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9.11사태 이후 숨죽이고 있던 미국의 민주당이 부시 행정부에 대한 대반격에 나섰다. 특히 2000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억울하게 패배한 앨 고어 전 부통령은 21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부시행정부의 환경정책을 맹공하는 등 비판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또 민주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 부시 행정부의 국내정책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의 공세 전환은 지난 3월 이후 부시행정부의 잇단 대내외 정책실패가 초래한 측면이 크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월 딕 체니 부통령을 중동지역으로 보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정을 성사시키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20년래 최악의 유혈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중동ㆍ베네수엘라 사태 등으로 부시 수세 국면**
게다가 부시 대통령의 일방적 이스라엘 편들기로 브레진스키 등 미 주류사회에서조차 부시행정부의 중동정책에 대한 우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부시 대통령은 뒤늦게 파월 국무장관을 현지에 파견, 수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파월 장관은 열흘동안 중동지역을 동분서주한 끝에 빈손으로 워싱턴에 돌아왔다.
당초 체니 부통령을 중동지역에 보낸 부시 대통령의 속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정을 성사시킨 이후 이라크 응징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동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폭력사태로 번지면서 이라크 공격은 당분간 얘기도 꺼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2일 발생한 베네수엘라 쿠데타를 때이르게 환영했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왕따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에 축출한 이번 쿠데타에 대해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들이 ‘헌정질서 파괴’라며 쿠데타 정부를 인정하지 않은 반면 미국은 차베스 축출을 즉각 환영했다.
그러나 쿠데타 이틀만에 차베스가 권좌에 복귀하면서 미국의 이같은 태도는 중남미는 물론 미 국내에서조차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실제로 시카고 트리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지들은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연일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시카고 트리뷴 17일자는 ‘쿠데타에 대한 부시의 대응, 비난받아’ 제하의 기사에서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LA타임스도 21일자에서 ‘민주주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쿠데타를 인정함으로써 스스로의 도덕적 권위를 손상시켰다“고 지적했다.
부시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주 미 상원에서 알래스카 유전 개발에 관한 법안이 부결된 것이다. 엔론 사태 등을 통해 환경보전보다는 에너지자본의 이익에만 충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픈 일격이 아닐 수 없다.
대외정책에서의 잇단 실패와 국내정책 대결에서의 패배를 맛보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부시 대통령의 인기도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뉴욕타임스 22일자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측의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최근 공화당내에 돌린 메모를 통해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의 “하향 움직임이 시작됐으며” “보다 현실적인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9.11 이후 아프간전쟁을 거치면서 수직상승했던 인기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목소리 높이기 시작한 앨 고어**
이런 틈새를 비집고 민주당측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앨 고어 전 부통령이 21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을 맹공하고 나섰다.
지구의 날(22일)을 앞두고 발표한 이 글을 통해 고어 전 부통령은 “부시 대통령하에서 미국의 환경 및 에너지 정책은 일단의 석유 및 화학기업들 손에 놀아나고 있”으며 “현 행정부는 단기간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미국의 미래를 팔아먹고 있다”며 부시 대통령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히 2004년에 있을 부시 대통령과의 재대결을 염두에 둔 듯, ‘지도력(leadership)'이라는 말을 10여차례 이상 사용하면서 ’환경대통령‘으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한껏 강조했다.
예컨대 “우리는 미래지향적인 진정한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환경에 관한 진정한 리더십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진정한 지도력이란 세계의 지도자로서 미국의 역할과 우리의 안보를 보장하는 것” “진정한 리더십이란 창조력과 생산성이 제대로 보상받는 경체제제를 보장하는 것” 등등.
고어 전 부통령은 또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 “(우리를) 인도하기(lead)보다는 오도하고(mislead) 있다”고 비판했다.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1년 이상 침묵을 지키고 있던 고어 전 부통령은 지난 13일 플로리다주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타나 부시 행정부의 국내정책을 맹공격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이제 대담하게 말할 때가 됐다”면서 “우리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일어나 싸우라”고 민주당원들을 격려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엔론 스캔들 등을 거론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이익단체들의 정치적 요구들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미국의 미래를 팔아치웠다”면서 “경제는 불필요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미국의 귀중한 가치가 짓밟히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같은 지난 13일의 연설에 이어 이번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고어 전 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설욕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의 대테러전쟁이 승승장구하면서 지리멸렬했던 의회 민주당 지도부도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승리를 위해 부시대통령의 국내정책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을 수립, 이의 추진에 나섰다. 현재 상원 다수 당인 민주당은 오는 중간선거에서 하원에서 다수 의석을 탈환한다는 전략이다.
***민주당도 부시 공격에 나서**
민주당은 9.11 이후 미 국민들의 정서를 감안, 대외정책은 건드리지 않고 의료, 교육, 연금제도 등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국내정책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공화당측에서 중간선거 전략을 짜느라 분주해지고 있다. 당초 공화당은 대테러전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앞세워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호소하기만 하면 중간선거는 무난하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중간선거를 한두달 앞둔 9,10월경 이라크 공격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었다.
하지만 중동사태가 예상 외로 복잡해지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의심받게 되면서 이라크공격은 당분간 시기를 점칠 수 없게 됐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공화당에서도 뒤늦게 중간선거 전략 수정에 나섰다. 공화당은 마약 대책, 복지제도 개혁, 엔론 스캔들로 문제가 된 연금제도 개혁 등의 국내정책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공화당의 한 선거전략가는 11월 중간선거에서는 "대외정책과 함께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국내정책'도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면서 "공화당이 국내 문제에 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별 문제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전쟁이 주춤해지면서 미국 정치의 쟁점도 국내문제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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