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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없는 간부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발전회사 간부, 산자부 게시판에 대정부 호소문 게재

발전회사의 한 간부가 분할 매각에 반대하는 38일간의 파업이 끝난 뒤 부하직원들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장면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아픔을 토로한 글을 24일 산업자원부 홈페이지 '참여의 장'에 띄워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간부는 정부에게 보내는 호소문 형식의 이 글에서 정부의 강경방침에 따라 징계가 계속되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파업후 전력회사들의 살풍경한 내부분위기를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이들 5개 발전회사 경영진은 5천6백여명의 조합원들에 대한 개별감사를 벌이는 한편 서약서를 강요하고 있으며, 2백억원대의 조합원 재산 가압류와 3백48명에 대한 해임 및 8백94명에 대한 고소·고발 등 초강경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또 발전회사 노조를 기업별로 5개로 분할하는 작업도 추진중이다.

이 간부는 "정치란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는 것"이라는 네루의 말을 인용하며 정부에게 관용을 부탁하고 있다. 산자부는 이 글에 대해 아직 아무런 회답을 하지 않고 있다. 과연 강경책만이 유일한 해법인지, '국민의 정부'가 이제 회신을 해야 할 때이다. 다음은 이 호소문의 전문이다. 편집자

***정부가 발전노동자에게 관용을...**

오늘 오랜만에 직원들을 보았습니다.
다른 무엇은 차지하고서라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에 대해서 반가웠습니다.

사실 발전소 사유화 문제는 지난 경제 위기때 세계은행의 차관을 빌리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구조개편하여(우리 나라의 경우 발전소를 잘개 쪼개서) 매각을 하기로 약속을 한 것이므로 현 정부의 의지는 그 약속의 연장입니다. 그래야만 대통령께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외국인 투자와 신용등급 향상이 되므로 소위 '원칙대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라는 현시대의 유령과 싸우기 위한 수많은 투쟁의 최전위에서 우리 나약한 직원들이 싸우는 모습에서 처음엔 찬사를 보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강경해지기만 하는 정부의 탄압하에서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징계를 하고, 고소고발이 난무해지고...
사업소에서 인사위원회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위에서의 방침에 따라 무조건 '해임'이니까요.

개인적으로 둘도 없이 친한, 수년간 어울린 직원들이길래 어떻게든 해임만은 막으려고 사방으로 연락하고 하소연했지만, 지도부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해달라는 말들과 함께 더 이상 설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기업 노조에서 그냥 사업소에서 부서별 안배에 따라서 무슨 부장이네하고, 특별히 한 일도 없는 그들이 노조간부라는 명목으로 대역죄를 덮어쓰고 해임이 되는 참담함에 간부로서 더 없는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발전기 돌리랴, 나머지 시간에 정비업무하랴 하루에 잠시 짬을 내어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하였기에 피곤함에 그저 핑계를 대고 직원들이 그렇게 하나씩 사지로 가는데도 별 역할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오랜 파업이 끝나고 그들을 오늘 만날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니 반갑고 술 한잔에 얘기를 나누었지만, 차마 안타까운 얼굴...
해임된 직원의 모습이었습니다.
6일부터 근무하지만, 해임자에겐 나올 필요가 없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해임자를 보기에 민망하여 식사자리가 무척이나 침울하고 민망스러웠습니다.

그저 회사 들어와서 발전기만 돌리면서 일만 하다가 이번에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겪고 나니, 다른 건 몰라도 해임이라니..

어떻게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술만 들이키고, 그렇게 취해서 집에 들어왔건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군요.

그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기에, 그렇다고 정부의 방침이란 것도 그들을 구제하지 않겠다고 하니...
각 사업소마다 거의 10퍼센트 가량의 인원이 해임처리가 되었으니, 거의 웬만한 부서마다 한둘씩은 해임자가 있더군요. 교대 근무자는 더욱 많은 것 같고...

물론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좀 지나면 그들에 대한 구제도 가능하겠지만, 그저 평생을 오지의 발전소에서만 살아왔는데 어떻게 지낼련지.

노동자를 가장 잘 안다는 노동부장관의 입에선 기존 해고자는 구제를 못 받을거라고 하는군요.

간부로서 그들의 잘잘못을 떠나서 정부의 대응은 너무 지나칠 정도로 과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직원 없는 간부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직원과 인위적인 정부의 대응으로 삭막한 회사를 만든다면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다닐 수 있겠나 생각이 듭니다.

네루의 말처럼 '정치란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부는 관용적인 정책을 펼 용의는 없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노동자 개개인의 욕심 때문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맘에서 (방법상에선 문제가 있었지만) 나온 순수한 정신을 한번 감쌀 아량은 정부가 없는지요?

노동자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은 현 정권이 가장 가혹하게 노동자를 탄압하는 현실이 무척이나 괴롭습니다. 우리 직원들의 기저에 깔린 고통과 번민을 아량으로 감싸지 못한다면 이번 발전소 사유화 반대투쟁의 불씨는 지속될 것이며, 우리 간부 또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입장임을 감안하면 부디 해고자만은 최소화하여 줄 것을 정부당국에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이미 망그러지고 있는 회사를 다시 재건할 수 있을 겁니다. 자르고 위협하고 윽박지르는 자세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정부 당국의 선처를, 직원을 사랑하는 간부로서 간곡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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