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5억5천만달러 북한송금설'의 허와 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5억5천만달러 북한송금설'의 허와 실

월간조선이 첫 제기, 시장 반응은 "글쎄..."

한나라당이 제기한 현대상선 및 현대건설의 대북 송금설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진위 여부에 따라 향후 대선 판도에도 커다란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혹이 제기된 초기단계로 아직 구체적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그러나 송금이 이뤄졌다는 2000년 6월 전후의 상황을 보면 과연 한나라당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대목이 발견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의혹을 밝히기 위해선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의 증언과 현대상선의 당시 입출금 내역 공개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북 송금설의 전개과정과 미스테리를 추적해본다.

***월간조선이 지난 4월 제기한 '4억달러 대북 밀송금설'**

4억달러 대북 밀송금설을 가장 먼저 제기한 곳은 월간조선이다.

지난 4월 발간된 월간조선 5월호는 '현대는 정말 북한에 4억달러를 비밀리에 주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 작성의 발단이 된 것은 지난 3월25일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공개한 <한미 관계 보고서>의 한 대목이었다.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現代가 북한 측에 비밀 자금을 추가로 지불하여 對北 지급액은 총 8억 달러에 육박한다(According to informed sources, Hyundai has made secret payments to North Korea, which may bring total payments closer to $800 million.)"

CRS의 래리 닉시가 작성한 이 보고서가 나오자 현대는 CRS에 항의했고, 이에 4월5일 미국 의회에 제출할 때에는 이 대목이 다음과 같이 수정됐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現代는 북한 측에 은밀하게 돈을 제공했다고 하는데 現代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According to informed sources, Hyundai made additional secret payments to North Korea. Hyundai denies making secret payments.)"

수정된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8억달러'라는 숫자가 빠진 점이다. 당초 이 보고서는 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현대가 북한에 4억달러를 공식 지급했다는 점을 밝히며, 따라서 밀송금액은 4억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항의로 숫자가 빠지면서 4억달러 송금설도 공식문건에서 사라진 것이다.

월간조선은 그러나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한 對北사업가는 『공식적인 사업비 외에 다른 代價를 지불하지 않고는 對北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라면서 『특히 금강산은 북한으로서는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개방이 어려웠던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비밀자금 지원설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가 北측에 관광代價 외에 비밀리에 웃돈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겠다』면서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對北사업가는 現代의 對北사업에 참여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현대가 북한에 뒷돈을 주었다는 심증을 갖고 월간조선이 기사를 작성했음을 읽을 수 있는 구절이다.

***엄호성 의원이 재차 점화한 4억달러 송금설**

월간조선이 이렇게 제기한 '4억달러 대북 송금설'이 다시 공론화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반년 뒤인 25일 국회 정무위의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였다.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월간조선 5월호가 미국의회보고서 등을 토대로 게재한 기사내용을 거론하며 "월간조선이 제기한 금강산 관광사업 관련금액 외에 4억달러 웃돈 제공 의혹이 추적결과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엄 의원은 엄낙용 산업은행 전 총재를 상대로 한 증인신문에서 "현대상선이 2000년 6월7일과 28일 각각 4천억원과 9백억원을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아 현대아산에 제공했고, 이 돈이 다시 북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하며 엄 전총재가 이에 대해 알고 있었는가를 물었다.

현대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출이 있은 지 두달 뒤인 2000년 8월 산은총재로 취임했던 엄낙용씨는 이에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우리 회사가 사용한 돈이 아니어서 갚을 수 없고 정부가 대신 갚아줘야 한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그 돈이 북으로 갔는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선 말을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당시 청와대 별관에서 당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과 진념 경제부총리,이근영 금감원장을 함께 만나 이런 상황을 알렸고, 김보현 국정원 대북담당 3차장도 만나서 따로 알렸다"고 덧붙였다.

엄 의원은 그러자 현대에게 대출이 일어났던 2000년 6월당시 산은총재였던 이근영 금감원장에게 "당시 대출에 반대했으나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압력을 받아 대출을 한 게 아니냐"고 추궁의 화살을 돌렸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대출시점을 전후해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엄호성 의원은 다음날인 26일에는 "조선아태평화위가 베이징이나 마카오, 또는 홍콩 등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운영중인 페이퍼컴퍼니의 가공계좌로 돈이 송금됐다는 제보가 있다"며 계좌추적을 촉구하기도 했다.

***권오을 의원과 정형근 의원의 지원사격**

이같은 엄호성 의원의 주장이 나오자 문광위의 한국관광공사 감사에서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현대아산이 대외적으로 공개한 금강산관광 투자금액은 5천8백32억원이나, 실제 투자액은 1조원"이라며 "투자금 차액 4천억원이 북측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정무위 국감에서 북한에 제공했다는 액수와 대체로 맞아떨어진다"고 지원사격을 때렸다.

권 의원이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공개한 지난해 7월31일과 10월25일 관광공사 이사회 회의록에는 의장인 조홍규 관광공사 사장이 "현대에서 지금 1조원까지 투자했다고 주장하시는데 기투자분을 어떻게 규정지으려고 하는가"라고 질문한 내용과 "현대에서 1조원 정도 시설투자를 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도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여러 가지 돈을 갖다줬다.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것도 (약속한) 돈을 다 주지 못해서"라면서 "그중 하나가 4억달러인데 다 증거를 갖고 있으며 실제는 그보다 훨씬 엄청난 돈이 건너갔다는 것을 밝힌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북관계 심부름을 하고 여러가지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일본인 요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건설 1억5천만달러 송금 의혹도 제기**

엄호성 의원이 현대상선의 4억달러 송금설을 주장한 데 이어, 한나라당의 이성헌 의원은 25일 "남북정상회담 전인 2000년 5월 현대건설도 자금담당 이사인 송모씨가 동남아에서 북으로 1억5천만달러를 송금한 사실이 있다"면서 이번에는 현대건설의 1억5천만달러 대북 송금설을 들고 나왔다.

이성헌 의원은 이어 26일 전날 자신이 제기한 의혹과 관련,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그해 5월 현대 이익치회장이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을 불러 대북 송금을 지시했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 의원은 "김 본부장은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임원회의를 소집, 회사자금을 털은 금액 1억5천만달러를 서울에서 홍콩과 싱가포르의 (북한측) 계좌로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산은 해명, "당시는 현대부도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의혹 제기에 대해 청와대, 민주당, 금감위, 산업은행, 현대 등 당사자들은 일제히 이를 부인하고 나섰다.

여러 해명 가운데 가장 체계적으로 반론의 근거가 정리된 것은 산업은행이 26일 내놓은 해명자료다.

산은은 "현대상선이 2000년 6월7일 산은으로부터 당좌대월로 4천억원, 6월28일 9백억원 등 총 4천9백억원을 대출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는 당시 현대상선이 단기 유동성 문제를 겪으면서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 상환압력이 심한 상황에서 회사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키 위해 조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명자료에 따르면, 당시는 현대 위기설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붕괴가 우려되는 시점이었다. 2000년 3월 일명 왕자의 난이후 현대계열 전체의 신뢰도 추락으로 현대는 유동성위기에 직면했고, 4월26일에는 현대위기설로 현대계열 주가가 폭락한 데 이어, 5월26일에는 현대계열 2차 유동성위기설이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당연히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가 본격화돼, 그해 4~5월에 삼성카드 2천억원을 비롯해 서울투신, 동양오리온, 한일투신 등이 4천1백51억원의 현대 대출금을 회수했다.

이렇듯 시장의 자금회수 압박이 거세자, 현대상선은 기업어음(CP) 상환 1천7백40억원, 선박용선료 1천5백억원, 선박금융 5백90억원 등의 용도로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산은은 이에 그해 6월7일 일시 당좌대월 4천억원, 6월29일 산업운영자금 9백억원을 긴급지원하기에 이르렀다고 해명자료는 밝히고 있다.

요컨대 4억달러 대북 송금설은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라는 게 산은측 주장이다.

현대상선도 이와 관련 "당시 산은이 자금 지원 조건으로 3개월내 일시불 상환을 제시했지만 유동성 문제 때문에 갚지 못해 기한을 연장해왔다"며 "정부가 갚아야 한다고 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충식 전 사장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현대건설의 1억5천만달러 대북 송금설과 관련, 김재수 본부장은 "현대건설 재직시 이 회장으로부터 대북송금에 대한 지시를 받은 바 없으며, 더욱이 관련 자금을 북한에 송금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시장의 반응, "글써 당시 현대에게 그런 여력이 있었을까"**

이같은 공방을 지켜본 금융전문가들은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릴 때는 아니라면서도, 과연 당시 현대에게 5억5천만달러를 북한에 밀송금할 여력이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시 현대그룹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의 고위관계자는 "당시 현대그룹은 제2금융권 등 국내외의 잇따른 자금회수로 은행의 긴급 유동성 지원없이는 부도가 날 수 밖에 없는 절대적 위기상황이었다"며 "과연 그같은 상황에서 5억5천만달러라는 거액을 북한에 보낼 여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는 현대유동성 위기로 국내외 기자들이 벌떼같이 몰려다니며 현대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예의감시하던 살벌한 때였다"며 "한나라당 주장대로 청와대가 북한에 남북정상회담 개최 대가로 4억달러를 보내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과연 기자들의 감시망아래 있던 현대를 그 통로로 사용하는 도박을 했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외환시장 관계자도 "한나라당 주장대로라면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원화로 돈을 빌려 이를 달러화로 바꿔 북한에 보냈다는 얘기가 된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외환시장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5억5천만달러라는 거액의 달러화를 일시에 바꾸었다면 환율이 크게 출렁거리고 용도도 읽혔을 텐데 당시에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통화당국 관계자도 "그 정도 외화가 일시에 빠져나갔다면 IMF지시에 따라 보름마다 의무적으로 발표하던 외환보유고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가 산은으로부터 당좌대월 형태로 4천억원을 빌린 대목과 관련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당좌대월은 은행이 당좌예금 거래자와 미리 일정한 한도액을 약정하여 한도액 이내에서 언제든지 당좌예금의 잔고 이상의 수표를 발행하여도 지불에 응하는 대여를 말한다. 당좌대월은 극히 단기간의 대출이고, 변동적인 자금수요를 일시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산은은 당시 현대상선에 대해 3개월후 일시에 상환하라는 조건으로 당좌대월을 4천억원 늘려주었다.

금융시장 고위관계자는 "과연 4천억원을 북한에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장기대출을 해줘야지 석달후 갚아야 하는 당좌대월을 해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충식 사장 증언과 현대상선의 입출금 내역 공개 필요**

이처럼 한나라당 주장에 대한 시장전문가들의 반응은 상당히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의혹을 깨끗이 풀기 위해선 몇가지 의문점부터 밝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엄낙용 전 산은총재가 전한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의 주장이다.

엄낙용씨는 2000년 8월 산은총재로 취임했다. 이 시점은 산은이 현대상선에 빌려줬던 당좌대월 4천억원의 환수시기였다. 엄씨는 이에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에게 상환을 요구했으나, 이에 대해 김충식 당시 사장은 "우리 회사가 사용한 돈이 아니어서 갚을 수 없고 정부가 대신 갚아줘야 한다"고 했다고 엄씨는 증언하고 있다.

김충식 전 사장의 이 증언은 상반된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측 주장이 맞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현대상선이 위기에 처한 것은 현대아산의 금강산사업의 전주 노릇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니, 금강산사업의 최대수혜자인 정부가 대신 갚아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항변으로도 해석가능하다.

이같은 의혹에 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김충식 당시 사장의 증언이 선행돼야 한다. 김충식 당시 사장은 현대위기가 심화되면서, 현대건설에 대한 지원 등을 지시한 정몽헌 당시회장과 격돌하다가 그 다음해 10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기도 했던 김충식 전 사장은 그러나 이달초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했으며 귀국 예정 날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충식 전사장의 증언과 함께 당시 현대상선의 자금 입출금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 돈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공개하면 모든 의혹의 진실은 곧바로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지금 이번 의혹을 놓고 사생결단의 극한대립을 시작한 상태다. 따라서 의혹의 진상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의혹이 계속된다면, 한국정치 더 나아가 한국경제의 신인도는 치명적 상처를 입을 위험성이 크다. 더 나아가 남북관계도 건너기 힘든 다리를 건너는 상황으로 악화될 게 불을 보듯 훤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