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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눈물? 얼어붙은 그들의 '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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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눈물? 얼어붙은 그들의 '피눈물'!

[남극 탐험의 진실] 에드워드 라슨의 <얼음의 제국>

어렸을 적 습득한 지식의 힘은 대단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어릴 적 배운 지식은 주술처럼 인생을 지배한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예를 드는데, 하나는 '조력 발전소는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그저 갯벌을 막아 댐을 짓는 토건 사업의 일종일진대, 어릴 적 받아들인 명제 때문에 긍정을 부정으로 돌리기 힘들어진다.

또 하나는 그 유명한 로버트 팰컨 스콧과 로알 아문센의 남극점 정복 경쟁이다. 아문센은 승리자, 스콧은 패배자, 아문센은 개를 끌고 갔지만 스콧은 말을 끌고 가서 졌다는 것, 개는 한 마리 죽어도 전력 손실이 적지만 말은 한 마리 죽으면 손실이 크다는 것, 그래서 스콧은 귀로 길에서 쓸쓸히 죽어가야 했다는 것. 어린 우리는 생각했다. 스콧 말고 아문센처럼 치밀하고 영리해야지.

에드워드 라슨의 <얼음의 제국-그들은 왜 남극으로 갔나>(임종기 옮김, 에이도스 펴냄)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남극 탐험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특히 영국의 탐험 기록을 중심으로 다뤘는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당시 남극 탐사의 거의 대부분이 영국에 의해 수행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영국은 아문센이 먼저 남극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대해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멍석을 깔았는데, 남이 와서 깃발만 꽂은 꼴.

특히 아문센은 영국인의 입장에서 '가로채기'의 명수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오랫동안 북극 항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결국 1845년 존 프랭클린이 북극 항로 탐험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프랭클린의 아내는 탐험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고 영국 사회는 그를 구하기 위해 10년 이상이나 여러 차례 수색대를 파견했다. 그런데 아문센은 북극 항로 주파를 너무 쉽게 해냈다. 영국의 입장에선 허탈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극점까지 뺐기고 말다니!

▲ <얼음의 제국 : 그들은 왜 남극으로 갔나>(에드워드 라슨 지음, 임종기 옮김, 에이도스 펴냄). ⓒ에이도스
스콧은 남극점 정복에 실패했지만 그는 남극 연구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 책은 잊힌 남극 과학사를 불러들여 스콧의 명예 회복을 시도한다. 북극으로 향하던 아문센이 1909년 돌연 배를 돌려 "프람 호가 남극 대륙으로 향하는 것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라고 유럽에 타전했을 때부터, 남극 과학사는 남극에 관한 우리의 시각에서 배제돼 있었다. 그 뒤 남극은 아문센과 스콧의 세기의 대결장으로 묘사됐고, '위대한 국제 남극점 정복 경주'가 됐다.

남극 과학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낯설다. 원래 남극 탐사의 본원적인 목적은 과학 탐사였다. 1839년 로스 해를 지나 남극 대륙인 로스 섬(그 때는 대륙인지 몰랐다)을 발견한 제임스 클락 로스가 영국 해군에 받아든 명령은 '자기과학의 발전을 위해 자남극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1901년부터 영국남극조사단(BAS)의 일원으로 위대한 두 탐험가 스콧과 어니스트 섀클턴이 함께 했던 대륙 탐사도 다윈의 진화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목적이 컸다. 펭귄도 고대의 날지 못하는 새들과 현대의 새들 사이의 살아있는 연결 고리로 주목을 받았다.

탐험대에는 생물마다 담당 과학자 및 대원이 있었다. 물고기와 해양 무척추 동물 담당, 해양 미생물 담당, 물개와 바닷새 채집 담당 등 각기 목적을 부여받았다. 때때로 대원들은 며칠 동안 펭귄 포획을 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나다가도 평상시에는 갑판에서 야생동물 표본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스콧은 이런 탐사의 공식적인 목적에 충실했다. 아문센이라면 '더 빨리 남극으로!'를 외쳤겠지만, 스콧은 1902년 탐험 때 대서양의 무인도에서 예정에 없던 체류를 하기도 했다. 스콧의 허락 아래 대원들은 보물찾기를 하는 소년들처럼 무인도를 누비며 표본을 수집했다. 스콧은 말한다.

"박물학자 몇이 그곳에 상륙했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있는 곳이라, 해변으로 가 표본을 수집하게 한다고 해서 시간 낭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1909년 스콧과 아문센은 세기의 남극점 정복 경쟁을 벌인다. 원래 북극해에 표류하며 과학 조사를 수행하겠다며 프람 호를 출항시킨 아문센은 스콧이 있는 남극으로 돌연 목적지를 바꿨다. 아문센의 선언으로 스콧은 경쟁에 내밀렸다. 본의 아니게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느냐'는 남극점 정복 경쟁의 트랙에 올라서고 만 것이다.

애초부터 두 사람의 경쟁은 불평등한 게임이었다. 아문센은 탐험가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지만 스콧은 거대한 과학자 군단을 이끌고 남극에 갔다. 스콧 탐험대의 공식적인 주목적은 과학 탐사였지만(물론 스콧도 내심 남극점 최초 정복을 갈망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아문센은 노골적으로 남극점 정복을 외쳤다. 이 때문에 아문센은 스콧과 달리 남극점에서 가장 가까운 프람하임을 출발지로 택했다. 스콧의 남극 탐사에는 과학과 지리 연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 아문센의 탐사는 남극점 도달 그 자체가 목표였다.

스콧은 국가적 명령에 충실한 군인이자 관료였다. 남극점 최초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과학 탐사대로서 국가적 명령에 충실했고 조직 관리에도 크게 실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영국남극조사대의 역사에서 스콧을 빼곤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영국남극조사대는 남극에 관한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는 극지 최고의 연구 집단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바다 얼음의 변화, 크릴과 아델리·황제 펭귄의 감소 등도 이들이 밝혀 낸 과학적 성과다. 남극 측량 데이터를 세밀하게 수집한 스콧 탐험대가 없었더라면 영국남극조사단은 지금처럼 훌륭한 과학적 전통을 면면이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아문센은 승부를 즐긴 최초의 현대적인 스포츠맨이자 탐험 여정을 스스로 개척한 알피니스트였다. 그는 도전과 성취가 직업인 세계 최초의 프로 탐험가였다. 그의 알피니스트적인 면모는 북극항로 개척, 남극점 정복 그리고 스발바르 제도에서 알래스카까지 주파한 북극 열기구 횡단으로 이어졌다. 그 또한 남극점 정복 탐사에서 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내걸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였다.

남극 과학사를 통해서 스콧과 영국의 남극 탐사를 복권하려고 시도하지만 그렇다고 정치로부터 독립한 과학자들의 순수한 모험으로 영국의 과학 탐사를 추앙하기엔 무리가 있다. 남극 과학 탐사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은 이보다 복잡하다. 국가주의와 이에 따른 영웅의 창조, 대중들의 이에 대한 신앙 등이 복잡하게 얽힌다.

일례로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 사실이 알려졌을 때 영국은 처음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난 뒤에도 영국 사회는 스콧이 아문센보다 먼저 남극점에 도착했고, 단지 정복 소식을 보내지 못했을 뿐이라는 믿음을 접지 않았다. 영국의 저명한 신문 <타임스>는 사설에서 심지어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남극에서 여름을 난 스콧 함장의 탐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 또한 인생 최고의 도전에 성공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는 분명 12월 14일 이전에 남극점에 도착했을 것이다" (이 장면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서, 여러 신뢰할 만한 증거에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가 여전히 있다고 믿었던, 한국 사회가 지났던 한 터널을 연상시킨다.)

결국 스콧의 불운한 죽음 소식이 전해진 뒤 영국은 실망에 빠졌지만 이내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스콧은 국가주의적 영웅으로 기획됐다. 세계 대전에 나선 소년병들은 스콧의 <남극 일기>를 들고 전장에 나갔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맡은 바를 해내는 스콧의 마지막은 '비극적 낭만주의'로 채색됐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은 안심하고 평정심을 찾으라며 구호를 내놓았다. 지금도 영국의 문자적 랜드 마크인 이 문구는 'Keep calm and carry on!'이다. 런던에서 이 문구를 볼 때마다 외로이 죽어간 스콧이 떠오르고, 그를 둘러싼 보수주의가 생각난다.

ⓒ프레시안(손문상)

덧붙여 극지방 탐험의 역사를 간략히 간추리려면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극지방을 향한 대도전>(베르트랑 앵베르 지음, 시공사 펴냄)을 추천한다. 아문센과 스콧이라는 두 거물을 통해 남극 탐험사를 보려면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랑너 지음, 배진아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도 좋다.

캐롤라인 알렉산더의 <인듀어런스>(김세중 옮김, 뜨인돌 펴냄)도 권하고 싶다. 남극점 정복에 나섰다가 미련 없이 퇴각해 전 대원을 살린 어니스트 섀클턴의 이야기다. 섀클턴이 돌아와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아있는 당나귀가 죽은 사자보다 낫지, 안 그래?"

무엇보다 이 책 <얼음의 제국 : 그들은 왜 남극으로 갔나>는 남극 탐사를 사회적, 과학적 맥락으로 꼼꼼히 정리한 책으로 남극과 관련한 책들의 표준이 될 거 같다. 특히 앞선 책들이 공백으로 남겨뒀던 남극 탐험의 과학사를 훌륭히 복원한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아마도 남극에 대한 참고 도서를 길이 이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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