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19일 힘겹게 서울은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사실상의 서울은행 인수 성공이다.
하나은행 입장에서 보면 99년말의 한미은행과의 합병 결렬, 지난 5월의 제일은행과의 합병 결렬에 이어 2년여의 좌절끝에 어렵게 이룩한 성과다. 이로써 하나은행은 자산순위 3위(86조원)로 올라서게 돼 그동안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해 국민은행 등 선도은행에 비해 크게 열세에 있던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게 되는 등 상당한 이점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합병은행의 정부 지분이 전체 주식의 29.8%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앞으로 경영의 자율성 측면에선 상당한 제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내달부터 본격화될 국회의 공적자금 국정조사때 국회를 상대로 한 차례 특혜 시비를 통과해야 할 처지가 됐다.
정부 또한 이번 협상과정에 다시금 국유재산 협상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많은 자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언론에서 특혜의혹을 제기하지 않아 당초 원안대로 갔을 경우, 서울은행을 파는 값도 1천억원 쌌을 것이며 매각대금을 정확히 얼마나 받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 연출될 뻔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나은행에 법인세 특혜를 주기로 한 대목은 앞으로 국정조사 과정 등에서 두고두고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공자위, "하나은행 법인세 특혜는 4천4백억원"**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19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매각심사소위 심사결과를 토대로 론스타와 하나은행이 제출한 수정제안과 관련 법률검토 및 평가결과 등을 듣고 심의, 참석위원 만장일치로 하나은행을 우선협상자로 의결했다.
이날 회의를 주관한 강금식 민간 공자위원장은 "하나은행이 서울은행 인수대금으로 1조1천억원을 제시했으며, 론스타펀드에 비해 전반적인 조건들이 좋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하나은행이 요구한 동아건설, 러시아 차관 등 우발채무의 면책조항은 국제적 관례이기 때문에 인정키로 했다"면서 "하나은행뿐 아니라 론스타도 당초 제안내용에 면책조항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유재훈 공자위 위원은 "하나은행이 수정제안에서 인수대금을 당초의 1조원에서 1조1천억원으로 1천억원 상향조정했고 합병후 1년6개월동안 주가가 떨어져도 계약한 매각대금을 현금과 자사주 등의 방법으로 현금화를 보장하기로 했다"며 "구체적인 방법은 추가 협상을 통해 확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자위는 또 하나은행이 서울은행 인수후 서울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해 얻게 될 법인세 특혜논란과 관련, "법인세 감면규모는 명목으로 4천4백억원, 현가로 했을 때 3천2백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재경원, "1대 주주로서 경영 감시하겠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이날 오후 한국은행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의 과제는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라며 특히 "증권 보험산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행장은 "정부보유 합병은행 주식에 대해서는 주당 1만8천9백원, 총 1조1천억원을 보장할 것이며, 이를 위해 해외DR 발행 또는 블록세일이 어려울 경우 자사주 매입소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행장은 "당초에도 주가 변동에 따라 1조∼1조 1천억 범위의 가격을 제안했으며,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한 보충설명으로 1조1천억원을 보장한 것"이라며 "수정제안을 한 것은 아니다"고 공자위와 다소 상반된 주장을 폈다.
그는 또 감세혜택 논란과 관련, "앞으로 합병은행이 잘 돼서 이익을 내면 정부 지분만큼 이익이 더 돌아갈 것"이라며 "합병은행이 시너지 효과를 통해 추가로 이익을 낸다면 장기적으로 법인세수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김 행장은 정부의 합병은행 의결권 행사와 관련, "정부가 30%의 경영권을 모두 행사한다면 주주들이 동의 않을 것"이라고 정부의 경영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정경제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이와 관련,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은행이 앞으로 추가합병 등 중요 사안을 추진할 때는 정부가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단 민영화 취지에 맞게 일정한 범위를 정해 정부지분의 의결권을 하나은행측에 위탁하는 방안을 본계약 체결협상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 국장은 그러나 "본계약에선 민영화 취지를 달성하는 측면과 1대 주주로서 경영을 감시하는 측면을 모두 다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앞으로 합병은행의 경영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승유 행장, 하나금융지주회사 회장으로 내정**
이같은 공자위 결정에 대해 탈락한 론스타의 폴 류 한국지사장은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공자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그들(예보와 하나은행)이 공정한 실사를 하기를 기대한다"며 실사과정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서울은행 노조는 하나은행과의 본계약 체결시 총파업 입장을 재확인하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서울은행의 한 관계자는 "하나은행 지점장 나이가 평균 45세인 데 반해 서울은행에는 50세 차장도 많다"며 "더욱이 지점장들의 경우 연봉차이가 거의 배나 되는 마당에 합병을 하면 계속 다닐 수 있는 지점장이 얼마나 되겠냐"고 일정직급 이상의 대량감원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나은행의 경우 서울은행을 인수하면 곧바로 가칭 하나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재임 임기가 얼마 안 남은 김승유행장이 지주회사 회장으로 옮겨간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나은행 인수의 세가지 문제점**
이처럼 서울은행은 사실상 하나은행으로의 인수가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하나은행으로의 인수는 외국계 펀드로의 인수에 비해 국내금융산업 발전측면에서 순기능을 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외국계 펀드가 인수할 경우 장기적 수익을 겨냥한 IT투자를 소홀히 할 것이며, 몇년 뒤 서울은행을 국내에 되팔면서 국부유출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인수는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첫번째, 법인세 특혜 논란이다. 재경부는 존속법인을 서울은행으로 하되 하나은행 이름을 계속 사용토록 허용함에 따라 공자위가 밝혔듯 하나은행이 4천4백억원의 법인세 혜택을 보도록 허용했다. 정부나 하나은행측 해명은 법인세 혜택을 보더라도 그만큼 주가가 오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합병은행의 정부지분이 29.8%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고로 들어올 법인세를 감면해줌으로써 얻게될 주가상승 이득의 30%만이 정부 몫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나머지 70%는 고스란히 하나은행 몫이 된다. 과연 세칭 우량은행에게 이런 세제혜택을 줘도 되느냐는 특혜 논란이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전망이다.
두번째, 정부의 경영간섭 개연성이다. 이번 합병으로 합병은행의 최대주주가 된 재경부는 "본계약에선 민영화 취지를 달성하는 측면과 1대 주주로서 경영을 감시하는 측면을 모두 다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앞으로 합병은행의 경영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민간기업이던 하나은행이 외형상 졸지에 공기업으로 바뀐 셈이다.
정부의 하나은행 경영 감시는 불가피하다. 비록 하나은행이 경영이 나빠져도 1조1천억원은 책임지고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정부 입장에서 볼 때 공적자금 회수액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선 일상적 경영감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법상 정부지분이 있는 공기업은 감사원, 기획예산처 등 각 정부감사기관의 감사와 국회의 국정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외국계 투자가들의 관치(官治) 정부의 경영간섭을 이유로 정부가 보유중인 국민은행 지분 9.6%를 팔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마당에, 하나은행은 반대로 정부지분을 30%로 늘린 대목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정부의 어설픈 협상력이다. 만약 정부와 하나은행의 당초 계획대로 지난 6일 공자위가 서울은행을 하나은행에 매각했다면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하나은행 주식을 받는 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등의 특혜의혹 제기와 론스타의 추가제안으로 매각가격은 1천억원이 높아졌고, 주가가 떨어져도 최소한 1조1천억원을 현금으로 회수하기로 됐다.
아직까지 정부의 국유재산 매각 협상력이 얼마나 아마츄어 수준에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특혜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에 앞서 크게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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