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수입 철강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키로 한 조치에 대해 폴 크루그먼 등 미국내 경제전문가들도 연일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번 조치는 자신이 내건 자유무역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행위라는 비판이다. 이들들은 또 부시가 미 철강업체들의 압력에 굴복, 국내적으로는 경제를 그르치고 대외적으로는 보복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미 주요 언론들은 미국 철강업체의 침체 원인은 수입철강 때문이 아니라 자체 구조조정에 실패한 철강회사들의 고질적인 병폐에 있다며 수입규제 조치가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라는 칼럼을 잇따라 게재했다.
프린스턴 대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8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부시 정부는 자유무역, 그리고 자유시장 전반에 대해 폼만 잡는다'고 맹공했다. 그는 '수입 관세는 국제통상조약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업계가 자체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한시적 구제책'이라는 부시의 주장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내셔스도 8일 '부시는 수입철강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남에게는 경쟁과 자유무역을 설교하면서 국내정치의 잠재적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실행하는 자들의 대열에 참가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일에는 워싱턴포스트의 보수파 칼럼니스트 조지 윌도 '수 십년째 인공호흡기로 연명해 온 미국 철강업계에 숨통을 불어넣기 위해 관세와 수입쿼터라는 맛없는 과자를 만들어 냈다'며 부시 비판에 가담했다.
'철강을 위한 굴복'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조지 윌은 '부시의 조치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세금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부시의 재선을 노린 전적으로 '정치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크루그먼, '수입관세는 형편없는 경제ㆍ외교 정책'**
크루그먼 교수는 '전통적인 철강업체들이 장기적인 쇠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수입 때문이 아니라 미국내 이른바 미니 제철소와의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지적하고 '한시적인 수입 관세가 철강 업체들의 몰락 추세를 돌려놓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어 철강업계의 침체 원인을 '업체들이 과거 호황기에 퇴직자들에게 약속한 연금이라는 '상속 비용(legacy cost)'이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업체들이 도산할 경우 상당한 고통을 불러올 뿐 아니라 빚더미 회사를 인수하려는 투자자가 없기 때문에 업계의 재편마저 어렵게 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미국 철강노조 대표 레오 제라드는 (현역 철강 노동자보다 4배이상 많은) 60만 퇴직자들의 연금과 보건비에 대한 상속 비용이 1백억 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또 '관세는 저소득층에게 고통을 주는 세금에 불과하다'는 현 부시 행정부의 무역대표 로버트 졸릭의 말을 인용, '관세로 문제를 완화하려는 것은 훨씬 비효율적이고 부수적인 피해를 많이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덧붙여 부시 정부가 철강업계에 시급하게 취해야 할 조치는 상속비용 등 '철강 업체들의 부채를 정부가 인수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관세는 경제적으로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형편없는 외교'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다른 나라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무역 수사가 공수표로 드러난 이상 누가 우리 설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이는 명백한 미국의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WP, '업계의 압력에 대한 부시의 굴복은 수치'**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내셔스는 8일 '자유무역에 너무 지나친 조치다'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미국 철강 업체계가 몰락한 배경을 소개하고 관세조치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1950년대, 미국 철강 노동자들은 제조업 평균임금보다 15%를 더 받았으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격차는 무려 84%로 커졌다'고 한다. 또 '1970년대 중반에 들어 철강업계 노사는 경쟁없는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값이 싼 외국산 철강을 막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며 '노조는 이를 위해 파업이라는 무기를 포기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철강산업은 외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져 '지난 80년 60만명에 달하던 철강산업 종사자들이 오늘날에는 21만명으로 축소'되는 등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고용감소의 측면에서만 보면 '가혹한 유산'이지만 '낡고 비효율적 철강업체에서 풀려난 자원들이 변화의 길을 열었고 생산비가 훨씬 적게 드는 미니 제철소의 증가와 더불어 80년대 중반부터 현대화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과거식 사고를 가진 철강 근로자들이 경쟁의 폭풍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보호무역주의를 여전히 원하고 있다'며 '부시가 여기에 굴복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미국 철강업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제시장에서 효율적인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 원칙을 포기한 '멍청이들의 작품'**
보수파로 분류되는 조지 윌도 부시의 수입철강 관세부과 조치로 '다른 산업계(일차적으로 목재와 섬유)도 (우리도 보호해 달라며) 아우성인가 하면 대외적으로는 보복을 자초하고 있다'며 '부시의 조치는 철강업계의 구조조정을 강요하지도, 실현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부시 정부의 이번 조치에 정치적 의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철강 생산 선거구의 단 6명의 공화당 후보를 위해, 그리고 부시의 재선운동을 위해 소비자들에게 연간 80억 달러의 세금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번 조치는 부시의 정치논리에 경제정책이 종속된 형국임을 분명히 하고 '부시의 철강정책은 정치적 기회주의의 쾌락을 위해 자유무역의 원칙을 포기한 멍청이들의 작품'이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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