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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배반 투표'의 오류를 피하려면…

[김윤태 칼럼]<11> 지역주의·정당·선거 전략의 재구성

최근 많은 사람들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갔다'고 한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보수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정치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저소득층 유권자들이 보수정당을 찍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일까?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계급배반투표'는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가 아닌 다른 계층의 대변자에게 투표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1960년대 영국의 육체노동자가 줄어들고 서비스 노동자가 많아지면서 보수정당을 찍는 노동자가 늘어났다. 1980년대 미국 공화당이 흑인에 반대하는 백인 노동자의 표를 사로잡으면서, 민주당은 흑인과 백인 노동자의 표를 동시에 얻기는 힘들어졌다. 1988년 조지 부시는 대선에서 흑인 범죄를 부각하는 인종 공포 전략으로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은 빌 클린턴은 1992년 선거에서 인종 쟁점을 몰아내고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라는 구호를 부각시켰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정치에서 종교가 새로운 이슈로 부상했다. 미국 역사학자 토머스 프랭크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네오콘 보수 세력이 부자, 보수 기독교, 영향력 있는 언론사와 '가치의 연합전선'을 구축해 보수적 가치를 전파했다고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의 원인인 경제 문제를 외면한 채 낙태와 동성애 등 보수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공화당을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당으로 믿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버락 오바마는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의 즉각 복원'을 주장하며 사회경제적 이슈를 주도한 덕분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 18대 대선이 치러진 지난달 19일 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바보야, 정당이 문제야

미국에서 종교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로잡은데 비해 한국에서는 지역이 민심을 좌우한다. 1987년 이후 정치를 지배한 지역주의는 개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역차별의 결과만이 아니다. 오히려 선거 경쟁에서 지역은 계층을 몰아내고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 정당의 사회적 토대가 변한 것이 아니라 정당의 전략이 계급투표에 영향을 주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정당의 전략은 호남을 싫어하는 서민층을 사로잡았으며, 민주당은 호남당이 되었다. 그 후 계급투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계급배반투표가 지배적 경향이 되었다. 다른 한편, 정당 일체감과 충성심이 쇠퇴하면서 유권자의 무당파성이 증가하였다. 이는 '제3후보'의 등장으로 표출되었으며 최근 '안철수 현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계급 경향이 지속적으로 동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대선 이후 양대 정당은 모두 서민층에 호소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반면, 고소득 관리직, 전문직, 자영업자는 주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2002년 대선 이후 화이트칼라는 더욱 민주당에 기우는 반면, 자영업자는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지역 출신 인구가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 주로 나타나는 반면, 다른 지역은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여전히 강력하다. 영남과 호남 지역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계층과 세대 변수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가장 소득이 낮고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한다. 또한 새누리당이 가장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인식되었다. 결과적으로 영남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정치적 조건에서 민주당의 선거 전략은 영남 후보론과 수도권 청년 세대에 호소하는 전략에 기울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선택한 영남 후보론과 세대 전략은 치명적 오류로 판명되었다. 다만 청년 세대의 탈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약간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영남 후보론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2030세대의 투표율을 중시하는 세대 구도는 5060세대의 안보적 보수주의를 촉진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었다. 경제위기 이후 중산층이 추락하면서 서민층이 되었지만, 투표 성향은 보수정당과 '동조화'되는 현상이 커졌다. 이런 점에서 50대의 보수화 현상도 '계급배반투표'로 볼 수 있다.

전략을 바꿔야 승리한다

다시 정당의 전략이 중요하다. 새누리당은 '중산층 70% 재건'의 구호로 부유층의 이미지를 희석했지만, 민주당은 '정권교체론'에만 매달렸다. 새누리당은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며 경제개발을 더 잘할 것이라고 내세웠지만, 민주당의 경제민주화는 피부에 와 닿은 이슈가 부족했다. 새누리당은 안보 공포 전략을 구사했지만, 민주당은 중산층의 안보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메시지가 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승리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금 진보세력이 계급배반투표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정당의 전략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지역 변수가 아니라 계층에 따라 투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과거사 논쟁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중시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진보세력은 경제, 복지, 구체적 민생 이슈를 강조하는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유권자들의 투표 유형이 과거에 비해 더 복잡해졌기 때문에 정당은 유권자의 단면에 집착하지 말고 다양한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 계층, 세대, 이념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선거 공간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절실하다. 앞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진보세력과 정치 지도자의 비전을 필요한 시점이다. 진보세력은 하루빨리 대선 후유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의 시계바늘은 앞으로 가야한다.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은 2013년 1월 7일 좋은정책포럼과 홍종학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18대 대선 평가와 진보의 미래' 제목의 토론회의 발표문을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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