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브라질에 3백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한 진짜 이유는 "시티그룹 등 미국금융기관들이 브라질에 물린 빚부터 받아내기"라는 지적이 국제사회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브라질 등 위기에 처한 중남미 경제를 진정으로 살리기 위해선 IMF가 구제금융을 집어넣는 동시에, 현재 이 구제금융을 빼나가는 시티그룹 등 미국금융기관들도 채권회수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요컨대 IMF와 미국정부가 시티그룹 등의 편에 서서 이들의 '구제금융 빼내가기'를 방치할 경우 중남미에 대한 IMF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시티그룹 등이 물린 2백억달러 찾게 하기위해 IMF구제금융 결정"**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9일자 뉴욕타임스(NYT) 고정칼럼에서 "브라질 구제금융으로 실제 이득을 챙기는 쪽은 시티그룹과 플리트보스턴"이라면서 "이들이 브라질에 빌려준 2백억달러에 달하는 채권이 지금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부시행정부는 최근까지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 왔으나 브라질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으로 다시 한 번 기존의 정책과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주었다"면서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의 실언으로 브라질 화폐가치가 급락했으며 이에 따라 구제금융 액수가 1백억 달러나 늘어났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IMF의 설득력 없는 '콩쥐팥쥐론'**
NYT는 크루그먼 교수 칼럼이 실리기 전날인 8일에도 'IMF 구제금융은 미국의 이익도 도모한 것'이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별도로 실어 '추가 구제금융 지원은 어렵다던 미국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진짜 속셈'을 자세히 파헤쳤다.
이 기사에 따르면,'공식적'인 미 행정부의 해명은 이렇다.
아르헨티나는 구제금융 받을 자격이 없지만 브라질은 구제금융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이른바'콩쥐팥쥐'론이다. 브라질은 시장개방을 단행하고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처하고 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하려 노력해 왔다. 반면에 아르헨티나는 외환 위기가 닥치자 공공부채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은행 계좌를 동결하는 한편, 반드시 필요한 경제개혁조치도 거부했다는 것이다.
관변 경제전문가들은 "브라질 정부가 강력한 경제개혁을 추진한 결과 금융시스템은 남미 국가중 가장 짜임새 있고 인플레이션도 브라질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재정이 튼튼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브라질에 대한 구제금융을 지지했다.
그러나 NYT는 "불과 몇 년전에 아르헨티나도 이러한 찬사를 받았다"며 "아르헨티나도 국영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을 단행하고 미국 달러와 페소화를 1대1로 고정시킨 고정환율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극적으로 진정시켜 찬사를 받았지만 지금은 파산했다"고 꼬집었다.
오늘날 아르헨티나는 지방 정부들이 막대한 재정적자를 남기며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NYT에 따르면 아르헨티나가 경제파탄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요인을 고정환율제 때문이다. 달러 강세로 인해 다른 주요 통화에 비해 페소화가 3분의 1 가까이 고평가된 관계로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브라질 구제금융의 최대수혜자는 미국 은행과 제조업체들"**
아르헨티나는 대외적인 충격에서 브라질에 비교한다면 무시될 수 있을 정도로 경제규모가 크지 않은 반면, 브라질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미국과 이웃 국가들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NYT는 이러한 배경 설명을 하면서 "대부분의 국제경제전문가들이 미 행정부의 주장에 일부분 동의할 것이지만 미국의 속셈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분석했다.
우선 브라질이 아르헨티나처럼 파산할 경우 파장이 훨씬 심각하다는 점이다. 브라질의 경제규모는 아르헨티나의 5배다. 대외부채가 2천6백40억 달러로 아르헨티나의 두 배가 넘는다. 또한 미국의 다국적 은행인 시티그룹, 플리트보스턴, J.P 모건 체이스 등이 브라질에 대출해준 돈이 아르헨티나에 물린 것보다 훨씬 많다.
브라질의 존폐에 미국금융기관만 이해관계가 깊은 게 아니다. 브라질은 미국기업들의 주요투자처였다. 제너럴 모터스(GM) 등 미국의 메이저 자동차 제작사들은 브라질 공장 증설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만일 브라질이 파산하면 모두 밑빠진 독이 될 참이다.
***시티그룹 등 치열한 로비 의혹**
NYT는 "브라질에 구제금융을 해주라고 미국의 은행과 제조업체들이 얼마나 로비를 했는지 확증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브라질 구제금융의 대표적인 수혜자가 이들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시티그룹과 플리트보스턴의 주가는 브라질 구제금융 소식이 알려진 8일 6%나 폭등했다.
미국의 은행들은 브라질에 2백56억 달러의 채권을 갖고 있다. 시티그룹만 97억 달러를 대출해 주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이 시티그룹의 공동회장이란 점도 브라질 구제금융이 성사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는 멕시코와 러시아,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NYT는 "시티그룹측에서 브라질 구제금융 로비를 했다고 말할 것 같지는 않지만 다른 은행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기관들의 이익단체인 국제금융연구원(IIF)의 찰스 달라라 총재는 "IMF가 은행들을 보호하기 위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구제금융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보다 넓은 체계적 관점에서 브라질에 대해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브라질은 세계10대 경제대국 아니냐"고 덧붙였다.
제너럴 모터스의 대변인 토니 시모네티도 "브라질의 상황이 불안정하면 우리의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면서 "우리가 브라질 경제를 안정시키는 조치들을 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적 노림수, 브라질 좌파 길들이기**
NYT는 부시 행정부가 "구제금융은 없다"며 '엄격한 사랑'을 외치던 종전의 입장을 갑자기 뒤집게 된 배경에는 "브라질에 걸린 특수한 정치 외교적 사연도 있다"고 분석했다.
바로 '브라질 정권 길들이기'다. 오는 10월 치러질 브라질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좌파들이고 이들은 집권하면 브라질의 시장과 무역 자유화 정책을 폐기처분한다는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미국은 차기 정부로부터 모종의 보장을 받아둘 필요가 있다.
그 수단이 바로 IMF 구제금융이라는 것이다. NYT는 이번 구제금융이 교묘한 조건을 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제금융의 80%는 대선 이후에나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1, 2위 후보인 노동당의 룰라 다 실바와 노동전선당 치로 고메스 등 좌파 후보들도 8일 "IMF의 요구대로 허리띠를 졸라맨 현행 긴축재정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며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외채무상환금을 제외한 예산 흑자를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의 3.75% 수준으로 설정한 긴축재정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브라질 정권을 길들여야 할 필요성은 최근 부시가 강력하게 추구하고 있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부시는 지난주 의회로부터 무역협상 전권을 받아 대외협상에 큰 힘을 얻었지만, 브라질이 디폴트가 되면 부시의 야심작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이 크다. 부시는 2005년 1월까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자유무역지대로 묶는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남미의 터줏대감 브라질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브라질 정부는 구제금융이 거부되면 자유무역 협정을 위한 협상을 거부할 것이라고 위협해 왔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미국과 이해관계가 너무 깊은 경제대국 브라질에 대해서만은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시티 등이 채권회수 중단 안하면 브라질경제는 파국 불가피"**
그러나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구제금융의 불가피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적 입장을 보인 워싱턴포스트(WP)도 9일(현지시간) "금융권 등 채권자들이 채권 회수를 자제하고 부채탕감 등의 협조가 따라주지 않을 때 구제금융은 종종 실패작으로 끝났다"고 경고했다.
브라질 정부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채무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대외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미국 은행들이 채권 회수에 열을 올리고 신규대출을 중단하는 식으로 나오는 한 브라질의 금융시장은 계속 요동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IMF 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현재 국제경제연구소(IIE) 학자인 모리스 골드스타인은 "IMF와 미 행정부가 채무조정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1년전 아르헨티나가 구제금융 지원에도 불구하고 5개월 뒤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로 브라질 구제금융도 비슷한 전철을 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익명을 요구한 IMF 관계자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저금리와 고성장 등 합리적 조건이라면 효과가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사태가 심각해진다는 게 지금까지의 분석이 내린 결론"이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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