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뜨거운 쟁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다. 지난달 15일에 원내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합의했지만, 자유한국당은 금세 말을 바꿨다. 자유한국당 의원 총회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총력 저지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오가는 형편이다.
더불어민주당 쪽도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다.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냈던 더불어민주당이지만, 산하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한국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거듭 내놓았다. 자유한국당처럼 이 제도를 대놓고 부정하지는 못해도 공약 후퇴를 정당화하려고 끊임없이 새 논리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대 논리는 대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한국의 다른 정치 제도, 특히 대통령중심제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한다. 정말 둘은 서로 어긋나는가? 이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반론들이 제출되고 있으며, <프레시안> 지면에도 좋은 글이 여럿 발표됐다. 그러니 이 지면에서 이 논의를 번잡하게 반복하지는 않겠다.
오히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공방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의 핵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이번 개혁 논의의 출발점은 결코 여러 정치 제도들의 장단점을 가려 가장 좋은 제도들의 조합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대통령중심제에 가장 어울리는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논하는 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국회 임기 막바지에 매번 정치권만의 옥신각신으로 끝나버리곤 하던 선거제도 논의가 왜 이번에는 이토록 첨예한 관심사가 돼 있는가? 왜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눈길이 잔뜩 쏠려 있고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단식 농성까지 불사하는가? 물론 정의당(더 정확히는 진보정당운동)은 오래 전부터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의 관심과 기대는 단순히 진보정당 주변에 머물지 않는다. 시민사회 상당 부분이 선거제도 개혁에 힘을 싣고 있다.
이런 변화의 계기는 무엇인가? 단연, 2016~2017년 촛불항쟁이다. 촛불항쟁을 겪으며 우리는 한국 사회에 긴급하게 필요한 개혁 과제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모든 개혁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정치 개혁부터 먼저 이뤄야 함을 확인했다. 바로 이 깨달음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론이 시민사회 곳곳으로 확산됐다. 그리고 이 흐름이 결국 지금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기에 선거제도 개혁 토론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촛불항쟁의 복기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가 집단 학습한 정치 개혁 방향이 무엇인지부터 재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촛불 정신 실현에 가장 부합하는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선거제도란 정당 지지율을 국회 의석에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촛불광장을 닮은 국회를 만들기 위해
왜 지금 한국 사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한가? 촛불항쟁 경험에서 세 가지 이유를 끌어낼 수 있다.
첫째, 촛불항쟁의 승리는 광장을 채운 다양성 덕분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국회가 최대한 이 촛불광장을 닮게 만들자는 것이다.
사실 촛불항쟁 이전에도 광장은 있었다. 조금은 열려 있었다. 꾸준히 저항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어렵게, 참으로 어렵게 거리 한 구석을 지켰다. 그러나 분명 이들만으로는 항쟁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더구나 승리는 불가능했다. 그간 거리에 나서지 않거나 못하던 이들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그 중에는 물론 한때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지지한 중산층도 있었다. 거리에 나서지는 않았어도 투표소와 온라인에서 늘 그 반대편에 섰던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더 새로운 얼굴들도 있었다. 젊은 세대가 대거 참여했다. 20대뿐만 아니라 10대가 거리로 나왔다. 또한 다른 어느 집회보다 더 여성들이 활발히 참가했다. 여성이 많았기에, 그간 집회에서 무심코 반복되던 남성 중심적 관성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대안을 토론하는 낯선 광경도 나타났다.
촛불광장이 커질수록 광장을 채운 다양성도 커졌다. 그리고 광장이 더욱 다양해질수록 광장의 규모도 더욱 거대해졌다. 그 전까지 거리에 나오지 않았거나 거리에 나오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이 자신 있게 광장을 채운 덕분에 광장은 예기치 않은 거대한 힘을 갖게 됐다. 그 힘이 결국 보수 언론과 공안 기관, 정권과 국회를 압도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이 힘은 쿠데타 음모 세력까지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았다.
이것이 불과 2년 전의 뜻깊은 기억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제도 정치가 처한 상황은 촛불광장이 열리기 전 한국 사회 모습 그대로다. 광장이 활짝 열리기 전에는 수많은 사회 집단이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처럼, 지금 제도 정치권에서도 주역은 단 둘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이 두 거대 정당이 제도 정치를 양분하며, 두 당 모두 중산층의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에 가장 신경 쓴다. 단지 한 당은 중산층 가운데 산업화 세대를 대변한다면 다른 한 당은 민주화 세대에 토대를 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에서 지역구 선거 승패의 열쇠를 쥔 것이 중산층 조직과 여론이니 그들로서는 달리 어쩔 수도 없다.
그 결과, 다른 많은 계층과 집단의 열망과 이해관계는 제도 정치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선거 때는 양대 정당이 수많은 목소리를 다 받아 안을 것처럼 연기하지만, 여의도에 일단 들어가면 더 이상 연기는 필요 없다. 그래서 이들 아우성은 늘 산업화 세대 중산층과 민주화 세대 중산층의 이해관계라는 두 꼭짓점으로 끊임없이 흡수되고 소멸돼버린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 개혁은 계속 지연되어가며, 더불어 개혁의 난이도는 높아지고 실현 가능성은 낮아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이런 여의도 정치에 새로운 주역들을 불러들여 광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새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비록 당장은 지역구의 승자 독식 게임에서 승리할 자원은 없어도 한국 사회 전체에서 분명 일정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제도 정치 무대에 당당히 오를 것이다. 마치 촛불광장의 다양성이 늘어날수록 세상을 바꾸는 광장의 힘이 강해진 것처럼, 이런 새 주인공이 늘어날수록 국회에서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힘도 강해질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결국 정의당 같은 소수정당이 의석을 늘리려는 수단 아니냐고. 이런 말에는 이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껏 억눌려온 목소리가 기회만 주어진다면 정의당 같은 정당, 그러니까 양대 정당 아닌 정당을 통해 폭발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냐고.
더구나 이것은 현존 원내 정당들의 이해관계를 훨씬 넘어선 문제다. 기성 양대 정당뿐만 아니라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도 넘어선 문제다. 이들 정당만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다 받아 안기 힘들 경우에는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새 정당들이 등장해 그런 틀이 될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만들어 놓자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끊임없이 새 주역을 초대할 준비가 돼 있는 정치 말이다.
탄핵안 통과 때처럼 움직이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둘째, 촛불항쟁의 승리는 광장의 요구에 따라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국회 내 세력균형 덕분이기도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국회가 이렇게 탄핵안 통과 때처럼 움직이게 만들자는 것이다.
2016년 11월에는 아무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를 자신하지 못했다. 아니, 대다수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게 상식이었다. 그런데도 통과됐다. 아마도 이 점이 촛불항쟁을 '혁명'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국회에 양대 정당만 있었다면, 정말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우선 정의당이 있었다. 정의당은 의석은 얼마 안 되었지만, 촛불광장의 요구를 가장 먼저 제도 정치 무대에 퍼뜨리는 통로가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계속해서 탄핵 절차 추진을 미적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당의 압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국민의당도 있었다. 이 국면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경쟁이 더불어민주당을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좋은 자극이 되었다.
이것이 탄핵안이 제출되기 전까지 과정이고, 제출되고 나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새누리당 쪽의 균열과 분열이었다. 탄핵안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의 핵심 근거는 새누리당 의석이 전체 의석의 1/3이 훨씬 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12월 초에 촛불광장의 힘이 절정에 이르자 새누리당 안에서 드디어 균열이 일어났다. 새누리당 안에 대통령 탄핵이 불가피하다는 블록이 형성돼 마침내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물론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인 근본적인 힘은 촛불광장에서 나왔다. 그러나 국회가 끝내 이 힘에 맞설 수도 있었다. 그때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당시 국회는 원내 정당, 정파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세력균형 덕분에 광장의 요구를 집행하는 도구로서 모처럼 민심에 순응했다. 온건 다당 구도를 만든 그 해 4월 총선이 그 첫 번째 계기였고, 대중 항쟁의 충격에 따른 새누리당의 균열이 두 번째 계기였다.
어쩌면 이러한 원내 세력균형이야말로 대한민국 국회를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만들 가장 좋은 구도일지 모른다. 말하자면 탄핵안을 통과시킬 때의 정당 간 세력균형을 한국 사회 개혁의 정치적 조건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일단 기존 양당 정치가 이완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왼쪽에 이 당보다 더 철저하고 충실하게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정당(들)이 포진해야 한다. 이런 정당(들)의 지분이 늘어날수록 좋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새누리당이 점하던 정치 스펙트럼에 되도록 복수의 정당이 존재하며 서로 경쟁해야 한다. 이 당들이 한국에서 우파 정치의 방향과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놓고 경합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국회가 사회 개혁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은 결코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2/3 동의가 필요한 탄핵안까지 통과시킨 국회다. 그때라고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과반수는 아니었다. 모든 문제는 양강 구도 복원에서 비롯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후에 제도 정치와 시민사회 모두에서 촛불연합 유지에 힘을 기울이지 않은 데 반해 자유한국당은 새누리당 이탈 세력을 지속적으로 재흡수해 양강 구도를 부활시키고 있는 탓이다. 바로 이 양강 구도 복원 경향이 지금 개혁을 가로막는 '식물' 국회의 토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이와 반대로 탄핵안 통과 때처럼 작동하는 국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때처럼 민심을 보다 기민하고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는 원내 다당 구도를 정착시킬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정당들을 진출시켜 더불어민주당과 경쟁하게 할 것이고, 우파의 새 대표가 되려는 세력들이 생산적 경쟁을 벌이게 할 것이다. 이것이 촛불항쟁 이후 처음 실시되는 총선의 결과로서 가장 바람직한 구도다.
독점과 특권 없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셋째, 촛불항쟁의 기본 정신은 특권 타파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국회의원 특권의 토대가 돼온 거대 양당의 정치 독점을 타파할 것이다.
특권 세습 사회 타파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촛불항쟁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것이 촛불시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아니 그보다 더 최순실-정유라 일가와 삼성 재벌 이재용에게 분노한 이유였다. 최씨 일가와 이씨 일가는 각각 밀실에서 궁정 권력과 경제 권력을 독점하면서 부패를 일삼고 특권을 세습했다. 이게 당연시되는 나라는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촛불시민들의 극적인 개입은 더 없이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이후 국회에서 이 정신을 누구보다 앞서서 구현한 이는 고 노회찬 의원이었다. 그와 정의당은 국회의원 특별활동비를 시작으로 국회 안의 부당한 특권을 철폐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그간 이런 특권이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채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기성 양대 정당이 정치를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이들 거대 정당이 정치를 독점한 탓에 국회는 두 당만 묵인하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좋은 권력, 나쁜 권력이란 없는 법이다. 오직 감시 받는 권력과 그렇지 못한 권력이 있을 뿐이다. 물론 언론과 시민운동 단체가 밖에서 감시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컸다. 안으로부터의 감시와 견제가 함께 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특별활동비 폐지를 스스로 결단하는 국회의원들이 있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이런 정치 독점 구조를 약화시킴으로써 국회의원 특권의 기반을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촛불항쟁 정신이 국회 안에 생생히 살아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세 가지 측면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촛불항쟁 이후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선거제도임을 살펴봤다. 물론 찾으면 더 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치 '개혁'의 첫 번째 항목인 이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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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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