및 거대내수시장으로서의 매력과, 첨단산업에서의 세계최고의 경쟁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선에서 7% 성장을 이룩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부동산과 주가 등의 부분에서 '경제 거품'을 양산하는 길뿐이다.
때문에 노후보의 이번 7% 성장 가이드라인 제시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6%대 성장을 약속한 이회창 후보를 의식한 다분히 정치적 접근법에 따른 게 아니냐는 게 경제계의 비판적 시각이다.
***천도론의 경제적 현실성도 의문**
노후보는 이날 출범식에서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를 막기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다"는 '천도(遷都)' 공약도 함께 내놓았다. 이를 통해 "청와대 일원과 북악산 일대를 서울시민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서울 강북지역의 발전에 새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천도 계획은 얼핏 보면 상당히 매력적 공약이다.
행정수도와 경제수도를 나누어 운영하는 나라는 적지않다. 워싱턴과 뉴욕을 정치,경제수도로 나눠 운영하는 미국이 그런 대표적 예이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도 같은 방식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도 안보적 이유에서 70년대말 수도를 대전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었고, 그후 정권에서도 비슷한 흐름은 계속돼 현재 조달청 등 힘없는 경제산하 부처 몇곳이 대전에 옮겨가 있는 상태다.
문제는 '천도'의 경제적 현실성이다.
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위한 천도에는 엄청한 재정 소요가 수반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50만명 정도 거주하는 행정수도 건설에 최소한 40조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물론 천도를 단행할 경우 현재 서울 및 과천에 위치한 제1, 2 종합청사 매각과 청와대 매각 등 행정기관 소유자산 매각을 통해 일정 부분 재원조달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수도 개발에도 거액의 재정 지출이 불가피하며, 더욱 우리나라처럼 행정기능과 경제기능이 함께 뒤엉켜 발달해온 나라에서 행정수도와 경제수도 분리가 그렇게 쉽게 가능한 일일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다.
일본의 경우도 90년대에 천도 계획이 검토됐었다. 당시 일본이 검토한 천도의 동기는 만성적 디플레이션 위기에 빠진 일본경제를 구하기 위해 거대한 개발수요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심찬 이 계획은 과도한 재정지출에 대한 우려와, 행정수도와 경제수도 분리의 비현실성 등의 반론에 부딪쳐 백지화됐다.
천도론이 충청권 등 중부권 표밭을 의식한 정치공약이 아니냐는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재정 소요없이 행정수도를 건설할 수 있는 방안과, 행정수도와 경제수도간 유기적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대안이 함께 제시돼야만 할 것이다.
***이회창 후보의 공약도 현실성 없기란 오십보백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정도 차이는 있으나, 공약에 다분히 거품적 요소를 띠고 있기란 대동소이하다.
이후보는 1일 경실련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지방경제와 지역균형 개발에 앞장서기 위해 일부 중앙부처 및 공공기관, 공기업, 정부산하단체, 국공립대학 등의 지방이전을 적극 추진하고 관련 민간기업이 뒤따라 이전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필요하다면 서울대 이전도 검토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후보의 이 약속은 노후보의 '천도론'보다는 강도가 약하나 기본 성격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청와대 이전 계획만 빠져있을 뿐이다. 이에 앞서 이후보는 집권시 청와대에서 집무하지 않고 행정기관과 함께 집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후보의 이같은 공약은 사실상 새로운 게 아니라, 김대중정부도 집권 초기에 추진했던 정책이다.
그 대표적 예가 조흥은행의 중부권 이전 추진이다. 98년 집권초기 김대통령은 중부권 균형 발전을 이유로 시중은행의 충청권 이전을 지시했었다. 다분히 'DJP 공조'를 의식한 지시였다.
여기에 걸려든 은행이 조흥은행이었다. 당시 조흥은행은 6대 시은 가운데 제일,서울은행 다음으로 사정이 대단히 어려웠다. 가만 있다가는 다른 은행이 피합병될 위험성이 컸다. 이에 위성복 당시 행장은 '지방 이전' 카드를 받아들임으로써 눈앞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흥은행은 충청권으로 옮길 생각을 하지조차 않고 있다. 충청권의 경제력이 뒤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 본점을 대전 등으로 옮길 경우 조흥은행의 몰락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상황을 고려치 않은 이전 지시란 이처럼 아무리 대통령 지시가 할지라도 먹혀들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회창 후보는 이밖에 이날 토론회에서 "집권시 교육예산을 GDP의 7%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하는가 하면, 지난 9월26일 문화계 인사들과 만나서는 "문예진흥기금을 1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 재정과 관련된 공약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과거 대선때마다 목격했던 '공약 홍수'의 리바이벌이다.
***차기정권은 정치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긴축정권'이어야**
차기정권은 재정적 측면에서 국민 세금 한푼이라도 줄여쓰는 '긴축정권'이어야 한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공적자금 부채를 갚기 시작해야 한다. 연간 예산의 10%이상을 공적자금 상환에 써야만 재정의 건실성과 국가신인도 유지가 가능하다.
아울러 단기성자금만 3백조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과잉 유동성으로 부동산 거품 등 각종 거품이 우려되는 상황에선 금리인상 등의 수단과 함께, 정부도 긴축재정을 통해 통화량 흡수에 노력해야 한다.
긴축정권이어야 함에도 집권후 눈앞 성장률과 정치적 인기에 연연하다가 국가경제를 망친 대표적 정권이 김영삼정권이다. 결국 김영삼정권은 IMF위기라는 경제위기를 자초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며, 수많은 국민들에게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경제계 일각에선 이번 대선의 핵심쟁점중 하나가 '경제'가 되리라고 내다보는 시각도 있다. 작금에 돌아가는 전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의 정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는 주변현실과 무관한 핑크빛 전망만을 내놓는 지도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작금의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하에서 한국경제가 생존하고 돌파할 수 있는 거대한 비젼을 제시할 줄 아는 지도자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대선후보들이 제시한 경제 비전은 '기대이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선후보와 그들 주변 경제참모팀의 대오각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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