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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초연금? 양자택일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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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초연금? 양자택일은 틀렸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최저한의 노후소득 보장은 상식의 문제

현재처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 노인빈곤을 해소하기도 어렵고, 내수경제를 유지하는데도 치명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이 늦게 도입되었고 기초연금도 액수가 낮아 소득보장기능을 못하고 있다. 또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도 높은 중도해약률 때문에 연금의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가 한국에서 제대로 구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노인빈곤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고 두 제도의 기능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초연금만을 인상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기능을 축소시켜 개인연금시장의 강화를 가져오고 사회전체의 불평등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기능 강화는 최저한의 기초적인 노후소득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낮은 연금수준, 노후 불안과 내수 침체

1950년대 그야말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이던 한국이 올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사에 흔치 않은 경제기적의 성공 사례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행복할까? 경제는 성장했는데 국민들의 삶, 특히 한강의 기적의 바탕을 놓은 현세대 노인들의 삶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것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시야를 확대해 보면 노인들만 불안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청년, 중장년들의 노후도 불안하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액수가 너무 낮아 국민 누구도 공적연금으로 품위 있는 노후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낮은 공적연금은 국민들의 노후를 불안하게 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부머들의 본격적인 은퇴로 주력 소비층의 규모가 가시화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주력소비층인 30~64세의 인구가 2700만 명이다. 저출산 그리고 조기 직장은퇴로 주력 소비층이 급격히 감소되어 2060년을 전후해 1500만 명대로 감소한다. 반면 노인인구는 현재의 700만 명대에서 2060년 1900만 명대로 늘어난다. 주력 소비층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다른 인구층에서 소비가 늘어나야 내수가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낮은 연금수준을 유지하게 되면 전체인구의 30~40%를 차지하게 될 고령사회에서 소비의 급격한 위축은 피할 수가 없다.

유럽의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공적연금으로 GDP의 11% 정도를 지출하고 있다. 한국의 GDP를 1700조 원으로 보면 약 190조 원 가까운 돈을 공적연금으로 지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수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크다는 의미이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이 공적연금으로 지출하는 돈은 약 60조 원 정도로 선진국의 약 1/3 수준이다(국민연금 22조, 공무원‧사학연금 등 26조, 기초연금 13조). 저출산과 조기 은퇴로 주력소비층이 대폭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인구규모가 큰 노인들이 적정한 수준의 소비를 해주어야 내수가 유지될 수 있는데 현재의 연금제도를 대폭 고치지 않는 한 노인들이 주력 소비층의 감소를 보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한국 사회에서 연금 논의는 주로 국가재정의 악화, 후세대의 부담 증가라는 부정적 프레임에 갇혀 있고 항상 결론은 공적연금의 기능을 더 늘리면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낮은 공적연금이 한국 사회의 삶의 질은 물론 내수유지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결정적 함정을 갖고 있다. 공적연금을 비용으로 인식하게 되면 한국 사회에 더 큰 문제를 가져올 가능성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연합뉴스

왜 공적연금은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못 하는가?

한국은 왜 공적연금의 지출이 낮은가? 여러 복합적 이유가 있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자식들의 노인부양 기능이 살아 있었고 또한 공적연금제도를 너무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한국에서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1988년에 시작되었다. 1988년이면 한국의 도시화율이 70.4%이었고 OECD 평균 72.7%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OECD 대부분의 노인들은 매우 관대한 공적연금의 혜택을 받고 있었으나 한국은 공무원, 교사 등 극히 일부에게만 공적연금이 지급되었다. 또한 기금을 적립하고 그 기금에서 연금을 지급하는 적립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시작했기 때문에 연금지급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마나 조세로 조달되는 기초노령연금이 2008년에 도입된 것이 노인소득 공백 상태를 약간이나마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공적연금이 뒤늦게 도입된 이유 외에 몇 차례의 소위 연금 '개혁'이 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매우 약화시켰다.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 소득대체율은 70% 이었으나 김대중정부에서 60%로 인하되었고 노무현정부에서 40%로 인하되었다. 특히 노무현정부에서 국민연금 인하는 공적연금제도의 적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40%로의 연금액 인하는 국민연금의 가치를 1/3 정도 떨어트린 것이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은 '용돈'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회고해 보면 보험료를 인상하여 적정한 국민연금 수준을 유지하는 쪽으로 개혁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당시에는 공적연금의 기능을 낮춰야 한다는 세계은행의 프레임이 전성기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나도 급격한 연금액 인하 이었다.

당시의 연금개혁을 정당화한 논리는 후세대 부담론이었다. 국민연금액을 인하하지 않으면 후세대의 보험료가 폭증하고 기금고갈로 인한 후유증이 심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2007년에 연금액을 무려 1/3을 깎았음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2018년의 국민연금개혁과정에서도 동일한 논리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고 국민들의 연금신뢰도가 높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용돈연금으로 전락한 국민연금이 중산층에게 조차도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는 노후소득보장이 안 된다

2007년 당시 국민연금을 대폭 인하하면서 나온 논리 중의 하나가 퇴직연금(퇴직금)과 개인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을 보충해야 한다는 다층연금제도의 확립이었다. 이 주장은 10여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논리로 국민연금의 인상을 반대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논리적으로 그럴듯한 다층연금체계의 구축은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 점도 간과되었다.

근로기준법상 1년 이상 근로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퇴직금을 노후소득보장제도로 만들기 위해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되었다. 2016년 한 해에만 해도 퇴직연금으로 기업에서 지출한 돈이 35조 원 정도로 국민연금으로 거두어들이는 보험료 38.3조 원(기업 16.6조 원, 가입자 21.7조 원)과 비슷한 규모이다. 국민연금과 동일한 규모로 납부되는 퇴직연금이 '연금'의 기능을 하면 현재보다 국민들의 노후는 매우 안정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로자가 중도 인출을 통해 퇴직금을 소비하고 있고 퇴직까지 중도 인출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98%가 연금이 아닌 일시불로 퇴직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이런 퇴직연금제도를 '연금'으로 바꾸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퇴직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개인연금도 사정이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2016년에 개인연금(연금저축 및 연금보험)에 납부한 돈의 총 규모는 약 35조 원으로 퇴직연금 규모와 비슷하다. 공적연금이 부실하다보니 사적연금으로 노후를 보완하려는 국민들의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연금도 연금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1994년에 처음으로 판매된 개인연금이 7년이 지난 2001년에 유지율은 33.2%이었다. 즉 개인연금 가입자 100명 중 67명이 중간에 개인연금을 해약한 것이다. 2001년부터 판매된 연금저축도 10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유지율이 52%에 불과했다. 개인연금은 해약할 경우 원금에 매우 미달하는 돈만 일시불로 받게 된다.

국민연금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을 보충하라는 다층연금체계는 매우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한국에서 다층체계를 통한 노후소득보장은 신기루에 가깝다. 매우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다층노후소득보장모델이 한국에서는 공적연금제도의 기능을 확대하는데 반대 논리로 악용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퇴직연금을 말 그대로 '연금'제도로서의 기능하게 하고, 개인연금도 매달 받는 '연금'으로서 제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상보다 더 힘들 것이다. 퇴직연금은 30-50대 직장인들의 일시금 수요(주거비 마련, 자녀 대학학비 등)의 수요와 연결되어 있어 연금화가 쉽지 않고 개인연금의 완전 연금화는 보험회사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하면 좋지만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에 존재하는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의 함정인 것이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어떻게 개편해야 하나?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노후소득보장수단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결국 국민들이 기댈 곳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동일한 노후보장기능을 갖고 있으나 두 제도의 비중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사회적 함의가 매우 달라지게 된다. 두 가지 대립되는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는 기초연금을 현재의 20만원에서 40만 원, 50만 원까지 대폭 인상하자는 것이다. 여러 가지 근거가 제시된다. 기초연금을 올리면 즉각적으로 노인들이 혜택을 받기 때문에 노인빈곤율을 낮출 수 있고, 비정규직이나 여성 등을 배제한 국민연금을 올리는 것보다 불평등 완화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나중에 기본소득(Basic Income)으로 전환하는데도 유리하다는 점도 강조된다.

타당해 보이는 이 주장도 허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기초연금을 대폭 올린다 해도 노인빈곤율은 크게 줄지 않는다. 기초연금을 50만 원으로 인상해도 노인빈곤율은 35% 수준으로 여전히 OECD 평균 노인빈곤율에 3배에 달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연금과의 제도적 정합성이다. 2017년 기준으로 10년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연금을 받는 국민연금 수령자가 약 220만 명인데 이중 국민연금액이 30만 원 미만인 사람이 60만 명, 30~40만 원인 노인이 48만 명으로 절반 이상의 국민연금 수령자의 연금액이 40만 원에 미달한다. 10년 이상 보험료를 내고도 받는 국민연금액이 40만 원이 안되는데 보험료를 하나도 내지 않은 기초연금으로 50만원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의 장기가입유인이 하락할 것이다. 국민연금액은 가입기간이 길수록 커지는데 조기 퇴직한 40~50대의 국민연금 가입 유인이 하락하여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이 더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중산층이 개인연금시장이 더 강화될 개연성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기초연금을 강화하자는 주장 중에 국민연금이 강화되면, 즉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높아지면 임금근로자간 불평등이 더 커진다는 논리도 있다. 이 논리도 언뜻 보면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다른 나라의 연금제도와 비교하면 노동시장내의 격차를 크게 완화시키는 강력한 장치(연금액 계산 시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을 고려하고 보험료 소득 상한선을 부과하는 것)를 갖고 있다. 연금에 대해 상당한 식견들 갖고 있다고 알려진 전문가들조차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 불평등을 키운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기초연금을 올릴 것이냐? 국민연금을 올릴 것이냐? 이 질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올라가야 기초연금도 합리적 인상이 가능하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모두 낮은 상태에서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고 두 제도의 기능을 동시에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연금개혁이 가져올 한국의 미래는?

국민연금을 인상하는 것은 단순히 연금을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와 연결되어 있다. 국민연금은 개인연금과 대체관계에 있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높아지면 개인연금의 기능이 축소되고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높아지면 개인연금(보험시장)의 기능이 약화된다. 공적연금의 기능이 약하고 개인연금, 기업연금의 기능이 강한 나라들이 영미형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는 개인연금과 기업연금에 대한 적절한 국가규제를 통해 두 제도들이 나름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연금과 기업연금이 커지면 전체적인 불평등은 공적연금이 큰 나라보다 더 커지게 된다.

국민연금을 올리면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진다는 주장도 많다. 너무 직관적이어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상당한 쟁점이 형성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도 국민연금의 총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5% 정도로 2060년에 가도 현재의 유럽 수준에 미달한다. 기초연금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의 지출을 다 합쳐야 2060년에 가서 현재의 유럽수준의 지출을 하게 된다. 후세대의 등골을 뺄 정도의 과도한 부담이라고 보기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내수유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현행 국민연금은 현세대가 GDP의 36%에 달하는 거대한 기금을 쌓아 놓았기 때문에 후세대의 부담을 그 만큼 낮춰준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기금투자수익금 300조 원은 후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엄청나게 낮춰준 것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그에 상응하는 보험료 인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추가적인 보험료 부담의 시기와 방법은 국민연금기금의 규모, 세대 간 부담의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주장이 마치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 수준으로 국민연금이 올라가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는 국민연금이 최저노후소득보장을 하자는 것이다. 공적연금을 통해 ‘최저한의 노후소득’을 보장하자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 상식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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