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에는 <콜트 불바다 "우리가 진짜 콜트다!">라는 이름으로 홍대입구역 인근 '걷고 싶은 거리'에서 음악 페스티벌이 열렸다(관련 기사 : "기타는 탐욕 채우는 도구 아니다"). 홍대 인디 밴드들은 2008년부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마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음악인들에게 소리를 부여해주는 '기능공' 역할을 하던 이들은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직접 음악인이 됐다. 악기 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 '콜밴'이다. 멋지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일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보탠 이 중에는 '권력을 되찾아와라(Take The Power Back)', '너의 적을 알라(Know Your Enemy)' 등 사회성 짙은 음악으로 전 세계 록 팬들을 열광케 했던 레이지어게인스트더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RATM)도 있다. RATM의 보컬 잭 들라 로차(Zack de la Rocha)는 콜트 노동자들을 위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들 악기 노동자에게는 또 한 명의 조력자가 있었다. 수년에 걸친 법정 투쟁 과정을 지켜본 김선수 변호사다. <편집자>
콜트악기주식회사(이하 '콜트')는 전자기타의 제조·판매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1973년 8월 31일 미국의 Westheimer Corporation이 49%, 국내 주주가 51%의 지분을 출자하여 설립되었다. 2005년 매출액 기준 악기 제조 회사로는 국내 5위, 전자악기 제조 회사로는 국내 2위였고, 전자기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약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회사 홈페이지에 소개되었다.
콜트는 1987년 회사에 노동조합(이후 산별노조로 되어 '전국금속노동조합 인천지부 콜트악기지회'로 됨)이 설립되자, 이듬해인 1988년 7월 음향기기의 제조·판매를 위하여 자회사 주식회사 콜텍(이하 '콜텍')을 설립했다. 콜텍은 1990년 9월 악기사업부를 신설하였고, 1991년 12월 논산시에 있던 악기제조사를 흡수합병하여 통기타와 전기기타를 제조하는 대전공장을 설립했다.
콜트는 1995년 6월 인도네시아에 P·T Cort Indonesia(이하 'PT콜트')라는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기타와 음향기기를 생산·판매했다. 콜트의 PT콜트 지분은 99.8%였는데, 콜텍이 2008년 12월 콜트 지분을 100% 인수했다. 콜텍은 1999년 5월 중국 대련에 콜텍대련유한공사(이하 '콜텍대련') 상호의 자회사를 설립하여 기타와 음향기기를 제조하고 있다. 콜텍의 콜텍대련 지분율은 100%다. 콜트가 생산한 기타들을 판매하는 전문 매장으로 콜트 대표이사 개인 회사로 '기타넷'이라는 상호의 회사가 설립되어 있었는데, 2008년에 콜트 대표이사의 동생을 대표이사로 해서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였다(콜트 대표이사가 42.51%의 지분을 보유하였다).
콜트의 2대 주주이던 Westheimer Corporation이 2005년에 그 소유 지분 전체를 콜텍에 양도하고 철수했다. 콜트는 2005년 11월 주주총회 결의에 따라 유상감자를 하여 자본금 약 10억5000만 원을 감소했고, 이 과정에서 콜텍 지분에 대한 감자차손액 89억4500만 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처리했다. 이로 인해 대표이사 및 특수관계인이 콜트 주식의 99.63%를 소유하는 사실상 1인 주주로 되었다.
콜트, 콜텍, PT콜트, 콜텍대련, 기타넷은 형식상 별개 법인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콜트 대표이사 1인 주주 회사라 할 수 있다. 상호간에 절대적인 비중의 매입·매출이 이루어졌고, 생산과 관련해 외국 바이어와 맺는 계약을 콜텍의 서울 본사가 일괄적으로 하고 수주물량을 각 공장으로 배분하며, 각 회사에서 생산된 기타는 모두 '콜트'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였다. 직원들도 하나의 법인체와 같이 인사 이동되었고, 콜트의 조직 기구표 내에 콜텍과 PT콜트가 명기되어 있었다.
콜트는 1997년경부터 생산 장비를 PT콜트로 이전하고, 관리직과 기술직 직원들을 PT콜트에 파견하여 PT콜트의 생산 능력을 제고하고 콜트의 생산 물량을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5개 관련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콜트 대표이사는 2003-2004년경부터 콜트와 콜텍에는 시설 투자를 하지 않은 반면, PT콜트와 콜텍대련에는 대규모 투자를 했다. 콜트의 생산품을 대체 생산할 수 있는 PT콜트의 2005년 이후 매출액과 경상이익 및 당기순이익은 상당한 규모를 유지했고, 특히 2007년에 대폭적으로 증가했다.
▲ 악기 노동자들은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밴드를 만들고 홍대 앞에서 공연을 했다. ⓒ자립음악생산조합 |
경영해고 과정
콜트는 주문 물량을 해외로 돌리면서 경영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2005년 11월 이후 2007년 1월까지 수차 순환휴직을 실시하고는 2007년 1월 3일 시무식에서 경영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콜트는 노동조합에 경영해고를 위한 노사 협의를 요구했고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요청하여, 실질적인 협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콜트는 일방적으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가족 현황 조사서'를 배포하여 이를 작성하도록 해서 제출받았고, 노동조합에 해고 시기, 인원, 절차 등 경영해고 실시 계획을 통보했다. 콜트는 일방적으로 근속 기간에 따라 최대 통상임금 12개월분을 퇴직 위로금으로 주는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했는데, 18명의 근로자가 이에 응했다.
콜트는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을 임의로 정하여 대상자 38명을 선정한 후 이를 노동조합에 통보했다. 대상자 38명 중 11명이 추가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콜트는 2007년 4월 12일 자로 주요 조합원 등 20명과 산재 요양을 받았던 5명을 경영해고 했다('1차 해고').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
해고된 노동조합 간부들과 조합원 등 19명은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간부사원 한 명이 독자적으로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가 병합 처리되어 20명이 함께 절차를 진행했다. 산재 요양을 받았던 5명은 별도로 인천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절차를 진행했다. 위 5명은 인천지방법원에서 승소하였는데, 콜트가 항소하여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일 때 일정한 금원을 지급받는 내용으로 합의하여 절차를 종료했다.
지방노동위원회 구제 절차가 진행 중인 2007년 7월 10일 콜텍은 대전공장을 폐쇄하고 생산직원들을 모두 경영해고했다. 이에 해고된 콜텍 노동자들은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2007년 8월 17일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제 명령을 했다. 콜트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2008년 2월 15일 콜트의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콜트는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명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던 2008년 8월 31일 콜트는 인천공장을 폐쇄하고, 당시 근무하고 있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2명을 제외한 근로자들이 희망퇴직에 응했고, 콜트는 지부장을 포함한 2명을 경영해고했다('2차 해고'). 콜트는 인천공장을 폐쇄하고 생산 설비를 PT콜트로 이전하고 그곳에서 약 1500여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여 월 5만 대가량의 기타를 생산하고, 콜텍대련에서 450 내지 500여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여 1일 800 내지 900여 대의 기타를 생산했다. 기타넷은 콜트 브랜드의 신상품 모델들을 계속 내놓았다. 2차 해고된 두 사람은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를 밟지 않고 바로 인천지방법원에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1심의 진행 및 판결
콜트가 행정소송을 제기한 단계에서 인천에서 노동 단체 활동을 하는 고등학교 후배가 노동조합 간부들과 함께 사무실을 방문하여 사건을 수임하게 되었다. 콜트가 인천공장을 폐업할 조짐을 보여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던 1차 해고자 20명은 2008년 4월에 인천지방법원에 해고 무효 확인 및 임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콜트가 소유한 3개의 공장부지와 사원아파트 등 부동산을 가압류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된 행정소송은 2008년 10월 16일 선고됬다(2008구합12122 판결: 재판장 판사 정종관, 판사 권창영, 판사 정혜은). 결과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을 취소하여 우리가 패소했다. 이에 대해 항소하여 서울고등법원 행정부에 계류 중일 때 인천지방법원에서 진행된 민사소송이 2009년 5월 14일 선고되었다(2008가합7082 판결: 재판장 판사 최은배, 판사 정현식, 판사 서영호). 민사소송에서는 우리가 승소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의 결론이 달리 났다.
핵심 쟁점은 경영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영업손실 발생과 당기순이익 감소 등의 몇몇 경영 실적과 부평공장 폐업 등을 고려하여 경영해고를 해야 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인천지방법원 판결은 "경영상 이유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보기 위하여는 (…) 기업 경영의 위험과 이윤 창출의 결과에 따라 생활의 터전이 되는 일터를 잃게 되고 불안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근로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은 단순히 주주나 투자자의 의사에 따라 운영되고 정리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그 기업이 존재하게 된 많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 그 존속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고, 단순히 도산의 위험성이나 장래의 막연한 경영상의 위기라는 이유로 그 기업을 폐지하여 근로자를 해고하고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는 방향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고 법리를 전개한 후에, 해고 당시 성장성 또는 수익성 측면에서 콜트의 경영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안전성 측면에서는 매우 양호하였고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해고를 해야 할 정도의 경영상 필요 또는 그 긴박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요건에 대해 지극히 형식적으로 판단하여 경영 형편이 어렵다는 점에 부합하는 일부 지표에 주목해서 바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나아가 나머지 요건인 해고 회피 노력, 공정한 대상자 선정 기준의 작성과 그에 의한 대상자 선정, 근로자 대표와 성실한 사전 협의 절차에 대해서도 콜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반면에 인천지방법원 판결은 경영해고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주목하여 신중한 접근을 함과 동시에 콜트의 다양한 측면을 세밀하게 고려하여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2차 해고된 두 명의 사건은 한 명이 소송 중에 합의하고 소를 취하하여 위원장 한 명만이 소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인천지방법원은 2009년 9월 3일 위 사건에 대해 판결을 선고했다. 인천공장 폐쇄를 이유로 한 것이어서 결과가 걱정되기도 했는데, 해고 무효 확인 및 복직 시까지의 임금 청구 모두 인용됐다(2008가합14387 판결: 재판장 판사 최은배, 판사 서영호, 판사 손주희).
폐업이 경영해고 이유로서 정당한지 여부에 대하여, 콜트가 폐업 선언을 하고 등기부상으로는 기타 제조 판매업을 중단하였지만, 해산 결의나 정리 절차를 밟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콜텍을 통해 관련 회사들을 하나의 회사처럼 지배하면서 폐업 전과 동일하게 기타 제조 판매업을 하고 있으며, 콜트가 국내 사업장을 폐쇄할 필요가 있었다 해도 근로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해고의 방법이 아니라 타 업체 취업 알선, 자연 감소 인력의 비충원, 업종 전환과 기존 근로자들의 전환 업종 배치, 직업 교육 훈련, 직업 능력 개발, 근로자들의 재취업 등 직업 상실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를 충분히 행할 수 있었다고 보이는데도 그러한 노력을 행하였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부평공장 폐업은 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RATM의 보컬리스트로 세계적 스타인 잭 들라 로차가 콜트·콜텍 악기 노동자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잭 들라 로차가 이윤엽 씨의 판화가 디자인된 티셔츠를 들어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
행정소송 및 민사소송의 2심 진행
행정소송 2심이 계류 중인 서울고등법원(제1행정부)에 위 민사 1심 판결문을 제출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8월 11일 판결을 선고했는데, 민사 1심 판결을 대부분 수용하여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을 취소했다(2008누32548 판결: 재판장 판사 안영률, 판사 신헌석, 판사 조정현). 다만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요건에 대해서는 기왕의 대법원 판례에 충실하게 법리를 전개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콜트가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콜트는 1차 해고자 20명의 민사소송과 2차 해고자(노동조합 위원장) 민사소송의 1심 판결에 불복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 두 사건(1차 해고 사건 2009나51921, 2차 해고 사건 2009나89117)이 같은 재판부에 배당되었는데, 결심 후 행정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보겠다며 기일을 추정했다.
콜텍 노동자들이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다른 변호사가 대리했는데 1심에서 근로자들이 패소했다. 요청을 받고 콜트의 인천지방법원 판결과 서울고등법원 판결 및 관련 자료를 건네주었는데, 결국 서울고등법원에서 2009년 11월 27일 1심 판결을 취소하고 근로자들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다(2009나39600 판결).
행정소송 및 콜텍 사건의 대법원 판결
콜트는 1차 해고 행정 사건에 대해 2009년 8월에 상고했고, 그 이후 2009년 12월 콜텍이 민사사건에 대해 상고했다. 행정소송 2심에서도 부당 해고로 인정하는 판결이 선고되자, 콜트는 민사 2심과 행정 3심 단계에서 대형 로펌을 대리인으로 추가로 선임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문화인들과 연대하여 법정 외에서 복직 투쟁을 전개했고, 해외 음악제 등에도 원정 투쟁을 나가 유명 기타리스트 등 뮤지션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제나저제나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렸는데, 상고된 후 2년 7개월 만인 2012년 2월 23일에 대법원에서 두 사건이 선고되었다.
내가 맡은 1차 해고 행정사건은 오전 10시에, 그리고 다른 사무실에서 맡은 콜텍 민사사건은 오후 2시에 선고되었다. 행정사건에서 콜트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부당 해고로 인정한 원심 판결이 확정되었다(대법원 2009두15401 판결: 대법관 전수안(재판장) 양창수 이상훈(주심) 김용덕). 당연히 콜텍 민사사건도 상고 기각으로 확정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는 사건은 파기 환송되었다(2010다3629 판결: 대법관 박병대(재판장) 김능환 안대희(주심) 이인복). 재판부와 주심이 다르긴 하지만 다른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콜트 행정사건 판결은 원심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다만 콜트가 2008년 8월 31일 자로 기타 제조·판매업을 중단하고 부평공장을 폐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해고 이후의 사정이어서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함에 있어 고려할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괄호 안에 "다만 이 사건 해고는 부평공장 폐쇄에 수반하여 이루어진 해고와는 별개로서 그 정당성 여부에 관한 평가는 별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병기해서 부평공장 폐쇄를 이유로 한 2차 해고는 달리 평가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남겨놓았다.
반면에 콜텍 민사사건 판결은 콜텍 대전공장이 계속하여 영업 손실을 낸 원인이 무엇인지, 대전공장의 경영 악화가 구조적인 문제 등에 기인하여 쉽게 개선될 가능성이 없었는지, 대전공장의 경영 악화가 콜텍 전체의 경영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콜텍이 대전공장의 폐쇄를 결정한 것이 콜텍 전체의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등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심리한 다음에, 콜텍이 대전공장을 폐쇄하고 이에 따라 발생한 잉여 인력을 감축한 조치가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었는지에 관한 최종 판단을 할 필요가 있는데도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끼친 위법이 있다고 판단하고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민사 항소심 판결
1심에서 승소해서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던 1차 해고 민사사건(2009나51921 판결; 재판장 판사 황병하, 판사 명재권, 판사 김동규)과 2차 해고 민사사건(2009나89117 판결; 재판장 판사 황병하, 판사 명재권, 판사 김동규)이 행정사건 대법원 판결 선고 이후 재개되어 몇 차례 기일을 진행하고 2012년 5월 18일 선고되었다. 쟁점은 2008년 8월 31일자 부평공장 폐쇄가 정당한 경영해고 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다.
항소심 계류 중에 원고 6명의 정년이 지나 이들의 경우 해고 무효 확인 청구는 취하하고 정년까지의 임금과 퇴직금 추가분에 대한 청구로 청구 취지를 변경했다. 1심 판결은 폐업까지의 임금 액수를 확정해서 인용하고 그 액수에 대해서는 판결 선고일 이후부터 연 20%의 지연 이자를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그런데 폐업 시까지 확정된 임금의 액수가 일부 잘못되었다고 회사 측이 문제를 제기하고 자료를 제출하여 임금 액수를 일부 수정하게 되었다. 나는 민사사건이라도 중요한 사건에서는 결심 단계에서 최종 구술 변론서를 작성하여 이를 낭독하는 형태로 변론했다. 다음은 2012년 5월 4일 최종 구술 변론한 내용 중 일부이다.
"원고들이 해고된 지 5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났는데도 해고가 무효라는 점만 확정되었고, 구체적인 구제는 아직도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원고들은 해고 당시 대부분 40대 이상의 나이였고, 평균 근속 기간이 14년이었으며, 20년 넘게 근무한 사람도 7명이었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 정년에 도달한 사람이 6명에 이릅니다.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의 월급이 120만 내지 130만 원 정도, 상여금까지 모두 포함한 월 평균 임금이 200만 원 정도의 저임금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원고들이 저임금을 받고 청춘을 바쳐 성실하게 근무하는 동안, 1인 주주이자 대표이사는 자회사와 인도네시아 및 중국 현지법인을 설립하여 회사를 확장하였고, '콜트'라는 브랜드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켰으며, 거액의 배당금을 챙기고 많은 부동산을 취득하였습니다.(…)
기업을 주주의 소유라는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해서 기업에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존중하는 관점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시대의 조류로 정착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성장하게 되면 주주·경영자·종업원·소비자·지역사회·중소기업 등과 관계를 가지게 되어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는 동시에 사회의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업은 독선적인 경영이나 일방적인 이익 추구가 허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하여 일정한 행동을 취해야 할 책임이 부과되는데, 이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합니다.
피고 회사가 성장하고 대표이사가 엄청난 규모의 재산을 모은 것은 근로자들의 오랜 기간에 걸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희생과 노력, 국가와 지역사회가 제공한 인프라 등이 밑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피고 회사가 단지 한 해의 당기순손실을 이유로 장기간 희생한 근로자들을 해고하고 나아가 공장을 폐업하고 물량을 해외로 이전한 것은 근로자들의 생존권 보호 및 지역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조차도 방기한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이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노동계와 인천 지역 사회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음악인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지난 대법원 판결에 환호하였습니다. 또한 2008년 8월 31일 자로 해고된 근로자의 해고무효확인 사건에서 1심판결은 폐업을 이유로 한 해고의 부당성을 인정하는 소중한 판결을 한 바 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입니다. 원고들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승소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걸고 여태까지 겨우 버텨왔습니다. 귀 재판부에서도 위 1심 판단을 유지하여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살아 있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원고들의 한숨과 고통을 덜어주는 판결을 선고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와 같은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판결은 1심 판결과는 달리 부평공장 폐쇄가 불가피한 사정에 의한 것으로 노동조합의 단결권 등을 방해하기 위한 위장 폐업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2차 해고는 수출 경쟁력의 약화 등 구조적인 원인에 기인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서 경영해고의 나머지 요건도 갖추었다고 판단했다.
2차 해고 사건에 대해서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1차 해고 사건에 대해서는 정년이 도달하지 않은 원고들의 경우와 정년이 도달한 원고들로 나누어 판단했다. 정년이 도달하지 않은 원고들의 경우 해고 무효 확인 청구 부분에 대해서는 피고가 해고의 무효를 인정하여 원고들의 근로자 지위를 다투지 아니하고 정당하게 공장을 폐업하여 원고들의 지위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각하하고, 임금 청구 부분에 대해서는 콜트가 2008년 8월 31일 이 사건 공장 폐쇄를 통하여 정당하게 전자기타 제조업 자체를 폐지하였으므로 원고들이 2008년 9월 1일 이후에 근로 제공을 하지 못하는 것은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폐업 시까지의 임금만 인정했다.
정년이 도달한 원고들의 경우에는 급여와 추가 퇴직금 모두 폐업 시까지만 인정하고 폐업 이후 정년 시까지 기간에 대해서는 피고에게 지급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금전지급에 대한 지연 이자를 항소심 판결 선고 시까지 연 5%로 하고 그 다음날부터 연 20%로 함으로써 지연 이자에서도 많은 손해를 보게 되었다.
한편 회사는 정년이 도달하지 않은 14명의 원고들에 대해 2012년 5월 31자로 경영해고 한다는 통지를 보내왔다(3차 해고). 5년에 걸친 법적 투쟁 끝에 대법원에서까지 경영해고의 부당성을 인정받았지만, 결국 4년 전에 이루어진 공장 폐업을 극복하지 못하고 복직을 쟁취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상고와 대법원 판결 선고
민사 항소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였는데, 대법원은 2012년 10월 11일 판결을 선고했다{2012. 10. 11. 선고 2012다56825 판결(1차 해고건), 2012다54577 판결(2차 해고건). 두 사건 모두 대법관 김창석(재판장) 양창수 박병대(주심) 고영한}. 행정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2년 9개월 만에 선고된 것에 비교하면 민사사건에 대한 판결은 5개월도 안 걸렸으니 이례적으로 아주 빨리 선고된 것이다. 두 사건 모두 판결 이유는 반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었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 이유의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위장 폐업,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 등이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허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3차 해고자 14명은 다시 노동위원회를 경유하여 다시 불복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어서(내가 대리하지는 않고 있다) 콜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 탄압의 목적으로 폐업하고 다른 기업이나 개인 명의로 동종 사업을 계속한다면 이는 위장 폐업으로서 부당 노동 행위에 해당하고 이를 이유로 한 해고는 무효라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대법원 2011. 3. 10. 선고 2010다13282 판결 등). 그런데 동일 사업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계속한다고 해서 이를 달리 평가하는 것은 자본 이동이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타당하지 않다. 콜트 노동자들이 복직해서 기쁜 마음으로 기타를 만드는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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