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2019년 들어서자마자 노동자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1월 7일 30년만에 전면 개편한다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말인즉슨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논의 '초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국제노동기구 기준' 등을 반영하고 공익위원 추천도 정부 '단독' 추천권을 폐지한단다. 노동부 보도자료만 보면 전쟁이 아니라 오히려 노사간 평화의 판문점 도보다리를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극심한 갈등이 노정'되고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 되어' 온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바꾸어 근로자의 생활 보장과 '고용 경제' 상황을 보다 균형있게 고려하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최저임금 결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양두구육이다. '고용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대통령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더 뒤로 미루겠다는 결정을 복잡하게 '마사지'한, 늑대를 강아지로 변장시킨 화장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빙빙 에둘러 결정 체계 개편이니 최저임금 구간 설정 전문가위원회 신설이니 복잡한 전문 용어를 지루하게 나열해서 국민들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게끔 만든 것이다.
이 개편안은 대한민국 국가의 주인은 관료이고, 국민생활과 직결된 국가의 주요 의제는 관료가 결정한다는 선언이다. 헌법 제7조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규정을 전면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일종의 '봉사자 쿠데타'다. '이명박근혜'를 훌쩍 건너뛰어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부역 공무원으로 회귀한 노동부 공무원들의 뻔뻔함이 가히 양승태 사법부와 동급이다.
노동계와 아무런 협의와 합의 없이 그냥 노동부가 이렇게 할 예정이라고 불도저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그 발상이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나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정면에서 위반하는 이런 가짜 홍보 선전 전략이 태극기 부대의 가짜뉴스처럼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발표되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최저임금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 노동자 수만 알바 노동자를 포함해서 자그마치 4백만 명이 넘는다.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노동자 수까지 합하면 그 수는 배가 넘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최저임금 때문에 한국경제가 망하고 있고 망할 것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확성기를 틀어대는 이른바 주류 보수 언론의 소음 때문에 귀에서 피고름이 날 지경이다.
다시 묻고 싶다. "이게 나라냐?"
진실로 묻고 싶다. 노동부 관료들에게는 최저임금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들의 비명과 고통이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보이지도 않는 저 밑바닥 지하 최저계급의 투명인간이란 말인가. 오늘도 노동 현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빨려 들어가 죽고, 떨어져 죽고, 깔려 죽고,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죽고, 매일 5명 이상이나 산재 사고로 죽는 노동자들은 그저 재벌들 배불려 주기 위한 한 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진실로 다시 묻고 싶다. 촛불을 들고 국민들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다시 외치고 싶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위하는 결정이라면 노동부장관과 노동부 공무원부터 최저임금으로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 쇼라도 좋으니 노동부장관이 최저임금으로 몇 달이라도 살아보라. 최저임금이 나라를 망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 교수, 기자들도 최저임금으로 살아보라.
대통령부터 최저임금 생활을 실천해보라.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면 대통령과 홍영표 의원, 경제 부총리도 최저임금으로 1년만이라도 살아보라.(☞관련기사 : 대통령 봉급의 기준, 최저임금으로)
대통령은 5년 동안 청와대에 살면서 월세도 안낸다. 밥값도 안 낸다. 교통비도 안낸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1년간 최저임금으로 살겠다고 하는 그 선언보다 대통령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정책이 무엇이 있을까. 지난 해 최저임금 개악을 밀어붙인 홍영표 대표도 젊을 때는 유명한 노동운동가였다. 최저임금보다 높았지만 그도 1980년대에는 대우자동자 위장취업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그 당시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껌 값이었다.
군사분계선을 단 한 걸음으로 부너뜨린 판문점 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혁명을 폄하하자는 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살아온 이력과 성격 자체가 진지하고 성실한 삶의 궤적을 보여 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 정신에 투철한 정의로운 대통령으로 남길 간절히 기대한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팍팍함을 아파하고 공감하는, 노사간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을 촉진하는 봉사자 대통령이길 간절히 희망한다.
최저임금이야말로 공론화위원회를 열어 주권자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이전에는 기업주 입장을 대변하는 국가가 결정했다. 문재인정부는 이런 70년 된 관행을 깨트리고 노동자의 입장을 대폭 수용했다. 그런데 그런 흐름에 대한 반동이 바로 관료들에 의한 이번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악이다. 이제는 이같은 최저임금 결정 구조와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아예 확 바꿔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바꿔야 한다.
임금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협상을 해서 타협으로 정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국가가 주권자 가운데 절대 다수인 노동자와 가족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법(최저임금법)으로 노사정 세 당사자가 합의해서 결정하도록 만든 복지 정책이다. 국가가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활 안정을 보장해야만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판사 등 모든 공무원은 권력자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 전체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만 하는 머슴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공무원에게 주는 급여는 임금이 아니라 굳이 봉사의 댓가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 봉급이라고 부른다.
봉급은 "직무의 곤란성과 책임의 정도에 맞도록 계급별·직위별 또는 직무등급별로", "일반의 표준 생계비, 물가 수준,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정하되, 민간 부문의 임금 수준과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결정한다.(국가공무원법 제46조) 이 조항은 헌법 규정에 따라 전체 국민의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최저임금에 따라 정한다고 바꿔야 한다. 국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해 봉사하겠다면서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주권자를 외면하고 박근혜처럼 국민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봉급을 받으면서 훨씬 더 호화롭게 제왕처럼 생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2018년 11월 1일 개정된 인사혁신처 예규 제62호 '공무원 보수 등의 업무지침'에 따르면 2019년 대통령 연봉은 2억2629만7000원이다. 2019년 최저임금의 10.8배에 이른다. 대통령 봉금을 최저임금으로 정하고,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체험하면서 국가 정책을 펴 나간다면, 최저임금 논란은 해결의 실마리가 열릴 수 있다. 대통령 봉급의 기준이 최저임금이라면 당연히 다른 공무원 임금 기준도 동일하게 바뀔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입법부 국회의원의 세비 기준도 최저임금으로 바꿔야 한다. 사법부인 법원 판사들과 공무원들의 봉급 기준도 최저임금이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은 주인으로서 공무원들에게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실천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최저임금 결정은 노동부 관료나 전문가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하는 것이다. 우선 최저임금 공론화위원회부터 당장 요구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게 촛불을 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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