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은 결자해지(結者解之)밖에 없다. 미국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의 거의 패닉에 가까운 국내 금융시장 불안을 지켜보는 국내 경제정책 담당자와 시장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종합주가지수가 26일 장중 한때 7백선마저 붕괴했다. 코스닥도 하락종목 숫자가 사상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원화 환율은 1천2백원선 근처까지 바짝 육박했다. 회사채 금리는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가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빠져있는 사이에 국내 금융시장은 속된 말로 박살이 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내에 1천선을 가볍게 돌파할 것이라고 호언하던 증권 전문가들도 지금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러다가 6백선도 위험한 게 아니냐는 공포감어린 소리까지 들린다. 누구도 앞날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과연 어디까지 가려는 것인가.
정책당국과 시장의 진단을 긴급 체크해본다.
***"백약이 무효. 그린스펀 입만 지켜볼 뿐"**
한국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26일 작금의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과 중남미가 동시에 흔들리면서 패닉(공황)에 가까운 불안심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채권시장은 상대적으로 괜찮다. 아직 기업들의 채권발행 수요가 많지 않고, 돈을 굴릴 데를 찾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채권확보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증시에서 빠져나온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몰려드니 유통수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주식시장이다. 국내 실물여건이 미국 등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좋은데도 투자가들이 미국보다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실물지표와 금융지표간의 괴리가 너무 크다. 주식시장이 이렇게 위축되면 우리 경제의 견인차였던 내수가 죽는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적잖이 심각해진다.
기관투자가들은 물론, 특히 개인투자가들의 큰 손실이 우려된다. 주가가 8백50을 넘어 9백대가 됐을 때 많은 이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하반기에는 지금보다 경제상황이 나아져, 주가가 곧 1천을 넘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금융기관에 돈을 빌어 주식투자를 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때 들어간 이들 중에는 절반이상을 까먹은 이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시에 채권형 펀드에 투자한 이들은 지금 도리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겠으나, 당시는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대부분 주식형 펀드에 투자한 만큼 손실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문제는 이렇게 돌아가는 상황이 간단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위기의 제공자가 국내가 아닌 미국인 만큼 정책당국으로서 마땅히 동원할 만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연기금을 더 동원해 주식을 산다거나 환율시장에 개입한다고 해도 일시적 효과 이상을 기대하기 힘든 형국이다.
마지막으로 기대를 한다면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Fed) 의장의 입뿐이다. 아직까지 세계금융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는 그가 나서 확실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어느 정도 진정이 가능할 것이다.
한마디로 갑갑한 국면이다."
***"부시 때문에 세계경제 망가지는 것 아니냐"**
국제금융계 움직임에 정통한 금융시장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러나 "그린스펀이 나선다 해도 뾰족한 수가 있겠냐"고 우려했다.
"지금 시장에서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대목은 '과연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과연 미국경제를 시발점으로 세계경제가 장기불황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미국경제가 적당히 나빠지고 미국에서 빠져나간 돈이 유럽이나 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계속 돌아가 전체적으로는 세계경제가 안정적 성장을 해나갈 것인가이다.
문제는 지금 미국경제가 당면한 위기가 단순한 실물지표나 경기 사이클 상의 위기뿐 아니라, 투명성 부족이라는 후발성 '신뢰의 위기'까지 겹쳤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실물지표의 문제라면 그린스펀 의장이 나서 불안감을 진정시킬 수 있으나, 신뢰의 위기는 그의 영향력 밖의 문제다."
그는 특히 "작금의 미국 위기는 조지 W. 부시 정권에게 결정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에서 부시는 한마디로 '무능'의 차원을 넘어서 속된 표현으로 '돌아이'가 아니냐는 차가운 반응을 얻고 있다. 부시가 하는 정책이란 한마디로 반(反)시장적이다. 시장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집단을 위한 정책만 펴고 있을 뿐이다.
클린턴정권 시절에는 달랐다. 시장의 요구에 신속히 부응했고, 그 결과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의 말은 곧바로 시장에 먹혔었다. 그러나 부시 정권 들어서는 폴 오닐 재무장관이 아무리 '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미국 달러는 계속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해도 시장에서는 콧방귀도 안 뀐다.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미국이 당면한 위기는 '투명성의 위기''정책신뢰 상실의 위기'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세계금융시장이 혼미한 국면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