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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美 추종'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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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美 추종' 위험하다

디폴트 맞은 아르헨사태의 교훈

최근 국제금융계를 흔들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와 한국은 무관할까.
이런 의문에 대한 정부나 국책연구소들의 한결같은 답은 “거의 무관하다”이다. 아르헨티나와 우리나라는 거의 교역관계가 없고 우리나라의 아르헨티나 보유채권 역시 채 1억달러도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밖에 국유재산을 거의 매각해 지급보증여력을 상실한 아르헨티나 정부와 달리,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 상대적으로 많은 국유재산을 보유하고 있고 외환보유고 역시 1천억달러에 달할 만큼 튼실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르헨티나 사태가 브라질, 페루 등 중남미 주변국으로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려 신흥시장 전반에 가산금리가 오르는 등 간접피해를 볼 수는 있으나,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나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 때와 같은 극한상황이 도래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포린 어페어즈의 아르헨티나 사태 원인분석**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르헨티나 사태가 곧바로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분석은 맞다. 그러나 이번 아르헨티나 사태는 ‘미래의 한국 사태’를 예고하는 전주곡일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게 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르헨티나가 국가도산의 몰락위기에 빠지게 된 근원적 위기구조나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위기구조 사이에는 너무나도 유사한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제문제전문 월간지 포린 어페어즈는 최근 발간된 11월호에서 아르헨티나 사태를 심층분석하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라틴연구소의 마뉴엘 파스터 교수와 <현대 정치경제학과 라틴 아메리카>의 산타 크루즈 편집장이 공동집필한 논문은 아르헨티나 위기의 근원을 ‘미국추종형 세계화’에서 찾고 있다.

외형상 아르헨티나 위기는 지난 99년 1월의 브라질 통화위기에서 초래된 것처럼 보인다. 99년초 브라질이 위기를 겪으면서 브라질 레알화의 미국 달러화 대비 환율이 40%나 급락한 반면, 달러화에 연동돼 있는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환율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달러화에 연동된 결과 유러화에 대해서도 99년과 2000년 사이에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환율은 20%나 절상됐다.

아르헨티나의 수출 가운데 미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30%는 브라질, 20%는 유럽, 나머지는 아시아와 기타지역 등이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의 수출품은 급속히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수출은 거듭해 격감했고, 경상적자가 커지면서 외환보유고가 급속히 줄어들자 돈 떼일 것을 우려한 외국인투자가들이 아르헨티나에서 빠져나가 마침내 국가도산 위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아르헨티나 붕괴의 원인 제공**

그러나 이같은 위기 전개 과정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포린 어페어즈의 분석이다. 보다 근원적 원인은 현재의 페르난도 정권이전의 메넴 정권(1989~1999)시절에 싹텄다는 것이다.
현재 부패혐의로 가택연금중인 메넴 당시 대통령은 페론주의자로 가난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89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메넴은 그러나 집권후 페론주의자 틀을 벗고 미국의 지도하에 노동시장 유연화, 국유재산 민영화, 시장경제 활성화 등 이른바 ‘미국형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추진했다. 89년 5천%에 달했던 인플레율은 94년에 10%대로 낮아졌다. 이같은 노선 변경 및 경제안정에 힘입어 메넴은 94년 선거에서 자본가층 및 중산층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재집권할 수 있었다.

메넴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외형상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우선 종업원 해고를 자유화한 노동시장 유연화는 노동생산성을 급속히 높였다. 그러나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이같은 노동생산성 향상은 종업원 해고에 따른 노동시장 연장 및 다운사이징의 결과였다. 특히 이같은 생산성 향상은 민영화에 매료돼 외국자본이 앞다퉈 몰려들은 국영기업 및 국영은행 같은 금융과 서비스 부문에서 집중적으로 발생돼, 고용이나 수출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계속 높아져 최근 공식발표 실업률만 17%를 넘고 있다. 특히 10개 수출품의 9개가 1차상품일 정도로 취약한 아르헨티나의 산업구조는 금융 및 서비스 부문에서 발생하는 실업자를 흡수할 수 없어 실업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국유재산 97%나 매각한 결과 정부보증여력 상실**

국유재산 민영화도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89년 메넴 집권 당시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국영기업 자산 가운데 97%가 현재 외국자본에게 팔려나갔다. 단기적으로는 외환보유고가 늘고 주가가 올랐다. 민영화된 부문중 전기부문은 경쟁력이 높아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정보통신 분야는 도리어 반대결과를 낳았다. 또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전기부문도 사실상은 요금인상을 통한 수익증가에 불과했다. 그 결과 현재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국유재산 해외매각의 가장 큰 부작용은 요즘 뼈저리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국유재산을 3%만 남기고 모두 매각한 결과 정부의 보증여력이 소멸된 것이다. 그 결과 해외투자가들은 정부보증채권을 휴지조각처럼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요즘 아르헨티나 정부채권의 가산금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25%대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메넴정권은 선거철이 도래하자 지방표를 의식,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등 방만한 재정집행을 통해 재정적자를 심화시키는 등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근거한 국정운영으로 국가살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같은 실정(失政)의 결과 99년 메넴은 정권을 페르난도 등 야당연정세력에게 넘겨야 했다. 그러나 그후 출범한 페르난도 연정세력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러 정파가 모인 야당인 까닭에 경제정책은 방향성을 잃고 갈팔질팡했고, 잇따른 연정탈퇴 등으로 야기된 정치불안은 도리어 경제불안을 심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지난해 디폴트 선언은 이같은 지난 10년의 실패가 초래한 필연적 귀착점이었다.

***아르헨티나와 한국은 과연 다른가**

아르헨티나와 한국은 과연 다른가.
이같은 질문에 대해 우리는 보다 본질적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도 97년 외환.금융위기후 아르헨티나가 택했던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경제재건 모델로 삼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후 노동시장 유연화, 국영기업 민영화, 시장경제 활성화 등 아르헨티나와 동일한 각종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외환위기후 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깊고 깊은 경기침체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DJP로 대표되던 연정에 따른 정치혼란 및 선거를 앞두고 경제정책 운영에서의 정치논리 작동 등도 아르헨티나와 유사하다.
지금은 외환보유고 등 아르헨티나와 다른 점을 강조할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예방차원에서 아르헨티나와 같은 점을 집중분석,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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