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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의 '양심'과 신재민의 '공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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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의 '양심'과 신재민의 '공익'

[기자의 눈] 진영논리 따라 춤추는 헌법적 가치

새해 첫 주부터 헌법적 가치를 담은 두 단어, '양심'과 '공익'이 수난을 겪고 있다. 국방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제도를 발표하면서 '양심'을 '종교적 신앙 등'이라는 용어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표현에 논란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한편에서, 일부 여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주장이 '공익제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공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양심'에 대한 공격은 주로 범(汎)보수진영과 그 지지자들 가운데서 나온다. 다분히 오해가 섞인 이들의 주장 요지는 이렇다.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라니, 그럼 군대 가는(갔다온) 사람은 비양심적이라는 것이냐.'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도덕적 마음가짐으로, 개인의 소신에 따른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 형성과 변경에 외부적 개입과 억압에 의한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윤리적 내심영역"(2001헌바43)으로 규정한다.

즉 양심은 '개인적'인 것이고, 개인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병역·집총 의무를 거부하는 이유가 사회의 일반적 가치판단과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판단만이 인정·보호할 가치가 있는 '양심'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컨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다수인 기독교 일부 종파의 교리뿐만이 아니라, 적극적 평화주의나 비폭력주의라는 정치적 신념, 나아가 예컨대 북한에 대한 정치적 판단 때문에 한국 군대에는 가지 못하겠다는 어떤 종북주의자가 있다면 그의 '양심'도 원칙적으로는 보호 대상이 된다는 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헌재 판단의 취지다. 이는 한국 진보진영과 인권단체의 전통적 입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영 논리'가 작동하면 이런 원칙도 때로는 뒤집히는 모양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그것도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으로 평가받던 일부 의원들까지도 "신재민 건이 공익제보가 된다면 한국은 관료 천국이 된다"거나 "국채발행 여부가 공익제보라는 판단에 어이가 없다"고 분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법률상 공익신고자의 요건은 '공익신고자보호법'이나 '부패방지법'에 정해져 있는데, 신재민 전 사무관은 이에 해당하는 바가 없다는 '실정법'적인 지적도 있다. 다만 이는 오히려 법률상의 미비로 봐야 마땅하지 '법률에 규정된 요건에 맞지 않기 때문에 공익제보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적 판단에 기운 것으로 보인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마찬가지로,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규정된 '공익신고'는 "공익침해 행위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만약 양심적 병역거부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어떤 개인이 주장하는 바가 반드시 결과적으로 공익에 부합해야 한다거나 다수 유권자의 판단과 일치해야만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면 공익신고 전반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공익신고'라는 용어는 종종 '양심선언'이나 '내부고발'로 표현되기도 한다.

즉 '초과 세수는 반드시 나라 부채 탕감에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 '국채 발행 여부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고유 판단 영역이며 선거로 뽑힌 청와대가 이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직간접적으로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경영상 판단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와는 별개로, 그가 공무원 생활을 하며 보고 듣고 느낀 바가 스스로의 '개인적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그를 '폭로'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헌재가 규정한 '양심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정부 정책결정 과정상,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상 신재민 씨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신 씨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면서 내놓은 것이 기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도 "폭로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기재부의 고발은 정부와 공공기관 내 부패 비리 및 권력 남용, 중대한 예산 낭비와 정책 실패와 관련한 내부자의 문제제기를 가로막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고, 행정 및 정책의 결정과 추진과정에 지나친 비밀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나아가, 정치적 내지 '정무적'으로 봐도 정부·여당이 '그는 공익제보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볼품없어 보인다는 점에서다. 그보다 '신 씨의 주장은 본인 양심에 따른 것이겠지만, 그의 주장은 사실관계도 틀렸고 주장의 취지도 공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정확하게 비판해야 한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3일 신 전 사무관 사태와 관련해 SNS에 이런 글을 썼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보는 의견과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충정도 이해된다. 공직자는 당연히 소신이 있어야 하고, 그 소신의 관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신이 담긴 정책이 모두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소신과, 정책의 종합적·합리적 조율은 다른 문제다."

퇴직자가 전 직장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말하는 게 꼭 공익에 부합할 필요는 없다. 신 전 사무관과 마찬가지로, 전역한 고위 장교들 가운데는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정책, 나아가 북한에 대한 '유화적' 군사조치 등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인권 보호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고 보기 어렵겠지만, 뭔가 불만이 있어 '폭로'를 하겠다면 그 말할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신 전 사무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주장하는 '재정균형 최우선', '시장에 대한 국가의 최소개입'이라는 교리는 지고지선의 진리가 아니라 토론의 대상이다. 그런 만큼, 그가 토론에 참여할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는 판단이 국군 해체로 이어지지 않듯, 그가 (비판자들이 보기에는 '틀린') 주장을 할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서 그게 곧바로 '관료 천국'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필요한 것은 고발이 아니라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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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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