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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협약 어겨 나라 먹칠해도, 정부는 눈 뜬 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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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협약 어겨 나라 먹칠해도, 정부는 눈 뜬 목석

국제협약 위반 '불법 어획물' 유통해도...정부는 나몰라라

남극은 다양한 해양 생물 자원을 가진 곳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해양 생물의 남획을 막고자 국제 협약을 통해 '금어 조치 기간'을 정해 두었다. 해양 생물의 씨를 말리면 안된다는 국제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금어 기간에 물고기를 잡아들인다면? 국제 조약을 어기는 '불법 어획'이 된다. 이같은 불법 어획물은 유통되선 안된다. 불법을 통해 금전적 이익을 취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한 업체가 이 조약을 어기고 불법 어획을 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수산물을 팔아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까지 했다.

법망에 구멍이 뚫였다.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이하 까밀라) 관할 수역 금어조치를 어기고 불법 어획한 수산물을 판매한 H선사가 지난해 12월 말경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죄는 인정되지만, 피해의 중대성 여부 등을 감안해 불기소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있으되 법적 처분은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법 어획물을 판매한 회사만 이익을 얻게 됐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가능했을까?

7일 환경단체와 해수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H선사는 까밀라 관할 수역에서 금어조치 기간에 불법 조업을 실시했다. 이 사실을 확인한 해수부는 해당 선사를 경찰에 고발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행정처분을 실시키로 했다. 까밀라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에 관한 협약' 비준을 위해 구성된 국제 회의체로, 플랑크톤, 크릴새우, 고래 등 남극의 희소한 해양생물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국제 협약이다. 한국은 1985년 세계 17번째로 까밀라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공해(公海)인 남극 해양은 오랜 기간 남획 등으로 인해 생태계 위협에 처했다. 현재 남극해 8개 지역 중 네 곳이 '취약한 해양 생태계(VME)'로 분류되어 특별 보호되고 있다.

까밀라는 이 같은 남극 생태계 보존을 위해 원양 어업에 관해 각종 규제 장치를 두고 있다. 원양어업의 경우, 1년 단위로 원양어업 허가를 받은 선사만 특정 어기에 한해 조업을 실시할 수 있다. 보통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2월 정도가 조업 가능기이다.

어획할당량도 정해져 있다. 해당 구역에 들어간 선박들의 총 어획량이 어획 한계에 다다르면, 까밀라는 추가 어획을 금지하고 수역 네 모든 선박의 철수를 명한다. H선사는 할당량 수치가 한계에 다다라 조업 중단 명령이 내려왔음에도 조업을 하다 해당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배를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후, H선사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리고 해경에 이를 고발했다. 해수부는 이 같은 조치로 취할 수 있는 대응은 모두 취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환경단체의 입장은 다르다. 해수부가 해당 선사가 불법 어획한 조업물에 합법어획증명서(DCD)를 발급, H선사가 불법적으로 얻은 어획물을 유통할 수 있게끔 도왔다는 입장이다. H선사는 DCD 발급 후 조업할당량 초과분을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판매해 수억 원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단체는 해수부가 사실상 불법 어획물의 유통을 지원해 국제적 약속을 어겼다는 입장이다. 즉, DCD의 적법성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 되는 셈이다.

이날(7일) 환경운동연합과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정의재단(이하 환경단체)은 공동 성명서를 내 해수부의 DCD 발급이 부적절하며, 까밀라 협약도 정면 위배했다고 비판했다. 환경단체는 "형사처벌 절차 한계를 핑계로 해수부가 보존조치 위반임이 확실한 불법 어획물의 양륙과 국내 반입, 국내외 판매까지 가능토록 도와준 것"이라며 "H선사가 보존조치 위반 어획물을 팔아 수익을 취하도록 해수부가 도운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환경단체는 이번 기소유예 처분에 따라 국제기구에서 공식 확인된 불법 어획 사건이 국내에서는 재판에 회부조차 되지 않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은 "특정 업체를 위한 '봐주기' 식 대응 아니냐"며 "'불법, 비보고, 비규제(IUU) 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문' 취지에 명백히 반하는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까밀라 협약은 불법어획물에 한해 DCD 발급을 금하고 있다. 까밀라 협약 중 '이빨고기 조업에 대한 보존조치 제5조'는 "까밀라 관할 수역 조업 중 IUU 어업이 간주될 경우, 기국은 DCD를 발급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까밀라 협약 13조는 IUU 어획물의 수입, 수출, 재수출도 금지하고 있다. 해수부 조치는 해당 협약 내용과 충돌한다.

오랜 기간 국제 사회에서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목되던 한국은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과 'IUU 어업 근절을 위한 장관급 공동선언문'을 발표, 원양 조업에 관해 국제 규범을 준수하겠다고 대내외에 공언했다. 현재 한국은 까밀라 이행준수상임위원회 의장국이기도 하다.

까밀라 협약 의장국에서 해당 협약을 정면 위반한 불법어획물이 유통되는 사건이 일어난 셈이다.

이 같은 환경단체의 지적에 해수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원양산업과 관계자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DCD를 발급한 이유는 해당 사건이 처음 확인된 당시에는 법적으로 불법 어획물인지 아닌지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특성상 곧바로 부패하는 수산물을 사법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임의로 유통을 막을 수는 없다"라고 반론했다.

이어 "향후 법적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하기 위해 해수부는 DCD 발급과 동시에 해당 선사의 어획량을 확인했다"며 "사법부 판단 결과 불법임이 확인될 경우, 해당 어획량에 대한 수익을 몰수키 위한 조치"였다고 덧붙였다.

해수부의 설명에 따르면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져 결과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H선사의 '불법을 통한 이익금'을 환수할 수 없다. 불법 여부가 가려지기 전까지 이미 획득된 수산물의 처분을 미루는 것은 부패 가능성 등으로 인해 곤란할 수 있다. 그러나 불법 어획물이란 게 확인된 후에도 부당 이익을 환수할 수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징벌적 조치'가 필요한데 너무 쉽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같은 방식이라면, 유사한 '불법 어획' 사례가 재현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애초 관리 감독 문제에 있어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다는 점에서 해수부는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번 일은 까밀라 협약과 국내법 간 충돌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이번과 같은 일에 대비해 국제 사회에 불법 어획 의심물에 관한 DCD를 별도로 신설해달라고 제안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문제의 불법 어획물은 사법부 판단과 무관하게 최소한 압수나 공탁 등을 통해 이익금이 위반자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단호히 조치해야 할 사안"이었다며 "해당 사건과 관련한 부실 대응에 대해 해수부가 공식 사과하고, 담당 공무원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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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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