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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의 좌절', 그 말 못할 내부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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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의 좌절', 그 말 못할 내부사정

계속되는 합병실패, 낮은 예대마진으로 위기의식 증폭

국내 우량은행중 하나로 꼽히는 '하나은행'의 일이 제대로 풀리는 게 없다. 특히 합병에 관한 한 그렇다.

지난 2년간 하나은행처럼 '합병' 얘기를 많이 한 은행도 없다. 하나은행측 말대로 합병이 이뤄졌다면, 하나은행은 이미 2년전에 한미은행을 비롯해 제일은행, 서울은행까지 모두 합병해 국민은행을 앞서는 국내최대 은행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풀린 일이 하나도 없다.

***제일은행장의 합병 결렬 선언**

제일은행의 로베어 코엔 행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은행과의 합병 논의는 초기단계에서 끝났다"며 "(제일은행 대주주인) 뉴브릿지측은 하나은행 주주들과 만났지만 의견 차이가 너무 커 논의를 지속할 수 없다고 지난 3월 이사회에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결별 선언이다. 그것도 "이미 두달 전인 지난 3월에 끝난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코엔 행장의 이같은 주장은 지난 4월 하나은행측이 밝힌 합병진행 상황과 다른 것이었다. 지난 4월9일 뉴브릿지캐피탈의 대니얼 캐럴 이사와 웨이지얀 샨 이사가 한국을 방문, 다음날 김승유 하나은행장과 만났다.

이 회동이 끝난 뒤 하나은행측은 "합병과 관련된 주요사항에 대해 아직 양측 입장차이가 작지 않으나 뉴브릿지측도 하나은행과 합병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며 "늦어도 5월말까지는 입장을 밝혀달라고 뉴브릿지측에 통보했다"고 밝혔었다. 당시 일부 언론들은 '하나·제일은행 합병 급물살' 등의 제목으로 합병이 임박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5월말 뉴브릿지가 코엔 행장을 통해 통고한 것은 결렬선언이었다. 이번 합병 결렬로 언론들은 또한차례 오보를 내보낸 셈이 됐고, 합병 보도를 접하고 하나은행 주식을 사들였던 투자가들은 또한차례 황당한 처지가 됐다.

제일은행과의 합병협상이 결렬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나은행이 당초 제일은행을 합병대상으로 고른 것은 제일은행을 인수할 경우 제일은행의 누적적자를 활용해 앞으로 3년에 걸쳐 1조원 가량의 법인세를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금융계의 구렁이인 뉴브릿지캐피탈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협상은 처음부터 너무 큰 가격차로 진통을 거듭했고, 결국 결렬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서울은행이라도...**

하나은행 경영진은 코엔 행장의 공식적인 합병 결렬선언이 있기 전에 이미 제일은행과의 합병이 물건너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초 느닷없이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들겠다는 얘기를 언론에 흘린 게 그 증거이다.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 작업의 일환으로 오는 7월까지 서울은행 정부보유 지분 가운데 최소한 51%를 매각하는 이행각서(MOU)를 체결할 계획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서울은행에 쏟아부은 공적자금은 모두 5조6천억원에 달한다. 이 중 대부분은 부실자산 청산에 사용됐고, 이 가운데 6천1백8억원의 출연금이 현재 자본금으로 잡혀있다. 정부는 이처럼 1백% 정부 지분인 서울은행 주식중 최소한 51%를 매각해 경영권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공적자금 일부를 회수한다는 방침이다.

하나은행이 참여의사를 밝히기 전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든 곳은 7개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실무 책임자는 "현재 동원과 동부 컨소시엄등 대기업 2곳, 외국투자기관 2곳, 기타 3곳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하나은행은 아직 포함시키지 않은 상태다.

서울은행 지분 매각과 관련한 정부의 기본입장은 '최대한의 공적자금 회수'이다.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23일 "서울은행은 최근 수익성 호조로 재벌그룹을 비롯한 원매자가 많고, 은행간 합병도 시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원매자가 많은 만큼 최고의 조건으로 팔아 공적자금 회수분을 늘리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이번에 매각하는 주식값을 최대한 후하게 받는 것은 물론, 새 경영진이 주식가치를 극대화하는 경영을 해 팔고남은 정부지분의 값어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조건만 충족시킬 수 있다면 하나은행도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인 셈이다.

***서울은행 반응은 싸늘**

그러나 서울은행 내부 분위기는 다르다. 서울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름이 사라지는 은행간 합병보다는 은행이름을 살릴 수 있는 매각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은행의 합병 제안에 대한 행내 분위기가 싸늘하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서울은행 내부에서 가장 선호하는 파트너는 동원그룹이다. 동원그룹은 대기업의 경우 4%까지만 의결권을 인정하는 은행법 규정때문에 외국계 파트너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서울은행이 동원그룹을 선호하게 된 이면에는 그동안 서울은행 경영진과 노조 등이 모 시중은행장 등 여러 곳에서 구한 자문이 큰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며칠 전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입찰 참여 보도가 나간 직후 당시 중국출장중이던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김행장의 본심이 그런 것인지는 의문이라는 게 은행권의 반응이다.

한미은행, 제일은행과의 합병 협상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그나마 하나은행이 합병대상으로 고를 수 있는 대상은 이제 서울은행 한 곳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행장의 입찰 참여 부인은 정부측에 먼저 패를 보여줌으로써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전술적 반응이 아니냐는 게 금융권의 일반적 해석이다.

합병에 대한 하나은행의 절실함은 하나은행이 최근 한미은행에도 또다시 합병의사를 타진하고 있다는 대목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한미은행 관계자는 "2000년말 칼라일그룹이 한미은행 최대주주가 되면서 합병이 성사 직전에 파기돼 감정이 크게 상한 하나은행이 요즘 또다시 우리 은행 합병팀에 합병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며 "하나은행이 절실하긴 절실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하나은행의 최대 위협**

하나은행이 지난 2년간 계속해 합병에 실패하면서도 합병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속사정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국민은행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IMF위기후 보람은행, 충청은행 등을 흡수합병하면서 착실히 덩치를 키워왔다. 2000년에는 한미은행과의 합병을 성공시켜 은행권의 선두주자가 될 계획이었다. 99년말부터 계속된 김정태 주택은행장의 합병 제의를 뿌리쳤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2000년말 하나은행은 '믿었던' 한미은행과의 합병에 실패한 반면, 주택은행은 국민은행과의 합병에 성공하면서 통합국민은행측에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됐다.

주도권을 빼앗긴 후유증은 치명적이었다.
합병 국민은행으로 자금이 몰려들었다. 기존금리보다 높은 네고금리를 요구하는 대기업이나 큰 손들의 돈을 받지 않아도 은행의 안전성을 중시하는 일반 자금들은 계속해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1천1백여개에 달하는 거미줄같은 점포망도 결정적 작용을 했다. 그 결과 국민은행의 조달금리는 다른 은행들보다 현저히 낮아졌다.

반면에 점포망이 적고, 단자사 출신인 까닭에 그동안 큰손들을 많이 상대해온 하나은행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큰손들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선 높은 네고금리등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결과 하나은행의 예대마진(수신금리와 대출금리간 차이)은 은행권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수익성 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합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며, 이에 지난 2년간 계속해 좌절하면서도 합병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뱀머리가 되겠다"는 욕심이 걸림돌**

그러나 이같은 합병 실패의 이면에는 김승유 행장등 하나은행 경영진의 '욕심'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적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나은행은 언제나 자신보다 작고 힘없는 은행들만을 합병대상으로 선정해왔기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 99년말부터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하나은행에 대등합병을 제안했었다. 그러나 답은 '노(NO)'였다. 자신보다 큰 은행과 합하면 결국 잡아먹히게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게 하나은행 경영진의 일관된 생각인 것이다.

이런 인식은 지금도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하나은행이 경영진의 '기득권'이 아닌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합병을 추진하려 한다면, 1차 대상은 서울은행 등보다는 신한은행이 돼야 한다는 게 금융계 지적이다. 신한은행 또한 국민은행의 위협으로 인해 한미은행 등과의 합병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12월 국민,주택은행 합병선언후 지난 1년반간 하나은행 등 이른바 우량은행들은 합병을 위해 동분서주해왔으나 그 성과는 전무하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지난해부터 은행들 사정이 좋아져 굳이 합병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겠으나, 그보다 더 큰 장애요인은 합병추진 은행 경영진들의 기득권이 아니었겠느냐는 게 금융권의 지배적 관측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금융권 CEO들은 '사즉생(死卽生)'의 합병철칙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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