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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스타플렉스 김세권, 떨고 있나?

[마음은 굴뚝같지만] "새해엔 흉의 길로 내달리지 않기를…"

기어이 해를 넘겼다. 이런 새해는 정말이지 맞고 싶지 않았다. 이로써 파인텍의 두 노동자 홍기탁·박준호는 2017년, 2018년, 2019년 3년을 75m 굴뚝 위에서 보내게 됐다.

지난해 12월 10일 파인텍 굴뚝 농성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부터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소가 있는 목동까지 4박 5일간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그리고 차광호는 오체투지를 마치자마자 몸이 회복될 겨를도 없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일주일 후에는 박승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나승구(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박래군(인권센터 사람 소장), 송경동(시인) 네 사람도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두 노동자가 또다시 굴뚝 위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할 수는 없다는 각오에서였다.

연말이 되자, 굴뚝 위 두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2월 27일 김세권 대표가 마침내 노사 간 교섭 석상에 나왔다.

"노조가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스타플렉스 본사로의 고용은 절대 불가하다."

3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교섭 석상에 나온 사측 대표가 단식농성 중인 노측 대표를 앞에 두고 한 말이다. 자신의 반복적인 약속 파기, 노사합의 불이행으로 수년간 투쟁 중인 노동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도해도 모자랄 판에 노사 간 교섭에서 법에 어긋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노동권, 아니 인권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태도였다. 그는 왜 교섭에 나왔을까.

12월 29일 2차 교섭이 진행됐다. 교섭에 들어가기 전, 김세권 대표는 돌발적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대한민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 불법으로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이 되고, 언론은 제조업자를 악마로 만든다."

수많은 언론사 기자 앞에서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굴뚝에 오르면 영웅이 되고 제조업을 하면 악마가 된다는 말은 뜬금없었다. 두 노동자가 굴뚝에 오른 이유를 다룬 글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왔는데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을 악마화한다며 억울해 했다. 노사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맥락 없는 '영웅과 악마' 언급은 대중의 관심을 돌리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노사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의 불찰로 인해 그동안 고통받았을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굴뚝 위의 노동자들과 단식 중인 노동자 및 연대 시민들의 건강이 심히 염려됩니다. 문제가 해결되어 하루 속히 농성이 해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대화에 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그의 첫 언론 인터뷰는 왜 이와 같을 수 없었을까. 연말이나 새해가 되면 막연히 떠오르는 설렘이나 기대가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기대였다. '혹시라도 미안한 마음이 생기진 않았을까? 과오를 뉘우친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였다.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회가 누군가에게 기대도 못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이 참담하다.

▲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시민들이 1일 파인텍 굴뚝농성 현장을 찾아 홍기탁·박준호 두 노동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그의 발언에서 주목할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불안함과 두려움이다. 노조가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악마로 비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그 자신을 더욱 인색하고 완고한 사람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주나라 때 편찬된 동양의 고대 경전 중 하나로,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으로 여겨지는 <주역(周易)>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處世上)의 지혜와 우주론적 철학을 알려준다. 주역은 장차 닥칠 운세를 미리 판단하기 위해 개인 또는 나라가 처한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길회인구흉(吉悔吝咎凶)'으로 분류했다.

길(吉) : 상서롭고 화평한 기운
회(悔) : 작은 허물에 대한 뉘우침이 있는 상태, 후회, 마음에 깨달음이 있어 고치려는 것
인(吝) : 교만한 버티기,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또는 마치 재물을 아끼듯 아까워서 고치려 들지 않는 태도
구(咎) : 누적한 허물의 가속화, 재앙을 초래하는 큰 허물로 발전
흉(凶) : 돌이킬 수 없는 재앙

많은 학자들이 길흉(吉凶)보다는 회인(悔吝)에 주목하는데, 정조(조선의 22대 왕)가 규장각 학사 심현진과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잘못을 고치는 것이 회(悔)이니 결국에 가서는 길(吉)하게 되는 이치가 있고, 잘못을 꾸며대는 것이 인(吝)이니 반드시 흉(凶)하게 되는 도가 있다."(2011년 7월 <동양철학> 35집, 곽신환의 '겸손한 늬우침과 교만한 버티기' 중)

주역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변덕이나 장난으로, 또는 운의 무작위적 불시착으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주역은 현재 상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를 올바르게 대처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김세권 대표가 주역의 교훈과 조선 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정조의 깨달음에 따라 새해에는 걷잡을 수 없는 흉의 길로 내달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마저도 모자란다면, 서양의 고대 경전을 보자.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에서 공통 경전으로 사용되는 구약 성경은 400년 동안 이집트 파라오의 압제에서 시달리던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한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사에 관한 책이다. 구약 성경에서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길흉화복이 하나님과 이웃 사랑, 진리와 정의, 공평의 실현에 달려있다고 선포한다.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 경험이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의 시원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은 동포를 노예 삼아 이집트의 파라오보다 더 강포하고 잔악하게 다루었다. 야훼 하나님이 선포한 복의 길을 버리고 화의 길을 따른 이스라엘은 마침내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각각 아수르와 바빌론에게 멸망했다.

동서양의 고대 경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김세권 대표가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2010년 8월 한국합섬 인수 시 체결한 노사합의와 2015년 7월 파인텍이라는 신설법인을 설립하면서 체결한 노사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점을 인정하고, 노동자들에게 사죄하면 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합당한 책임을 지면 된다. 어렵지 않다. 다섯 명의 노동조합원이 회사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망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언론이 자신을 악마화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탈피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해를 넘겼지만, 파인텍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의 공분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마음은 굴뚝같지만'은 2017년 11월 12일부터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씨와 박준호 씨가 하루라도 빨리 내려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연대 글입니다.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 차광호 씨는 2015년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올라 전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일인 408일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 12월 24일, 이 기록은 굴뚝 위 홍기탁, 박준호 두 사람에 의해 갱신되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다시 굴뚝 위에서 맞이하게 할 순 없습니다. 이들이 어서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노동자로서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응원하며, 파인텍 5명의 노동자들이 웃으며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길 기대하며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릴레이 연재를 이어갑니다.

법적으론 문제없단 말 들었을 때..."아 문제가 많구나"

"그 굴뚝 앞에 서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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