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 국내최대 보험사인 삼성생명에게 내년 8월부터 시행되는 방카슈랑스(은행,보험 겸업)에서 연합전선을 구축할 것을 공식제안했다.
삼성생명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세계 굴지의 초거대 방카슈랑스 연합체가 출범하면서 국내금융사상 최대규모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필요할 경우 이 연합체는 금융지주회사 형태의 합병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국내외 금융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시넥스에서 삼성생명의 차장급 이상 간부 등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행한 초청강연에서 이같은 연합전선 구축 제안을 했다.
김행장은 "방카슈랑스에 대한 규제가 내년 8월이면 풀린다"며 "은행이 보험상품까지 취급해서야 되겠느냐고 보험업계에서 반발하고 있으나 앞으로 국민은행은 은행상품이 아닌 오토 리스 등 모든 것을 은행창구에서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산업 종사자들은 방카슈랑스 시대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미리 아군과 적군을 구분해두고 대비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행장은 이어 "비은행업종의 전 분야에서 독보적 1위인 삼성생명이 국민은행과 싸울 것이냐 협조할 것이냐"고 물은 뒤 "기왕이면 1등끼리 손을 잡는 게 좋지 않겠냐"며 사실상의 연합전선 구축을 제의했다.
그는 이에 앞서 삼성생명의 기업지배구조 문제와 관련,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나 기업지배구조가 만능은 아니다"며 "CEO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김행장이 단순한 연합전선이 아닌 금융지주회사 형식의 합병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국민은행의 2001년말 자산은 1백89조원, 삼성생명은 60조원이다.
금융계에서는 두 은행이 합병할 경우 총자산 규모가 2백50조원에 달해 세계 50위권내의 초거대 우량금융기관이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같은 김행장의 제안에 대해 삼성생명측은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날 강연은 삼성생명측 초청 형식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삼성생명측도 방카슈랑스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삼성생명은 '환경변화와 금융인의 자세'라는 주제의 이번 강연을 비디오로 제작해 삼성생명 각 점포에 배포할 예정이다.
다음은 김정태 행장의 강연 전문이다.
***이제 은행,보험,증권의 칸막이가 의미 없어졌다**
증권사와 은행이나 이제는 다를 게 없다. 은행이나 증권, 보험이 과거에는 특화되었으나 금융위기 이후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금융위기를 맞아 은행은 BIS 비율을 맞추고 증권사와 보험업도 생존을 가르는 나름의 기준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지금 살아남은 금융회사들은 생존의 기준은 넘어섰다. 이 기준을 채우지 못한 회사들은 인수합병 등으로 많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은행이 모든 것을 다루었다. 그러나 이제 어느 분야를 특화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해외 경쟁자들과 싸워 이길 분야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은행들은 아직도 자기 성격을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 주택은행은 리테일(retail: 소매금융)으로 가기로 했다. 이것은 '서민지향'을 뜻하는 게 아니다.
한편에서는 기업금융을 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현재 대기업 금융, 중소기업 금융, 개인 금융 등 모든 면에서 1위다.
단지 대기업 금융에서는 수익성, 위험성 등을 감안해 영업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1위임에도 기업금융을 안하는 것으로 소문난 것이 회사PR상 좋은 점도 있다.
대출해주기 곤란한 기업쪽에서 청탁을 받을 때 "소매금융에 치중하는 전략상 곤란하다"고 직원이 둘러댈 핑계가 돼주기 때문이다.
주택은행이 소매금융으로 가겠다고 하자 직원들도 믿지 않았다. 모든 은행이 유니버설 뱅크를 지향하고 있는데 꿈을 크게 갖지 않고 무엇하느냐는 공격이다.
할 수없이 매킨지를 불렀다. 내가 답을 주었으니 여기에 맞는 설득근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맞는 답을 설득하는데 1백만달러가 들었다. 은행장 말은 안 믿는데 외국 사람말은 어느 정도 듣더라.
선진금융의 경우 소매금융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과거 시장 옆에는 국민은행, 아파트 옆에는 주택은행이 반드시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도식적인 영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은행 출신이 은행장 되면 안돼**
금융업에서 경영의 선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변화를 하자고 하면 흔히 직원들을 다구치는데, 무엇보다도 리더십이 변화해야 한다. 이것은 CEO의 문제다.
증권사 사장에서 은행장이 되어보니 은행장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용식당을 쓰고, 수행비서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에 놀랐다.
은행장이 되어 차를 타는데 옆에 누가 앉았다. 누구냐고 물으니 수행비서라고 했다. 당장 내리라고 했다. 은행장들이 나중에 수행비서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했더니 모두 해외점포로 내보냈다. 금융전문가를 보내지 않고 '은행장 딱가리'가 해외영업을 한 것이다. 그러니 경쟁력이 있을 턱이 있겠는가.
은행장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직원들 보고 변하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은행 출신들이 은행장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30년 넘게 보고 배운 것이 있는데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요즘은 사장 잘 뽑아야 회사가 잘 된다는 게 직원들에게도 상식이 되었다.
지방을 돌며 직원들을 만나보면 개중에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직원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
행장의 비전, 전략을 왜 직원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정하느냐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려면 임기 3년 동안에 그 일도 못한다.
인텔의 앤디 그루브 회장은 회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메모리 반도체를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팔아버렸다. 앞으로 시장이 비메모리반도체로 간다는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수만명의 직원들의 뜻을 모아 가는게 좋다는 것은 이론적으로야 좋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방향을 정하는 것은 CEO의 몫이다. 직원 여러분들은 목숨 걸고 한 CEO의 결정에 대해 왜 의논하지 않느냐고 말하지 말라. CEO는 실패하면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세계수준의 은행이 되는 데 '문제는 사람'**
60년대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으로 우리 경제가 많이 발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은행은 자금조달 책임만 졌지 운용책임은 지지 않았다. 중화학공업에 돈을 주라면 주었을 뿐이다. 90년대 이후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자금조달과 운용책임을 은행이 함께 져야 했는데 준비가 되지 못한 채 위기를 맞았다.
정부 정책에 순응해온 은행 임원들에게 나중에 왜 책임을 묻나?
그들은 열심히 돈 준 죄밖에 없다.
선진금융의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를 운용하는 구성원들이다. 국민은행은 국내 제일이 아니라, 월드 클래스(세계수준)의 금융기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자면 스탶 한명 한명을 세계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은행장으로 와서 안식년 제도를 두겠다고 하니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과거에 안식년은 직원을 자르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만두게 할 사람을 안식년이란 이름으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느라 요즘 힘들다. 기존의 월급 그대로 주면서 국내외 대학원 등에 보내 공부하라고 하는데 왜 싫다는 것인가. 정 안되면 가장 우수한 사람들로 지정하려고 한다. 그만둘 사람, 자를 사람을 연수 보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국민은행은 개인 고객을 부유층, 중산층, 서민층으로 나눈다.
부유층에 대해서는 프라이빗 뱅킹(PB)을 하고 중산층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강화하며, 서민층은 비창구 채널을 대폭 증설할 것이다.
창구 직원은 비싸다. 창구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ATM(현금자동출납기) 등을 서민층 지역에 더욱 많이 설치할 것이다. 단순한 텔러는 유치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 은행 창구 직원 대부분은 이런 업무를 하지 않게 된다.
***아멕스의 신용평가 기준은 "한곳에서 2년이상 장사하는 것"**
기업고객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경우 우량기업만 상대할 것이다.
중소기업은 전략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기존 전략을 180도로 바꾸었다. 거래 여부와 관계없이 사전에 등급을 부여해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이다.
다른 은행에서 3백억원을 대출받고 있는 기업의 경우 사전 조사를 통해 5백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나머지 2백억원을 신용으로 주겠다고 접근하고 있다. 다른 은행들이 너무 과감한 공격적 영업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거래 약정을 맺고 필요할 때 전화만 하면 대출을 해준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니 주거래은행을 아예 국민은행으로 옮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자영업 고객에 대해서는 평가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아멕스(AMEX)의 경우 자영업자에게 카드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자체 평가모델로 신용거래를 하는 것이다. 아멕스 관계자에게 평가기준을 알려달라고 하니까 별걸 다 묻는다면서 '한국에서 왔으니 하나만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한 곳에서 2년 이상 장사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단순하면서도 맞는 얘기다. 담보도 없고 신용도 없는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할 수 있는 평가모델을 개발하겠다. 이처럼 고객별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고 있다**
은행상품을 기능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대출이나 신용카드 등 전통적인 은행상품에서 비은행상품 즉 자산관리로 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상품은 만드는 것과 파는 것이 있다. 국민은행은 만드는 것보다 파는 쪽에 신경을 쓸 것이다. 전국을 장악하고 있는 막강한 채널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방카슈랑스에 대한 규제가 내년 8월이면 풀린다. 은행이 보험상품까지 취급해서야 되겠느냐고 보험업계에서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국민은행은 은행상품이 아닌 오토 리스 등 모든 것을 은행창구에서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프라이빗 뱅킹 기준은 1백만달러, 즉 13억원 정도는 은행에 돈을 맡겨야 고객이 될 수 있다. 어느 은행은 2천만달러를 기준으로 하는 은행도 있다. 2백60억원정도를 갖고 있어야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은행에서는 한 직원이 두 명의 고객만 관리한다. 이러니 그 직원은 고객의 가족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갈 정도다.
은행창구 직원은 더 이상 텔러가 아니다. 우리 은행 텔러는 너무 친절하다. 서비스를 평균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손님만 오면 웃으라고 교육을 받은 것이다. 이제는 보통예금 갖고서 들락거리는 고객은 다른 은행으로 쫓아버리라고 한다.
안양지점에서 한 번 실험을 해보았다. 우리 은행 고객이 아니면서 공과금 낼 때만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과금 청구서를 한 곳에 쌓아두게 하고 일괄처리하는 방식으로 했더니 40%가 다른 곳으로 갔다.
여의도 서쪽은 정치인들이 모여 한마디로 엉망이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 경제는 회복하고 있다. 중소기업 하는 이들도 이제는 정치인 끼고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도 정치자금 주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라. 세상이 빨리 바뀌고 있다.
이제 은행에게 특정기업에게 돈 주라고 말 못한다. 잘 하는 기업인들은 은행 돈도 안쓰겠다고 해서 우리가 돈 좀 쓰라고 사정할 정도다.
***변화가 빠를 때는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가 이렇게 빠를 때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흔히 글로벌 스탠더드(국제기준)라고 하는 데 사실상 이것은 아메리칸 스탠더드(미국기준)다. 그러나 여기에 맞추지 않을 수 없다.
주택은행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려고 국제회계기준에 맞추었는데, 막상 상장하려고 하니 미국회계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어쩌겠는가.
은행은 수익성 추구를 해야 하고 이것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주주 자본주의라고 하기도 하지만 주주자본주의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기업이 투명하지 못하다고 외국사람들 사이에서 말들이 많다. 한국의 기업이 투명해지면 지금보다 주가가 30% 오르더라도 외국인들은 사겠다고 한다.
기업이 투명성은 개인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투명성은 회계와 의사결정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지점장 판공비도 시비 대상이다. 1백만~2백만원 정도인 판공비도 투명하게 내역을 밝히지 않으면 리더십이 서지 않는다.
국민은행은 임원들에게 법인카드를 주지 않는다. 그대신 월급은 좀 많은 편이다. 나는 월 5천만원 정도 받고 임원들은 나의 절반 이상 받는다. 그래도 자기 월급에서 돈을 쓰니까 말들이 없다.
***삼성생명, 국민은행과 싸울 것인가 협조할 것인가**
한국의 코퍼레이트 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 기업지배구조)가 외국에서 문제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가 만능은 아니다. CEO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은 방카슈랑스 시대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은행과 보험이 경쟁자냐 협조자냐 구분이 애매하다. 아군과 적군, 피아 구분이 어렵다.
그러나 미리 구분해 두고 대비해두면 좋지 않겠는가.
국민은행은 시가총액, 자산규모에서 일본을 제외한다면 아시아 최대은행으로 싱가포르를 제쳤다. 그러나 내적 수준을 보면 이에 못미치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다.
삼성생명은 비은행업종에서는 전분야에서 독보적인 1위다. 한미, 대구은행의 주주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왜소하다. 그런 점에서 삼성생명은 아직 은행쪽 진출은 하지 않았다고 본다.
논 뱅크(non banking:비은행) 분야에서 독보적 1위인 삼성생명이 국민은행과 싸울 것이냐 협조할 것이냐. 협조할 바에야 기왕이면 1등끼리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현재 우리 은행에서 이런 고민은 임원도 하지 않고 나 혼자 하고 있다.
시티은행과 HSBC(홍콩상하이은행)가 우리의 경쟁상대다.
시티는 2020년까지 전세계에 코카콜라 마시는 숫자만큼을 고객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그래서 "너네가 다 해먹어라"고 말해주었다.
시티는 동아시아에 1천만명의 고객을 갖고 있는데, 앞으로 2천만명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제 금융업은 자산관리 중심의 금융상품 시대가 되었다.
삼성은 노조가 없기로 유명하지만 직원들에게 말한다. 노조가 고용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노조가 개인 생존권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철도 민영화 문제만 해도 당연히 민영화를 해야 한다. 삼성생명이나 국민은행이 철도를 맡아도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
과거의 은행원은 몇십년 동안 뼈빠지게 일하고 퇴직금 몇억원 받고 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능력만 있으면 그에 맞는 보상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변화한 시대에 맞는 능력을 기르는 길만이 자신의 생존과 보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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