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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간섭적 美 발언'으로 브라질 파산위기

10월 대선 앞두고 미 재무장관, '좌파 후보는 안돼' 시사

브라질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다시 몰리고 있다.

진원지는 '미국'이다. 그렇다고 지금 세계경제를 불안케 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아니다. 브라질에 반미정권이 들어서면 지원해줄 수 없다는 미 정부의 정치적 메시지가 나오면서 브라질을 일순간에 공황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미 재무장관의 느닷없는 브라질 구제금융 거부 선언**

3천3백70억달러의 정부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브라질에게 유일한 희망은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긴급구제금융을 받는 길뿐이다. 그러나 IMF지분 17%를 차지하고 있는 IMF 최대주주인 미국에서 "IMF자금 제공이 곤란하다"는 발언이 나와 브라질 금융시장을 공황 상태로 빠뜨리고 있다.

다음 주 남미를 순방할 예정인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르과이 순방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브라질은 IMF기금을 받기 전에 건전한 정책부터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IMF 구제금융 거부 선언이다.

이 발언이 나온 직후 29일 외환시장에서 브라질 헤알화는 달러당 3.185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헤알화가 1994년 통용된 이래 최저치다. 브라질 채권가격도 10% 이상 폭락해 1996년 1월 이래 최저가로 밀렸다. 브라질의 국가위험지수(공채 가산금리)도 경제 및 대선정국의 불안을 반영, 2천bp(20%)를 넘어선 2천44bp(20.44%)를 기록했다.

지난 주만 해도 2백억달러에 달하는 IMF구제금융 협상타결이 임박했다고 예상했었기에 브라질 금융계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왜 이렇게 갑자기 상황이 돌변했나.

***미국달래기에 여념없는 브라질 정부**

블룸버그 통신은 29일 오닐 재무장관의 발언을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했다.

블룸버그는 "금융전문가와 투자가들은 오는 10월 치러질 브라질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시되는 후보들의 지지가 없는 한 IMF가 브라질에 신규대출을 해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브라질의 차기 대통령후보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는 후보들이 모두 중도 좌파로, 이들은 "대선전에 IMF 구제금융이 제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브라질 금융시장에는 "이들 좌파 후보중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이고, 이들은 당선된 후에 소비지출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완화정책을 쓰고 채무상환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었다.

현재 10월 대선에서 경쟁자보다 20%포인트이상 앞서는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후보는 노동당의 룰라 다 실바이다. 다 실바 후보는 평소 "집권하게 되면 브라질의 대외부채를 재협상하겠다"면서 대외부채에 대한 지불유예 가능성을 공언해 왔다.

***"브라질 주권이 농락당하고 있다"**

오닐 미 재무장관의 발언으로 브라질 경제가 공황상태로 빠져들자, 브라질 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페드로 말란 브라질 경제장관은 29일 최대 민영 TV방송인 글로보뉴스와의 회견에서 "정부와 IMF는 협상을 강화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합의에 이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카르도소 현 브라질 대통령도 미국의 브라질 대사 도나 흐리나크를 만나 오닐 재무장관의 발언이 철회되길 요청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미국 태도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마르코 아우렐리오 멜로 대법원장은 카르도소 대통령과 회동한 후 "브라질의 주권이 농락당하고 있다"고 분개하면서 "이런 분위기에서 오닐의 방문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미국의 오만을 비판했다.

야당 대통령 후보들도 오닐의 발언을 '내정간섭'으로 규정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반미정권 수립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브라질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헤알화 폭락으로 외채 눈덩이처럼 부풀어**

브라질은 1998년이후 3백30억달러의 IMF기금을 지원받았으나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헤알화가 계속 떨어져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브라질 정부부채의 절반 이상이 달러와 연계된 탓으로 1995년 이후 빚이 3배로 부풀려졌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헤알화 가치가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14억달러씩 부채가 늘고 있다. 헤알화는 올해 들어서만 27%나 폭락했다. 가만히 앉아서 외채 부담금이 3백78억달러나 늘어난 셈이다. 브라질 채권은 폭락을 거듭해 유통수익률(채권금리)이 23.52%에 달하고 있다.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지자, 브라질 중앙은행은 30일 헤알화 방어를 위해 은행 휴무를 선언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금융가에 돌아 헤알화가 더 떨어지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투자가들은 IMF 구제금융없이는 브라질이 디폴트 선언을 할 것을 보고 있다"면서 "지난달 브라질에서 15억달러가 빠져나갔으며, 상파울루 증권거래소에서도 2000년 5월 이후 최악의 매도사태가 벌어져 3억7천4백만달러가 회수됐다"고 보도했다.

브라질은 지난해 1백60억달러의 IMF차관을 확보했으나 12월에 기간이 만료됐고 현재는 간신히 10억달러만 남아있는 상태다. 대안이 없는 브라질 정부는 아모리 비어 재무부 차관과 이란 골드판 중앙은행 경제정책 담당 이사로 하여금 IMF 협상대표단을 이끌고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질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미국이 끝내 친미적 정권 수립 방침을 고수한다면, 정말로 브라질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세계경제에 또다른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제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브라질의 향배를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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