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임기가 열흘도 채 남지 않으면서, 한국당이 본격적으로 원내대표 선거 국면으로 진입했다. 아직 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선거 일정을 공고하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29일 김영우·김학용 의원의 출마선언에 이어 이달 2일 나경원 의원이, 3일 유기준 의원이 공식 출사표를 던졌다. 유재중 의원까지 포함해 현재까지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할 뜻을 밝힌 주자는 5명이다. 3일 현재 판세는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 또는 비박계 그룹과 구 친박계 혹은 '잔류파(당 사수파)' 그룹의 지지를 등에 업은 두 주자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복당파의 대표 주자는 김학용 의원(3선, 경기 안성)이다. 앞서 유력한 원내대표 후보로 꼽혔던 4선의 강석호 의원은 김 의원과의 단일화를 이루고 사퇴했다. 강 의원은 지난달 29일 "그동안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김 의원과 단일화에 관한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며 "원내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한다"고 했다. "보수 대통합, 대여 투쟁, 품격 정치라는 대명제를 놓고 서로의 정견과 지혜를 모아본 결과, 현 시점에서 저보다 김 의원이 더욱 잘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고 김 의원에게 힘을 실어준 강 의원은 "선배로서 후배에게 양보하는 모습으로 대한민국 보수를 재건하기 위한 더 큰 가치, 포용력을 실천하고자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과 강 의원의 단일화를 놓고는 복당파 좌장인 김무성 의원이 거중 조정에 나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 의원은 김무성 대표 시절 비서실장 을 지낸 핵심 측근이고, 강 의원도 이른바 '김무성계'로 분류됐다. 다만 강 의원과 김 의원은 "김 전 대표는 이번 단일화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순수하게 두 사람이 상의한 결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양강 구도의 또다른 한 축은 중립 성향의 나경원 의원(4선, 서울 동작을)이 꼽힌다. 나 의원은 본디 이회창 총재 특보로 정계에 입문,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을 지내 친이계·비박계로 분류됐던 인사다. 다만 2016년 탄핵 사태 당시 탄핵 찬성파 모임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했으면서도 다른 구성원들과 달리 탈당을 선택하지 않고 옛 새누리당에 잔류했다.
특히 최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평생 감옥에 있을 정도로 잘못을 했느냐"(11.9. 국회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한민국 바로살리기' 토론회)고 말하며 구 친박계 쪽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친박계 등 강경 보수 성향 인사들이 주축이 된 '우파 재건회의'에서 현역의원 여러 명이 나 의원을 지지한다는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기도 했으나, 참석 의원들 다수가 '나는 참여·동의한 적 없다'며 부인하는 일도 있었다.
복당파인 김영우 의원(3선, 경기 포천·가평)과 구 친박계인 유기준 의원(4선, 부산 동구·서구) 두 주자는 '2중'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최근 언론 인터뷰마다 '단일화' 질문에 시달리는 처지다. 김 의원은 이날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학용 의원과의 단일화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단일화 없다. 단일화라는 것은 정책·노선상 공감대가 있을 때 하는 것이지, 그냥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사적 관계에 기반한 단일화는 계파 정치"라고 잘라 말했다.
유기준 의원도 나경원 의원과 지지 기반이 겹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 의원과) 제가 일치한다는 교집합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며 "족보가 다르다", "물과 기름은 섞을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구 친박계에서 '자기 후보'라 할 수 있는 유 의원 대신 나 의원을 지지하는 흐름이 있는 것은, 아직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세는?
원내대표 선거는 정치 전문가들인 의원들을 유권자로 하는 만큼, 막판까지 표심 분석이 쉽지 않은 예측 난이도 최상의 선거로 꼽혀 왔다. 이번 선거의 경우, 1차적 준거점이 되는 것은 지난해 12월 12일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다. 당시 김성태 원내대표는 1차 투표에서 55표로 과반 득표, 결선투표까지 갈 것이라던 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당선됐다. 친박계 주자였던 홍문종 의원은 35표, 중립 성향 한선교 의원은 17표를 얻었다.
올해 원내대표 선거 역시 '표밭'은 작년과 동일하다. 한국당 의원 수는 작년이나 지금이나 112명이다. 2017년에는 친박계 최경환·김정훈·신상진·이우현 의원이 투표에 불참해 108명이 선거에 참여했다. 올해는 112명 가운데 최경환·이우현 의원이 수감된 상태여서 선거 불참이 확실시되고, 원유철·홍문종·권성동·김재원·염동열·이현재·엄용수 등 7명의 의원은 검찰 기소로 당원권이 정지돼 있다.
한국당 내에서 '현역의원 당원권 정지'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당내 초재선 의원 모임인 통합전진모임 등은 복당파인 이군현·황영철·홍일표 의원도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들은 선거권이 있고 친박계 의원 9명만 당원권이 정지된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영우 의원 등 일부 복당파 의원들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김용태 사무총장은 지난 26일 비대위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당원권 정지 관련(사안)은 윤리위원회에서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며 "12월 말 당헌당규 개정안과 같이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에 친박계 등에서는 "사후 약방문이다", "원내대표 선거 끝나고 풀어주면 뭐 하느냐" 등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정치 이슈는 △김병준 비대위의 인적 청산 작업 △보수대통합 등 정계개편 △계파 간 견제·균형 심리 등이다. 현 김성태 원내대표가 복당파이기에 중립 성향 의원들 사이에서는 균형을 맞추려는 심리가 작동할 수 있고, 복당파의 지원을 받고 있는 김병준 비대위의 인적 청산 작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인적 청산 대상으로 사실상 지목된 영남·다선·친박 의원들은 복당파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내후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보수 통합' 등 정계개편 논의도 변수로 꼽히고 있다. 그간 당내 친박계 혹은 잔류파에서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보수 성향 대선 주자를 영입하고 이른바 '태극기 부대'를 당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복당파·비박계에서는 유승민 의원 등 구 바른정당 출신 정치인들과의 통합을 선순위에 두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의 결과에 따라 한국당의 '보수 통합' 전략의 향배도 일정 부분 정해지게 된다.
나경원 의원은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 전 총리도 대통령 하실 뜻이 있으시면 (당에) 나와 주시는 게 맞다"며 "보수 통합론 안에서 같이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조원진부터 안철수까지 저는 다 함께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라고 했다. 반면 김학용 의원은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야당 중에서 그나마 저희와 공조할 수 있는 정당은 바른미래당밖에 없다. 우선은 바른미래당과의 철저한 공조를 이뤄내야 된다"며 "원내대표가 되면 의총을 통해 의원들과 교감을 갖고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복당을 본격 추진할 생각"이라면서 '태극기 부대'를 향해서는 "극우나 극좌는 소위 수권정당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기준 의원은 지난달 29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반문연대는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 컬러를 묻지 않고 모여서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세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출범할 수 있다고 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상당한 노선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며 "나중에 나오는 분열의 효과가 처음 모여서 받는 통합의 효과보다 크다면 그때는 뭐라고 할 것이냐"고 보수 통합론 자체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유 의원은 이날 출마선언 후 기자들과 만나 '외부 인재 영입' 방침을 밝히면서도,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의 복당과 관련해서는 "결이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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