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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쇼크'와 '고온 쇼크', 함께 푸는 법

[장석준 칼럼] 에너지 전환과 일자리 확대

8월 들어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줄곧 50% 대를 기록했다.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여당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지율이 추락했다.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를 뽑기 직전 민주당 지지율은 30% 대를 맴돌았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것은 이른바 '고용 쇼크'다. 통계청 고용통계에서 취업자 증가 폭은 8년만에 가장 낮은 반면 실업률은 18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왔다. 극우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정부 경제 정책을 향해 포문을 열었고, 정부는 부랴부랴 긴급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고용 쇼크'로 떠들썩했지만, 막상 피부에 더 와 닿은 쇼크는 따로 있었다. 바로 '고온 쇼크'였다. 7월 중순부터 한 달 넘게 30~40도를 맴도는 폭염이 계속됐다. 고용 쇼크로 누가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지만, 고온 쇼크는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동반했다.

그러고 보면 고용 쇼크에는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고온 쇼크에는 그렇지 않은 것은 좀 이상하다. 그만큼 기후 변화는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호사가들만의 관심사다. 일자리처럼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하지 인류 문명의 운명과 후세대의 생존 같은 데 눈 돌릴 틈이 있겠냐는 분위기다. 이러니 앞으로도 기후 변화 대책을 놓고 정부가 긴급회의를 여는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일자리와 기후 변화 대응이 서로 동떨어진 문제이기만 할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고,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따져야 할 사안일까? 역사 속에는, 그리고 지금 세계 곳곳에는 이 물음에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이들이 있다.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 노동자들이 찾은 해법

한 세대 전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영국의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Lucas Aerospace) 노동자들 이야기다. 이 회사명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서 깊은 기계생산업체로 각종 정밀기계와 자동차 부품뿐만 아니라 비행기까지 만들었지만, 1990년대에 미국 기업과 합병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회사는 1970년대부터 대량 감원을 거듭했다. 구조적인 경영난 탓이었다. 루카스 사가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던 영국의 대표적 완성차업체 롤스로이스는 파산했고, 회사의 명운을 걸었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국방부가 발주한 군수품 생산(전투기 등)으로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었다.

1970년에 정권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넘어가자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려 2000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그러고 나서 불과 4년 뒤인 1974년에 다시 대규모 인원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800명 퇴출이 목표였다.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 노동자들은 더는 묵묵히 참을 수 없었다. 모처럼 정치 상황도 다시 바뀌었다. 1974년에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더구나 주요 대기업 국유화와 제조업 부흥을 위한 경제 계획을 주창하는 앤터니 웨지우드 벤('토니 벤'으로 더 잘 알려진)이 산업부 장관이 됐다.

당시 루카스 사의 여러 사업장에는 서로 다른 산업별 노동조합의 지부들이 있었다. 이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던 각 공장의 직장위원들(한국식 기업별 노동조합의 대의원에 해당)이 사측의 구조조정 방안에 맞서기 위해 루카스 계열사를 모두 아우르는 협의회를 결성했다. 이 노동자 협의회가 합의한 대안은 노동당 정부에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의 국유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루카스 사의 노동자 대표들은 이 방안을 들고 벤 장관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벤은 노동자 협의회의 대안에 공감했지만, 확답은 해줄 수 없었다. 벤을 제외한 노동당 내각 전반은 주요 대기업 국유화 공약을 실제 이행할 의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벤은 대안적 기업 운영 계획을 짜보라고 노동자 대표단에게 역제안했다. 그런 계획이 마련된다면,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 국유화를 지지하는 여론이 더 강해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노동자 대표단은 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국유화가 되더라도 자동으로 대량 감원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벤 장관이 제안한 대안 경영 계획 같은 게 없으면 새로운 공기업 경영진도 경영난을 인원 감축으로 해결하려 할 수 있었다. 국유화 여론전을 위해서도 대안 경영 계획이 필요했지만, 국유화가 진짜 노동자를 위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도 그런 계획이 반드시 필요했다.

노동자 협의회는 논의를 거듭한 끝에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생산 품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동차 엔진은 판로가 막혔고, 비행기 제작 역량은 사람 죽이는 전투기 생산에 쓰이고 있었다. 더 많은 전투기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루카스 사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주력 생산품을 찾아야 했다. 즉, 대안 경영 계획의 핵심은 대안 생산 계획이었다.

루카스 사 노동자들은 꼬박 1년 동안 토론했다. 공장마다 심층 여론조사를 벌이고, 이를 바탕으로 직장위원들이 대안 생산 계획을 짰다. 1976년 1월 드디어 대안 계획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후 '루카스 계획'이라 불리게 된 이 보고서는 모두 6개 범주의 대안 생산 품목을 제시했다.

그 중에는 루카스 계열사 전체에서 아주 작은 비중만을 차지하고 있던 의료기기 생산을 늘리자는 내용이 있었다. 특히 항공기에 쓰이던,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을 어린이와 장애인을 위한 의료기기에 도입하자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또한 대중교통을 염두에 둔 운송 기술 혁신 제안도 담겨 있었다. 이렇게 제안된 내용 중에는 현재 하이브리드 승용차에 중요하게 쓰이는 기술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제안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안 에너지 기술이었다. 당시 영국은 유가 인상에 핵발전소 확대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카스 계획은 핵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대신 루카스 노동자들은 재생가능에너지 기술과 함께 에너지 사용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개발하자고 주장했다.

이 분야에서 루카스 사의 기술력과 접목될 수 있는 생산품으로 제시된 것은 열 펌프였다. 열 펌프는 온도가 높은 공간의 열을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켜 난방에 활용하는 장치다. 또한 루카스 계획은 태양 전지와 가정용 태양열 집열기의 개발 그리고 풍력 활용 기술 개발도 제안했다.

한 세대 전에 나온 에너지 전환 계획인 셈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 노동자들의 일자리 지키기 계획이었고, 주력 생산품을 바꾸는 산업 혁신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그대로 추진됐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루카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딜레마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새 에너지 체제를 만들면서 루카스 사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고, 새 에너지 체제가 확대되고 발전할수록 새 일자리가 더욱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루카스 계획은 그저 '계획'으로 끝나고 말았다. 국유화가 실현되기는커녕 1979년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자에게 더욱 혹독한 시대가 시작됐다. 루카스 노동자들의 대안 경영 계획은 무시됐고, 회사는 또 한 번 대량 해고를 감행한 뒤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은 아니다.

기후 변화 대응을 계기로 산업도 혁신, 사회도 혁신

잘 알려져 있듯이 2015년 영국 노동당은 새 대표를 뽑으면서 유럽에서 가장 우경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에서 가장 급진적인 정당으로 돌변했다. 새 대표 제러미 코빈은 토니 벤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이어받으며 오랫동안 노동당 주류의 '제3의 길' 노선에 맞서온 인물이다. 루카스 사 노동자들에게 처음 대안 경영 계획 입안을 제안한 그 토니 벤 말이다.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은 2017년 조기 총선에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해"라는 제목의 공약집을 들고 나와 바람을 일으켰다. 공약집의 기조는 한 마디로 탈신자유주의였다. 그간 사유화 정책으로 훼손된 국민보건서비스(NHS)를 무상공공의료체계로 원상회복시키겠다고 약속했고, 철도 역시 재국유화하겠다고 했다. 대학 등록금을 폐지하고 주택 임대료를 통제해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노동당이 이런 복지국가 복원 약속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룬 또 다른 주제가 있었다. 바로 기후 변화 대응이다. 노동당 총선공약집은 2030년까지 탈탄소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천명했다. 핵심은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화석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경제를 모범적인 저탄소 경제 체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 풍토에서는 너무 고상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에게는 그렇지 않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랑 전혀 동떨어진 게 아니다. 노동당은 여기에서 새로운 일자리 확대의 가능성을 본다.

우선 노동당은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한국전력 같은 거대 사업자가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대규모 전력 생산 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역마다 소규모 전력 공기업을 신설하고 이 공기업을 중심으로 여러 협동조합들이 지역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체계를 만들려 한다. 노동당은 전력 공기업 200여 개와 협동조합 1000여 개 설립을 목표로 제시한다.

이는 곧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역 전력 공기업이 설립되면, 전에 없던 일자리가 생긴다. 전력 협동조합 설립 역시 새로운 일자리를 수반한다. 게다가 노동당 총선공약집은 국비 지원으로 전국 400만 가구에 주거 단열을 시공하는 계획도 제시했다. 이 사업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건설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영국 노동당만 기후 변화 대응에서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본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신생 좌파정당 포데모스도 2016년 총선에서 비슷한 비전을 제시했다. 포데모스는 영국 노동당과 달리 탈탄소뿐만 아니라 탈핵도 약속했다. 포데모스 총선공약집이 내놓은 목표는 2026년까지 탈핵, 2050년까지 탈탄소를 완료한다는 것이다. 역시 핵심은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가능에너지 중심 체제 수립이고, 이 과정에서 새롭게 녹색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어찌 보면 영국 노동당과 스페인 포데모스 모두 한 세대 전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 노동자들의 영감을 계승, 발전시키는 중이라 하겠다. 에너지 전환에서 새 일자리의 가능성을 본 루카스 사 노동자들의 비전을 경제 전체로 확대해 제시하는 셈이다.

한데 이것만이 아니다. 노동당과 포데모스에게 기후 변화 대응은 일자리 창출이나 산업 혁신만 수반하는 게 아니다. 경제 민주화와 관련되기도 하고, 금융 개혁과 연결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노동당의 경우는 새로운 교육 정책으로까지 이어진다.

먼저 지역 공기업과 협동조합 중심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을 육성한다는 노동당 정책은 영국 경제에 (사적 소유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소유 기업들로 이뤄진 새 부문을 창출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국가 소유 기업, 지방자치단체 소유 기업, 생산협동조합 등을 늘려서 경제 전체에 사회적 소유-경영을 확대한다는 노동당판 경제 민주주의의 구현이다.

한편 포데모스는 에너지 전환과 녹색 고용 창출을 주관할 (경제)전략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전략위원회에는 정부, 재계뿐만 아니라 노동과 시민사회 대표도 참여한다. 기존 경제 부처 관료들이 아니라 이 위원회가 새 에너지 체제를 수립하고 일자리를 새롭게 분배하는 계획을 입안, 집행한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노동자, 소비자 대표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또 다른 경제 민주주의 비전이다.

그럼 재원은 어디에서 마련하는가? 이 대목에서 기후 변화 대응은 금융 개혁과 만난다. 노동당 총선공약집은 2500억 파운드(약 360조 원) 상당의 대출 여력을 지닌 국영 투자은행 수립을 약속한다. 국영 투자은행은 지역별 투자은행과 함께 공공 투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이 네트워크가 에너지 전환 사업의 재원 조달 임무를 맡는다. 포데모스 역시 산업정책에 따른 투자 임무를 공공 은행 네트워크에 맡기자고 한다. 이런 공공 금융 체계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기존 금융 체계를 점차 대체, 압도해나갈 것이다.

노동당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교육서비스(NES) 구상도 밝힌다. 국민교육서비스라니, 한 눈에 영국인들의 자랑인 국민보건서비스를 염두에 둔 작명임을 알 수 있다. 기본 전체는 저탄소 경제를 새로 구축하려면 이에 맞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미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성인도 끊임없이 재교육 기회를 가져야 한다. 국민교육서비스는 이런 기회를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우리에게도 중대한 현안인 교육 개혁의 실마리를 영국 노동당은 다름 아닌 기후 변화, 산업 격변의 대응 과정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미신에서 벗어나 산업-사회 혁신의 종합 처방을

물론 이미 실현된 대안들은 아니다. 영국 노동당이든 스페인 포데모스이든 아직은 공약으로만 제시할 뿐이다. 그러나 발상의 기본 방향만큼은 우리에게 중대한 참고가 된다.

'고용 쇼크'와 '고온 쇼크'를 별개로 보고 각각의 미로에서 헤매면 안 된다. 오히려 기후 변화, 인구 절벽부터 당장의 일자리, 소득 문제까지를 하나로 보고 이들을 꿰뚫는 종합 처방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길이 보일 수 있다. 멀리 내다볼수록 오래 갈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산업 혁신은 반드시 사회 혁신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과거의 미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적자 재정은 절대 안 되고 제대로 된 일자리는 사기업만이 만들어낼 수 있으며 공공이 주도하는 산업 계획은 철지난 이야기일 뿐이라는 미신들 말이다. 여기에서 놓여나야 산업 혁신과 사회 혁신, 생태 전환을 한데 잇는 해법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결국 이 각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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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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