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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 선포 100주년, 이들을 사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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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공화국 선포 100주년, 이들을 사면하라

[기고] 진보 교육인들에게 채운 족쇄, 풀어야 할 때

사면제도의 재탄생

사면제도는 왕조시대의 유산이다. 그것은 국법을 집행하는 신료들의 권력과 그 앞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연민하는 군왕의 번뇌로 구성된다. 그래서 그것은 뻔뻔한 통치술이 되기 십상이다. 1명을 사면함으로써 99명을 핍박하는 법의 폭력을 은폐·엄폐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 법 위에 군림하는 제왕권력의 토대를 강고히 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우리의 지난 정권들의 예처럼 이 제도는 정경유착의 수단으로 혹은 정권유지의 노골적인 수단으로까지 전락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비리한 과거사에 몸서리치던 우리의 시민사회가 최근 정부가 추진중인 3·1절 특별사면에 대하여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나섰다. 얼핏 보기에 역사의 아이러니인 듯 하지만, 그 뜻은 심오하다. 100년전 상해 임시정부가 선포하였고 지난 촛불시민들이 몸으로 되살려 놓았던 "민주공화국"의 본모습을 이 사면제도를 통해서 구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맡겨놓은 법권력을 입법자와 사법관이 농단하는 그 현실을 깨치고 우리 스스로가 이런 불법한 권력 위에 군림하는 진정한 주권자임을 선언하는 장엄한 출발점을 이 사면제도가 열어가는 것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의 사면제도는 대의제의 결함을 보충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국회나 법관들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잘못 행사하는 경우, 주권자의 이름으로 이를 교정할 수 있는 틀이 바로 이 사면제도다. 물론 사면권은 대통령이 행사한다. 하지만 그 대통령은 우리가 촛불로써 만들어내었다. 수없는 함성과 행동으로써 그에게 과거사와 적폐청산의 임무를 지워주었다. 그러기에 사면권은 대통령의 권한이자 동시에 우리 촛불시민의 권력이 된다. 지난 날 법의 이름으로 혹은 판결의 형식으로 자행되었던 수많은 폭력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면서, 그들의 법권력 위에 우리의 법과 정의가 군림하게 만드는 최적의 통로가 바로 이 사면제도다. 선조들이 선포하고 그 100년이 지나 우리가 광장에서 목 놓아 외쳤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의미는 이렇게 살아나게 된다.

어떤 사면인가?

장기집권을 꿈꾸던 지난 정권들의 국정농단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력의 비리나 부정 혹은 정경유착의 패악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반대편에 "종북좌파"라는 적(敵)을 만들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억압함으로써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유린하였다. 블랙리스트나 댓글공작 혹은 대국민 심리전단의 활약은 그 한 부분일 뿐, 검찰이나 사법권까지 동원하여 수없는 사람들을 구속하거나 형벌로써 처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배상재판이나 가처분결정 등을 동원하여 실질적인 고통을 가하였다. 지난 시절 검찰공화국이라는 비아냥 혹은 사법농단과 같은 전대미문의 위헌적 사태가 속발하였던 것은 그 필연적 결과였다.

3·1운동 100주년 혹은 민주공화제 선포 100주년을 즈음하여 이루어지는 사면권은 이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날은, 압제의 권력을 내치고 국민이 주인됨을 선언하였던 그때처럼 지난 정권들에서 유린되었던 우리의 권력을 제대로 찾아내는, 그래서 이 나라가 진정한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는 엄숙한 다짐의 장이다. 이런 날을 위한 사면이라면 그 역시 장엄함이 깃들여 있어야 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은사가 아니라, 혹은 경제살리기·민생배려니 하는 상투적인 연례행사의 수준이 아니라, 그동안 시민사회를 옥죄고 민주주의를 왜곡하며 인권을 억압하였던 수많은 적폐와 폭력에 대한 과감한 처단과 교정의 작업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세월호, 사드 배치 반대, 제주해군기지 반대 등과 관련한 집회로 처벌받은 경우나 불법시위의 혐의를 뒤집어 쓴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에 대하여 3·1절 사면을 적극 검토한다는 보도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것들은 단순히 잘못된 처벌로부터 정의를 회복한다는 수준을 넘어 이 땅의 주인인 우리들이 언제 어디서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정부는 언제나 그를 경청하여야 할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석기 전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꼬리를 잡아 내란음모에서 내란선동으로 말을 바꾸어가며 법의 칼날을 들이대고 급기야 통합진보당까지 해산시켜버린, 거의 쿠데타 수준의 폭력을 자행한 정권에 대한 응징의 차원에서라도 그의 사면은 필연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상층을 구성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혹은 그것을 빙자한 정치권력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우렁찬 목소리임을 재확인시키는 그 단호한 선언이 이번의 3·1절 사면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을 보라 : 곽노현의 경우

그런데 이 지점에서 조금 주의하여 지켜보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곽노현 전 교육감과 송원재·김민석·이을재 교사가 그들이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 당시 교육감 선거에 나섰다가 이런 저런 혐의에 걸려들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육의 현장을 떠나야 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공민권이 박탈되어 공공영역으로부터 배제된 상태에 놓여있다. 이 사건들은 종래 국가의 꼼꼼한 통제의 대상이 되어왔던 교육이 교육지방자치제의 실시와 더불어 지역의 주민들이 주도하는 교육으로 이전되는 순간에 터져 나왔다. 교묘하고도 꼼꼼한 법리조작과 함께 그들의 도덕성에 흠집을 냄으로써 내부적으로는 진보세력들을 이간하는 한편 외부적으로는 진보진영을 시민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육에 대한 정권의 통제력은 교육지방자치에도 불구하고 전과 다름없이 강고하게 유지해 나가고자 하였다.

곽노현 사건은 최근 그의 사면을 청원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널리 알려져 있기에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후매수죄라는 혐의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하나의 코미디다.


공직선거법이 이런 저런 선거운동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은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사후매수죄는 선거가 완전히 끝난 다음에 그 선거의 후보자간에 어떠한 선물(그것이 금전이든 일자리는 관계없다)이 오고가는 것을 처벌한다. 물론 선거 중에 "나중에 내가 크게 한턱 쏠게"라고 하면 이는 사후매수죄가 아니라 사전매수이며 공직선거법은 이를 따로 처벌한다. 그러니까 선거 중에는 아무런 약속도 언질도 없는 상태에서 선거가 끝난 이후에 무언가를 주고 받으면 처벌하는 것이 이 죄목이다. 선거가 끝난 후 당선자가 보니 경쟁후보중에 쓸 만한 공약을 가졌고 그걸 제대로 수행할 것 같은 후보자가 있어 그를 중용하여 어떤 일자리를 맡긴 경우까지도 처벌대상이 된다.


실제 이 말도 안 되는 죄목은 3·1운동이 일어났던 바로 그 시기의 일본에서 보통선거제를 도입하면서 일반 민중들이 당선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선거법에 수많은 처벌조항을 두어 선거운동을 방해하려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현행선거법은 일본의 이 법을 그대로 베껴 내면서 탐욕에 빠진 정권에게 정적제거용으로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칼날 하나를 쥐어 준 것이다. 내용의 면에서도 입법목적의 면에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리고 이 조항이 적용된 전례도 없고 그 이후로도 전혀 적용된 적이 없는 이 조항이, 서울시에서 최초로 선출된 진보교육감의 발목을 잡고 진보교육의 싹을 도려내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과 그에 편승한 일부 언론들은 당시 터져나왔던 미네르바사건, 한명숙사건, 정연주사건, PD수첩사건,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수사 등의 분위기에 편성하여 이 사건을 진보진영의 도덕성을 부정하고 그를 내부적으로 이간하는 계기로 삼았다. 스캔들을 터트려 정적을 제거하는 고래의 통치술이 이 곽노현 사건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슬프게도 주효하였다. 제1심 재판과정에서 오고간 금전들이 순수하게 선의에 기반한 것임을 제대로 포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은 법이 그러하니 할 수 없다고 유죄를 선고하고(그러면서 이 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꼭 청구하고는 당부도 같이 하였다), 진보 진영의 일부 겉똑똑이들은 돈이 오고갔으니 어찌 선의였겠느냐는 오도된 논리로써 이 유죄판결을 두둔하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곽노현 교육감이 수행하던 학생인권이나 혁신교육 등 진보적인 교육정책들은 당시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수구적인 교육행정의 그늘 아래서 참담한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이 사람을 보라 : 송원재 등의 경우


2008년 실시된 서울시교육감선거는 우리나라에서 교육감을 직선하는 최초의 사례로, 당시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주경복후보와 보수진영의 공정택 후보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진행되었다. 진보교육을 표방하는 전교조는 당연히 그 한 축으로 개입하였다. 하지만 교육의 영역이라 정당의 개입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비정치적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교원들은 이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제 때문이었다. 이에 전교조는 매건마다 선관위의 자문을 받아가며 지뢰밭 걷듯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당시의 정치상황이었다. 이 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최대의 위기인 광우병 촛불정국의 와중에 실시되었다. 정권과 보수언론은 이 선거를 애당초부터 진보 대 보수의 대결구조를 넘어 전교조 대 반전교조의 갈등으로 몰아갔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교육제도를 어떻게 개혁·개선할 것인가의 정책경쟁은 저 멀리 내동댕이친 채 편가르기식의 선거로 변질시키면서 전교조 혹은 그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왜곡하고 그에 대한 유권자들을 불안과 위기감만 가중시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촛불정국을 돌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진영을 시민들로부터 괴리시켜 보수의 영구집권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선거는 강남 3구의 몰표에 힘입어 겨우 2만여표를 앞선 보수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그 여파는 계속되었다. 정부는 이 선거를 진보교육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정타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주경복 후보 측의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급기야 선관위조차도 합법이라고 인정한 몇몇 사례를 불법이라고 하면서 사전선거운동 및 불법정치자금교부라는 혐의로 당시 전교조 서울지부의 송원재지부장 등을 구속하고 이어 주경복 후보를 비롯하여 총23명을 기소하였다. 그리고 1심의 유죄판결에 이어 항소심은 "향후 교육감 선거에서 단체의 개입을 통한 불공정한 선거를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송원재·김민석·이을재에게는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4명에게는 교직을 박탈당하는 벌금 150만 원을, 그리고 나머지 13명에게는 8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이 사건은 교원단체의 교육감선거 개입을 차단함으로써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박탈한 것을 넘어, 진보교육계를 대중들로부터 이간시킴으로써 전교조 등의 교육단체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이어 벌어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선언 사건은 그 후폭풍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들을 사면하라

이 두 교육감 선거 사건은 서로 다른 사건임에도 지난 시대의 적폐를 온전히 담아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시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였던 지난 정권들은, 더 이상 잃어버리지 않을 정권을 위하여 정치적 경쟁자들을 반대세(대한민국반대세력)로 규정하고 한편으로는 사법수단을 동원하여 처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을 선동하여 이들을 벌거벗은 인간 내지는 호모 사케르로 내몰았다. 이 사건들은 이런 작태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도 그대로 잔존한다. 곽노현과 송원재·김민석·이을재는 여전히 전과자이자 10년의 세월동안 공민권이 제한되어 공적 생활영역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내몰려 있다. 어떠한 범법행위도 어떠한 도덕적·윤리적 허물도 없는 이들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적폐에 함몰되어 그의 소중한 인권과 되돌아오지 않는 삶의 부분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이 이들을 침탈하였다. 사후매수죄라는 잘못된 법률이, 교원의 정치참여금지라는 위헌적 법률이 이들의 꿈을 꺾었다. 잘못된 법이라도 제대로 해석하여 적용하여야 할 법관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파악한 사실관계조차도 거부하면서 이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그 결과 이들은 시민으로서의 일상을 거부당한 채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장기집권을 도모한 지난 정권들이 촘촘히 짜 놓은 적폐의 그물망에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포획되어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예정되어 있다고 알려진 3·1절 사면이 민주공화국 선포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이들이야말로 그 사면명단의 맨 꼭대기에 자리할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이들의 고통은 개인적 고통의 수준을 넘어 시민들을 분노시켜 촛불을 들게 만든 바로 그 적폐의 본진에 가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곡을 제대로 교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면제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사면제도는 두 개의 권력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력과 이들의 오류나 경직됨을 교정하는 권력이 별도로 있어 각각 통치하며 군림하는 분업의 체계를 이룬다. 100년전 우리의 조상들이 선포한 그 "민주공화제"는 바로 이 교정권력이 바로 우리 국민이고 우리 촛불시민임을 의미한다. 입법자의 오류를, 사법관의 왜곡을 적시에 바로 잡을 수 있는 우리들이야말로 바로 그 "민주공화제"의 주인이다. 그리고 이 주인됨으로 우리는 외친다. 이들을 사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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