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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3법 무산,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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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치원3법 무산,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행정학자가 바라본 사립 유치원 비리 사태

사립 유치원 비리 사태는 '정부 재원으로 민간을 통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며 '규정과 실제 운영의 괴리 허용'이라는 한국 행정의 특성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 지원-민간 제공'을 통해 효과적으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정부의 적절한 관리·감독이 필요한데 이의 핵심은 재정과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규정과 실제 운영을 일치시키려면 규정대로 운영해도 지속 가능하게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사립 유치원 비리 사태의 해결책이 지녀야 할 원칙은 분명하다.
① 유치원 예산 운영은 에듀파인 회계를 적용하여 투명하게 공개한다.
② 합법적으로 유치원 건물 제공 비용을 포함한 적정보상이 가능하게 한다.
③ 규정 위반 시에는 강하게 처벌한다. (필자)

사건의 개요

지난 국정감사 때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사립 유치원 시·도교육청 감사 결과를 공개한 이후 사립 유치원 비리는 커다란 사회이슈가 되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사립 유치원은 매년 2조 원이 넘는 정부 지원을 받는다. 유치원 예산의 절반 가까이 된다. 사립 유치원은 법이 규정하고 있는 비영리기관인 ‘학교’에 포함된다. 학교는 예산을 교육목적(혹은 학교운영)에만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교육청이 감사를 했더니 유치원 운영 이외의 목적, 이를테면 명품 가방 구입, 해외여행 경비처리, 개인의 세금 납부 등 유치원장의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경우가 상당수 적발되었다(친인척을 유치원 직원으로 등록해서 급여 챙긴 것은 논외로 하자). 그러다 보니 유치원 운영은 부실해져서 감사에 적발된 한 유치원은 한 끼 급식비가 880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요컨대 유치원 교육에 쓰라고 정부가 지원했더니, 이 돈을 원장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 예산이 이렇게 새고 있는데도 정부는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로서는 유치원 예산이 엉뚱하게 쓰인 만큼 내 아이 교육이 부실해졌을 테니 기막힐 노릇이고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도 내가 낸 세금이 저렇게 새고 있다는 데 분개한다. 비리 저지른 유치원 원장은 물론 나쁘고, 그 지경이 되도록 손 놓고 있었던 정부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번 문제에 대해 유치원 학부모를 위시해서 일반 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대충 그럴 것이다. 그러니 죄지은 사람은 처벌하고, 부정하게 빼돌린 돈은 환수하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관리·감독하자. 이게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이번 문제의 해법일 것이다(나아가서 사립 유치원은 못 믿겠으니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자는 생각도 들 수 있겠다).

엄밀히 말하면 국정감사 때 공개한 것은 과거의 감사 결과이고, 이미 감사 당시 위반 사항에 대한 조치는 비록 상당 부분 솜방망이 처벌이었지만 이미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처벌·환수 등의 제재 요구는 제쳐두더라도 유치원의 사과와 적절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은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 그게 상식적인 일 처리다. 그런데 지금껏 전개된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수습책의 전개과정

비리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일 처리의 시작은 상식대로 이뤄졌다. 처음 이 문제를 공론화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 주도로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박용진 3법 혹은 유치원 3법으로 불리며,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3법의 개정인 만큼 내용이 다양한데 그 중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 유치원을 지원하는 정부 돈의 성격이 현재는 ‘지원금’인데 이를 ‘보조금’으로 바꾸자
②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 사용을 의무화하자.
③ 현재보다 비리 적발 시 처벌 수위를 높이고, 간판만 바꿔 재개원하는 것도 어렵게 하자.

다소 납득이 어렵지만, 같은 정부 돈이라도 명칭이 유치원 학비를 지원하는 ‘지원금’이면 위반 시 강한 제재가 어렵고 유치원 운영을 보조하는 ‘보조금’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가령 이 돈을 교육목적 외로 사용했을 때 지원금이면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지만 보조금이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에듀파인은 현재 초·중·고 학교와 국공립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회계프로그램으로서, 이를 적용하면 돈의 사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물론 작정하고 거짓으로 기입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정리하면 돈의 사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부당사용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은 나를 포함한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오히려 이제껏 정부 돈을 받으면서 그런 조치가 없었다는 게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그런데 당사자인 사립 유치원장, 그리고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응은 달랐다.

‘유치원 3법’의 내용이 공개되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1만여 명이 모였다. 한유총은 이 법안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인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악법이라면서, 통과되면 집단 폐원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여론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자, 최근에는 ‘박용진 3법 결사반대’는 슬그머니 접어두고 대신 ‘시설사용료(임대료) 지급’을 내놓았다. 사립 유치원은 개인 재산인데 이를 통해 ‘유아교육’이라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그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용료를 내든 아니면 유치원 예산에서 사용료 징수를 허용하라는 것이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이 법안의 수정안을 내놓았다. 수정안의 핵심은 ① 현행대로 ‘지원금’ 성격 유지 ② 국가지원금과 학부모 부담금의 회계 분리다. 회계 분리는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은 국가지원금에만 적용하고, 학부모가 내는 유치원비는 지금처럼 알아서 회계를 작성하게 하자는 것이다. ‘보조금’이 아닌 ‘지원금’ 성격을 유지하자는 것은 위반 시 처벌 강도를 낮추자는 얘기다(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그렇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여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수정안 중 ‘지원금’ 성격 유지는 민주당도 수용했다. 하지만 국가지원금과 학부모 부담금의 분리 회계는 수용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모두 에듀파인 적용’과 자유한국당의 ‘국가지원금만 떼어내서 에듀파인 적용’은 평행선을 달렸고, 결국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한 법안은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체 ‘모두 적용’과 ‘분리 적용’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에 끝내 타협안을 찾지 못했을까? 앞으로도 유치원 비리 해결책이 만들어지려면 양 당이 합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이 ‘모두 적용’과 ‘분리 적용’의 충돌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두 주장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해결책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다음에 어떤 합의가 가능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얘기이다.

‘모두 적용’과 ‘분리 적용’의 의미

우선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분리 적용’의 의미를 명확히 하자. 이게 명확해지면 자연히 그와 대척점에 있는 ‘모두 적용’의 의미도 명확해진다. ‘분리 적용’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해 보는 것이 빠르다.

전술했듯 현행 법규에서도 사립 유치원은 모든 예산을 교육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며, 설립자(유치원장)가 투자수익을 챙길 수 없다. 그런데 예산 사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작정하고 일일이 감사를 벌이지 않는 한 위반을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적용하면 예산 사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그래서 위반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다. 결국 학부모 부담금은 에듀파인을 적용하지 말자는 것은 학부모 부담금은 교육목적 외로 사용하더라도 적당히 모른 척하자는 얘기다. 자유한국당은 그 대신 학부모 부담금 사용에 대해서는 학부모의 자율 감시를 받게 하자고 한다. 글쎄, 과연 학부모 자율 감시로 얼마나 위반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정리하면 에듀파인을 ‘모두 적용’ 하자는 것은 사립 유치원의 모든 예산을 투명하게 감시해서 위반하면 즉각 발견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는 사립 유치원의 모든 예산은 교육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현행 법 규정을 제대로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 반면에 에듀파인을 ‘분리 적용’ 하자는 것은 사립 유치원 예산 중 정부지원금에 대해서만 교육목적 사용이라는 법 규정을 충실히 적용하고, 학부모 부담금은 교육목적 외로 사용해도 눈감아주자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할까?

‘모두 적용’과 ‘일부 적용’의 타당성을 판단하려면 두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첫째는 불법을 묵인할 것인가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법 규정상은 교육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교육목적 이외 사용이 만연하고 정부도 이를 묵인해 왔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법은 제대로 지키는 것이 옳다. 당연한 상식이다. 그 점에서 자유한국당의 ‘분리 적용’은 타당하지 않다. 그보다는 차라리 ‘학부모 부담금은 교육목적 외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낫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불법을 눈감아 주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그리고 여기에 ‘단, 동일하게 에듀파인을 적용해서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는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자’와 같은 단서조항을 단다면 이것도 논의할 만한 대안이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따져봐야 하는 것은, 그렇다면 왜 그동안은 법이 안 지켜지고 이를 묵인해 왔는가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면 이를 풀어야만 앞으로는 법을 제대로 지키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치원 수입을 교육목적 외로 전용한 이유와 정부가 묵인한 까닭을 알려면 사립 유치원의 등장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사립 유치원의 등장 배경과 운영 관행

우리 사회에 사립 유치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다. 정부는 1981년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유치원 취원률 제고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유치원 설립조건을 완화하여 개인사업자 진출을 장려하고 이들이 유치원 운영에서 생기는 이익을 가져가는 것도 용인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지어 유치원 사업에 뛰어들었다(그 결과 지금도 사립 유치원의 대부분은 개인사업자다. 이에 비해 사립 초·중·고·대학교는 법인만 설립·운영할 수 있다). 그들은 유치원장이 되어서 자유롭게 유치원비를 책정하고 수입을 가져갔다. 비록 형식적으로는 비영리기관인 학교였으나 사실상 사설학원이나 마찬가지로 운영되었다.

당시 정부 지원은 미미했다. 사립 유치원에 대한 정부 지원이 본격화된 것은 누리과정이 시작된 2012년 이후다.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유아에게 적용되는 표준공통 교육과정을 말하며, 이 과정을 다니는 유아에게는 정부가 교육비를 지원한다.

정부가 막대한 금액을 지원하면서 유치원생이 늘었고 그에 맞춰 사립 유치원은 규모를 키웠다. 또 정부 지원을 받아도 학부모로부터 받는 유치원비는 크게 줄지 않아서 사립 유치원의 수입은 정부 지원 이후 상당히 늘었다. 게다가 막대한 정부 돈이 투입된 이후에도 과거의 운영 관행, 즉 유치원장이 수익 가져가는 것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니 정부 지원 이후 유치원 운영은 과거보다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괜찮은 수익을 보장했다. 특히 신도시 등에서 대형 유치원을 운영하는 원장들에게 유치원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물론 엄청난 정부 돈이 들어가는데도 정부가 완전히 나 몰라라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교육부는 과거보다 엄격한 재무회계규칙을 만들었고 각 시도 교육청은 감사를 하기 시작했다(박용진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자료가 바로 2013년-2017년 시도 교육청 감사결과 자료다). 그러나 위반에 대한 감시는 부족했고 적발해도 처벌은 솜방망이였다. 정부는 여전히 방조하고 묵인했다.

해법은 어떻게

정부 지원이 없을 때와 있을 때는 유치원 예산 사용이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일단 개인사업자인 유치원장 입장을 헤아려 보자. 웬만한 도시 지역 단독 건물 유치원은 못해도 수십억 원이라는데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 엄청난 돈을 들여서 유치원 사업을 시작했을까? 게 중에는 정말 수익은 생각지 않고 유아교육에 헌신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순전히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유아교육이라는 좋은 일도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도 얻을 수 있어서 시작했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 마찬가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립 유치원은 비영리기관인 학교다. 그래서 법대로 하자면 모든 예산은 교육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며, 설립자(유치원장)가 투자수익을 가져갈 수 없다. 물론 사립 유치원장들도 유치원 사업에 뛰어들 때, 이런 법 규정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수익 가져가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고 정부도 이를 막지 않았다(게다가 대법원 판례도 사적인 사용을 용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즉 다수의 평범한 유치원장들)에게 “이제부터 유치원 수입은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육목적 외의 사용은 금지하며 위반 시 엄벌에 처한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니, 나라면 어떨까?

상당 금액의 정부 지원을 받고 있으니 유치원 수입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은 받아들일 것 같다. 법규는 지키라고 만든 것이니, 위반하면 처벌하는 것도 수용할 것 같다. 단, 그 전에 법규를 상식적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것 같다. 구체적으로 내가 투자한 재산에 대한 적정수익은 합법적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할 것 같다. 이를 무시하고 “너희는 비영리기관인 학교를 운영하는 교육자다. 그러니 유치원 수입은 오로지 교육목적으로만 써야 하고 투자수익은 허용할 수 없다.”라고 법 규정만 들이대면 나 같아도 반발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유치원장이 투자한 유치원 건물에 대한 시설사용료를 허용하라는 한유총의 주장도 이해할 부분은 있다. 이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꺼냈으나 정부가 터무니없다며 일축했던 것이다. 당시 정부 입장과 한유총 입장을 가상의 논쟁 형태로 정리해 봤다.

정부 : 사립 유치원은 정부가 강제로 수용한 것이 아니다. 유치원장 스스로 건물 마련하고 교사 고용해서 자발적으로 벌이는 교육사업이다. 자기 사업에 사용하는 건물의 사용료를 따로 책정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한유총 : 자기 사업이라면 벌어들인 돈도 사업자 맘대로 쓰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번 돈은 교육목적으로만 쓰게 막아놓고 있지 않은가? 내가 사업해서 번 돈 내 맘대로 못쓰게 하니, 내가 투자한 것에 대한 적정수입이라도 가져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아닌가?

사업자가 자기 건물로 사업하면서 건물 사용료를 따로 책정하는 것은 확실히 회계원칙에는 없다. 그리고 유치원은 법적으로 비영리기관이므로 설립자가 투자이익을 가져갈 수 없다. 따라서 시설사용료를 허용하라는 한유총의 주장은 법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투자한 비용, 즉 유치원 건물에 대한 적정보상 요구 자체는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사립 유치원 비리는 현실을 무시한 법 규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니 해법은 현실을 반영해서 투자수익을 가져가도록 법 규정을 고치는 것일까? 이에 답하려면 먼저 분명히 할 게 있다. 현행 법규에도 원장이 수익을 가져가는 수단이 있다는 점이다. 우선 유치원장의 급여가 있다. 유치원장 급여는 제한이 없다. 그래서 대형 유치원의 경우 유치원장 연봉이 2억 원이 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다. 친인척을 행정직원으로 앉혀두고 급여를 챙길 수도 있다. 얼마 전 경기도 신도시에서 유치원 두 곳을 운영하는 한 가족의 경우 본인과 자녀 2인이 원장과 행정실장으로 있으면서 급여로 연간 6억 원 이상을 챙겼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를 보면 누구라도 흥분할 것이다. 하지만 잠깐 냉정하게 따져보자. 만약 이들이 급여 외에는 따로 챙기는 돈이 없다고 가정하면(사실 이게 중요하다), 이 급여에는 순수한 근로 대가 이외에 유치원 건물에 대한 수익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6억 원을 가져가는 것이 터무니없이 많다고 하기는 어렵다. 경기도 신도시 지역에는 원생이 수백 명인 대형 유치원이 많다(명품백 구입으로 논란이 된 모 유치원도 경기도 신도시에 소재해 있다). 이런 유치원의 건물 가격은 백억 원 이상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이 사례의 유치원 두 곳의 건물 가격을 합치면 적어도 백억 원은 넘을 것 같다. 그냥 백억 원이라고 가정하고 6억 원 중 1억 원은 근로 대가로 셈해서 제하고 5억 원이 투자한 건물에 대한 수익이라고 간주하면 5%를 수익으로 챙긴 것이 된다(3인의 근로 대가로 1억 원은 작겠지만 이 사례를 보도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 3인은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고 하니 1억 원만 쳐도 충분할 것 같다). 부동산 수익률이 5%면 낮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높다고 하기도 어렵다.

내가 하려는 말은 유치원 부동산에 대해 5% 수익률은 보장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유치원 두 곳의 실제 부동산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므로 실제 수익률은 5%보다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 또 이 사례의 유치원장이 급여 이외에 다른 돈은 안 챙겼는지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사례는 극단적이다. 다수 유치원장의 급여는 이보다 작고 가족을 행정직원으로 두는 경우도 흔한 것은 아니다(물론 다수 유치원의 건물 가격도 이보다는 작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립 유치원장이 순전히 유아교육에 헌신하려고 사재를 출연한 것은 아님을 인정하자. 그러니 유치원장이 가져가는 합법적인 수익이 얼마인지를 따져보자(유치원장이 얻는 합법적인 수익에는 급여 외에 유치원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 재산세 감면 등 다양한 혜택도 포함된다). 이 수익이 그들이 투자한 것에 현저히 못 미친다면 이를 보전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도를 마련하자. 대신 유치원 수입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위반하면 처벌하자.’

유치원장 급여는 상한이 없어서 아무리 유치원 건물이 비싸도 그에 대한 적정수익을 얹어서 유치원장 급여를 책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편법이다. 그리고 ‘무슨 유치원장 급여가 그렇게 많은가’라는 눈총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급여 이외에 어떤 형식으로든 설립자 기여분에 대한 보상방안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현행 제도상 유치원장의 합법적인 수익이 적정보상에 못 미치는 경우에만 그렇다. 이처럼 급여 이외의 합법적인 보상방안이 마련되면, 유치원장의 급여 수준도 일정 범위 내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격이 의심스런 친인척을 행정직원으로 앉히고 급여 챙기는 것도 규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핵심은 이거다. ‘상식 수준에서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자. 그러고 나서 낱낱이 공개하고 위반하면 처벌하자.’

사립 유치원 비리, 행정의 전형적인 특성에서 비롯

사립 유치원 비리가 터지고 난 뒤, 인터넷 댓글에 ‘이런 문제가 유치원뿐이겠냐 어린이집도 조사해라,’ ‘요양시설도 마찬가지다’와 같은 글들이 올라왔다. 사실이다. 사립 유치원 비리와 유사한 문제가 도처에 만연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 행정의 특징 때문이다.

선진국들과 구분되는 한국 행정의 두드러진 특징은 교육·의료·돌봄 등 많은 공공 서비스가 정부 지원으로 민간을 통해 제공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분야에 대한 국가 역할이 미약했던 탓에 민간이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국가 역할이 커진 뒤에도 기존의 민간을 통한 제공 방식을 많은 부분 유지했다.

‘사학비리’는 ‘사립 유치원 비리’보다 훨씬 익숙한 용어다. 배우 권상우가 주연을 맡고 김부선이 출연했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도 사학비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사학비리는 ‘공교육’이라는 공공 서비스를 이윤추구 동기를 떨쳐내기 어려운 민간을 통해 제공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소설과 영화 ‘도가니’의 보육원이나 수년 전 떠들썩했던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도 마찬가지다. 병원의 과잉진료나 (정형외과 등의) 허위진단서 발급도 역시 민간을 통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인 탓이 크다. 정부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면 비록 돈이 더 들고 비효율적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비리는 문제가 안 된다. 사학비리란 말은 익숙해도 공학비리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정부 지원으로 민간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니다. 한때 선진국에서 행정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각광 받던 서비스 제공 방식이며, 여전히 중요한 행정의 한 유형이다(예를 들어 현재 25% 정도인 국공립 유치원 취원 비율을 정부 목표대로 40%까지 높여도 여전히 과반수는 사립 유치원에 다니게 된다). 그런데 ‘정부 지원-민간 제공’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민간의 과도한 이윤추구 행위를 제어하면서 성실하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는 규제와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의 핵심은 재정과 운영의 투명한 공개다.

우리나라 행정의 또 다른 특징은 명(名)과 실(實)이 상부(相符)하지 못한 것이다. 쉽게 말해 규정 제대로 지키면 일하기 어렵게 해놓은 것이다. 전술했듯 이번 사립 유치원 비리도 법 규정과 현실의 운영이 달라서 터진 것이다. 어린이집이나 요양시설도 실제보다 서비스 시간을 부풀린다든가 허위로 이용자를 작성해서 부정수급 하는 문제가 심각함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물론 부정수급은 잘못이고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서비스 단가가 낮은 탓에 규정 제대로 지키면 운영이 어렵다는 하소연에도 일리는 있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서비스 단가 높여서 규정 지키면서 운영하게 해야 않느냐”고 복지부 담당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서비스 단가 높여준다고 부정수급이 사라지겠느냐”였다. 지금 단가로도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문제없이 운영하고 있으니 굳이 높여 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글쎄, 언제까지 민간 제공자는 양심에 찔리면서 편법 혹은 불법으로 운영하고, 정부는 묵인해주는 행태를 계속해야 할까.

앞서 말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실제 모델이라고 소문났던 고등학교가 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뺑뺑이 세대지만, 평준화 이전 명문으로 유명했던 공립고등학교를 나왔다. 내가 나온 학교는 무척 시설이 좋았다. 하지만 그 옆의 (말죽거리 잔혹사의 모델로 알려진) 사립학교는 매우 열악했다. 나는 명문 공립에 배정되었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그 사립학교에 배정되었다. 추첨 날, 나는 좋아서 환호했고 내 친구는 풀이 죽었다.

국가가 고등학교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추첨에 의해 누구는 양질의 서비스를 받게 하고 누구는 열악한 서비스를 받게 하는 것은 분명 잘하는 행정이 아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배정은 유치원 배정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다. 대다수 학부모는 국공립 유치원 배정을 원한다. 하지만 수용인원이 적어서 추첨으로 배정하는데 떨어지면 사립 유치원에 다녀야 한다(사립 유치원 들어가기도 만만치는 않다, 사립 유치원도 떨어지면 어린이집에 다녀야 한다).

공립학교에 배정된 나도, 사립학교에 배정된 내 친구도 비록 학교 시설과 교육의 질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최소한 부담하는 학비는 동일했다. 하지만 유치원은 다르다. 국공립 떨어진 것도 억울한데 설상가상으로 사립 유치원에 다니면 국공립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내가 유치원 학부모라면 사립 유치원 비리 못지않게 이 문제, 즉 국공립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혹은 더 떨어지는) 교육 서비스를 받으면서 돈은 훨씬 더 많이 내야 하는 것에 분개할 것 같다. 국공립 유치원은 유치원 건물 비용에 대한 보상이 필요 없다. 그러니 아무리 사립 유치원장이 양심껏 운영한다고 해도 (건물에 대한 보상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구조적으로 국공립 유치원보다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고, 그만큼 사립 유치원 학부모는 더 많은 유치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핵심은 재정과 운영의 투명성

사립 유치원 비리 사태는 ‘정부 재원으로 민간을 통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며 ‘규정과 실제 운영의 괴리 허용’이라는 한국 행정의 특성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 지원-민간 제공’을 통해 효과적으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정부의 적절한 관리·감독이 필요한데 이의 핵심은 재정과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규정과 실제 운영을 일치시키려면 규정대로 운영해도 지속 가능하게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이의 현명한 해결이 어린이집, 요양시설, 복지관 등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분야의 문제 해결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정말 이번 기회에 적법하게 운영하면서 정상 이윤을 확보하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 그래서 공공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는 민간기관들이 투명하게 공개하고 위반하면 처벌받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유치원 3법’의 정기국회 통과는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나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한국 행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느냐 마느냐의 분수령이 된다고 믿는다. 정말 행정학자로서 이번 사태의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이며 글을 마치자. “박용진 의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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