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것보다 하락 속도가 빠르다. 한마디로 일종의 균형점이 무너졌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대선 득표율과 지지율이 같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지지율을 지탱하거나 대체할 대안세력이 뚜렷하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역사상 가장 천박한 수구의 길을 치닫고, 민주당은 정체불명의 미로에 갇혔다.
최근 지지율의 추이를 면밀히 살펴보면 2019년은 유례없는 정치적 대혼란의 한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연말연시 문재인 정부는 입을 여는 대신 귀를 활짝 열고 미봉책을 넘어선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답을 내놓기보다 질문을 공유할 때다.
우왕좌왕하던 최근 몇 달, 청와대와 정부는 메시지와 소통을 잃었고, 민주당은 정체성을 잃었다. 숫자의 힘은 명확하다. 하지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 스스로 자신이 세상의 어디쯤에 존재하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내부자들끼리 더욱 폐쇄적으로 뭉쳐 새로운 기회마저 날려버렸던 전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질문 워크숍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통령은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왜 대통령이 되었나"를 되물어야 한다. 참모들도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원팀을 위한 철학과 슬로건, 메시지와 소통을 재정립해야 하는 시점이다.
몇 개의 질문을 통해 최근 지지율의 함의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것은 수많은 억측과 단순화에 대한 소박한 문제 제기다.
왜 급격히 하락했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었다. 촛불정부에게 기대한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실망했다. 장밋빛 환상은 늘 찾아올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정책의 중심축을 잃고 우왕좌왕한 결과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의 분석대로 박근혜 정부와의 상대평가 시간이 끝나고 절대평가 시간이 도래한 것도 주요 원인이다.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서 잘했다는 상대 효과가 소멸한 결과다. 하지만 지금 지지율이 절대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부 혁신의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을 대하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경제정책 실패가 주원인 아닌가?
그것은 보수언론의 프레임이다. 경제정책을 ‘성공과 실패’의 프레임에 올리면 정부는 백전백패다. 그 이상이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은 그것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정책 추진의 세밀함과 철학적 일관성이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심지어 보수집단이 집권했어도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각 당의 후보가 내세운 지난 대선 공약을 미루어 살펴봐도 그렇다. 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정책집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이후 우왕좌왕하면서 정책기조가 큰 상처를 입었다. 철학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을 이해관계로 접근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 공동체의 숙명이라는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했다. 단기적 부작용에 한없이 밀릴 것이 아니라 강력한 대안을 준비했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도 수세적으로 대응했다. 결과적으로 자영업자의 반발을 불렀고 정부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보수층은 좌편향으로 봤고, 중도층은 무능으로 읽었으며, 진보층은 배신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 정책에서 이 정부는 어느 한 축도 잡지 못했다. 불평등의 시대를 대하는 철학의 부재가 낳은 결과다. 기업과 보수언론의 반격이 이어졌고 여기에 대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정부는 결과적으로 경제적 무능 프레임에 들어갔다. 이 문제에 대한 대응 전선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과제다.
50대 지지층 이탈 원인은 무엇인가?
50대는 경제생활의 중심 세대다. 책임감이 가장 큰 세대다. 자신의 미래와 자녀의 미래를 동시에 생각하는 세대다. 정부의 무능-유능 프레임에 가장 민감한 세대인데, 그들의 평가가 무능 쪽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감찰관의 폭로사태는 옳고그름을 떠나 이 정부의 민정 시스템을 희화화시킨 측면이 많다.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설명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폭풍이다. 50대는 문재인 정부가 공정한 경제구조라는 큰 틀에서 뭔가를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재벌개혁은 손놓은 채 자영업자를 핍박한다는 프레임에 걸릴 만한 경제정책을 펼쳤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지나치게 개념적이어서 삶의 최전선에 있는 50대의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경제정책에 대한 다른 언어가 절실하다.
20대 남성의 경우는?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 20대 남성은 이념 정체성이 강하지 않다. 다만 청년실업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책임을 정부에게 돌리고 있을 뿐이다. 성평등 정책에 대한 감성적 반발도 있다. 전반적인 혐오의 확산도 문 정부를 압박한다. 사회적 불안을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게 전가하고 싶은 심리가 퍼졌다. 하지만 이것을 껴안을 만큼의 강력한 청년 대책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획기적인 청년 정책을 마련하지도 않았고 시행하지도 않았다. 분명한 것은 청년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갖지 않은 정부가 지지율을 유지한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년 세대는 기득권에 대한 박탈감이 분노에 가깝게 형성된 세대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폐쇄적인 코드 인사도 박탈감을 키웠다. 실패한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설명책임도 부족했다. 20대에게 희망을 주는 담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진보층의 반발은?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검찰개혁, 재벌개혁 등 이 정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적폐청산 작업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이런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경제정책이 급격히 재벌 친화적으로 이동한 것이 진보층의 로열티를 급격히 약화하고 있다. 은산분리 완화, 벤처 금융 차등의결권, 나아가 탄력근로제를 여당인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현실은 진보층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제주영리병원 허용과 공공기관 민영화 이슈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관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정권은 5년이고 재벌은 영원하다. 진보층은 이렇게 생각한다. 큰 물고기만 빠져나가는 비현실적 법률의 그물망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법과 민주주의가 자본에 의해 매수됐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김용균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특별히 관료적이고 안이했다. 전체적으로 정부가 진보적 어젠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다.
데드 크로스인가?
그 단어 자체를 싫어한다. 문재인 정부에게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도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가장 먼저 2019년 인적 쇄신을 지켜볼 것이다. 인사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2019년에 맞는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지지율은 사실 주체가 잘해서 유지되는 것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정부 지지율은 상대의 실수라는 목초지를 타고 질주하는 말과 같다. 나경원발 실수와 홍준표발 혐오가 지지율 측면에서 정부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문재인 정부가 잘 할 때의 이야기다. 데드 크로스는 악의적인 프레임의 언어일 뿐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진심으로 두려워할 것은 단순 지지율이 아니라 국민들이 정부를 무능하게 인식하는 어떤 순간이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면 "추락하는 비행기에 앉아 있다면 아무리 안전띠를 매도 소용이 없다." 평형과 전진을 위한 새로운 결단이 필요하다.
김정은 서울 방문이 반전기회가 될까?
일시적 반등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것 자체로 정부에 대한 평가가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문제는 이벤트성 기획의 문제가 아니라 국정철학과 기조의 문제다. 기득권과 싸우라고 만든 정부 스스로 이전 정권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버린다면 지지를 받기 어렵지 않겠나.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물어야 한다. 좋은 것 여러 개를 마구 나열하는 정부가 아니라 하나의 가장 어려운 포인트를 돌파하는 정부여야 한다. 권력의 기득권자가 환영받으려면 잘못된 세상에 도전하는 길밖에 없다. 남북 문제는 하나의 돌파구일 수 있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해주고 싶은 말은?
당분간 입보다 훨씬 더 많이 귀를 열어야 한다. 인사도 보다 개방적이어야 한다.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단기적 효과에 대한 중독, 마약 같은 현실론에 대한 굴종을 넘어야 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최저임금은 보장되어야 하고 비정규직의 생명은 지켜져야 한다. 이 원칙이 흔들린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세력이 있을까.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친화적인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 맥락에서 존재 가치가 있을까. 체코의 전 대통령 하벨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다. 불가능을 꿈꾸지 않으면 가능한 것조차 이룰 수 없다. 나아가 가능한 것만 꿈꾸는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기득권 이익 카르텔을 강화하는 정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지지율을 회복하고 다시 중심을 잡으려면, 촛불을 다시 깨워라. 새로운 질문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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