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윤원석 후보의 성추행 전력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사전 인지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도 논란의 대목이다. 윤원석 후보의 이같은 과거는 윤 후보가 대표로 있던 <민중의 소리>에서 자체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된 일이어서, 관계자들 대다수가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통합진보당의 지도부가 관련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당의 후보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후보자격검증위원회도 당 지도부도 "윤원석 성추행 전력 몰랐다"
▲윤원석 성남중원 통합진보당 후보. ⓒ프레시안 |
<프레시안> 취재 결과 윤 후보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윤 후보의 성추행 전력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검증위에 참여했던 복수의 당직자는 "윤 후보를 놓고 특별히 문제가 제기돼 논의가 이뤄진 바 없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후보검증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장원섭 통합진보당 사무총장은 20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성남 중원을) 내가 심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원섭 사무총장은 성추행 전력을 인지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너무 많은 후보를 검증하다보니 일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장 총장은 최근 광주 광산갑 출마를 선언하면서 관련 직책을 내놓았지만 윤 후보가 자격검증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지난해 12월에는 검증위 위원장 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통합진보당 후보검증 기준, 지나치게 느슨하다?
통합진보당은 타 정당들과는 달리 당 내에서 '공천'이란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지역구이든 비례대표든 당에 출마 신청을 하면, 당직자들로 구성된 검증위가 우선 대상 인물의 적격성 여부만 판단한다.
<프레시안>이 21일 입수한 통합진보당 내부 문건에 따르면, 부적격 후보로 분류되는 기준은 총 6가지다. △당선되더라도 법에 의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자, △경력 등 중요한 사항을 허위로 기재한 자, △반인도적 범죄, 파렴치 범죄, 부패범죄, 공직 직무상 범죄, 기타 중대한 범죄의 전력이 있는 자, △선거권이 없는 자, △당의 강령 및 기본정책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를 한 자,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자에게 후보 자격을 인정하지 않도록 돼 있다.
문제는 이같은 기준이 지나치게 피상적이어서 사실상 후보 검증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일례로, 민주통합당만 하더라도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 등 구체적인 자체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통합진보당은 이같은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후보등록을 위해 당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목록에는 재산 관련사항을 증명할 증빙서류도 들어있지 않았다.
검증위에서 검증 작업을 벌였던 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검증 기준이 포괄적으로 돼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검증위에서는 한 지역구에 몇 명의 예비후보가 나오든 관계없이 전과기록 조회, 해당 당 지역위원회의 이의제기 여부 등을 살펴보는 과정만 거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느슨한' 심사를 통과해 예비후보 자격을 얻게 되면, 이후에는 별다른 검증이나 제어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다. 각 지역구별로 복수 후보가 나온 경우에는 경선을 치르고 단수 후보만이 출마한 경우에는 당원 찬반투표만을 벌일 뿐이다. 윤원석 후보의 경우에도 최초 예비후보 심사 단계에서 성추행 전력이 확인되고 걸러지지 못했고, 이 후보는 경선도 없이 최종 후보자로 확정됐다.
'성폭력 처리미숙' 정진후도, '지방의원 사퇴' 손석형·이은주도 걸러내지 못해
▲ 정진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연합뉴스 |
정진후 후보의 경우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원하던 징계수위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정진후 후보의 이같은 전력은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처리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공개된 사실이었다.
물론 정진후 후보는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추천을 받아 당이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한, 이른바 '개방형 비례대표'의 케이스다. 하지만 후보에 대한 당내 검증 절차가 전무한 상태다 보니 피해자 측의 반발은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대표는 트위터와 방송 토론 등을 통해 정진후 후보 측의 입장만을 대변해 정당성을 피력하다, "왜 당은 정진후 후보의 말만 믿냐"는 피해자의 공개적 반발을 사야만 했다. (☞ 관련기사 보기 :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피해자 "통합진보당, 왜 정진후 말만 믿나" )
도의원을 사퇴하고 출마해 최근 민주통합당과의 경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확정된 손석형 후보나 시의원직을 던지고 출마한 이은주 후보의 경우는 당의 불철저함으로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라는 기성 정치 행태가 걸러지지 못한 경우다. 더욱이 손 후보는 2008년 강기윤 경남도의원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해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선거 비용은 강 도의원이 물어야 한다"며 혈세 낭비 공세를 적극적으로 펴 도의원으로 당선된 사람이다. (☞ 관련기사 보기 : 풀뿌리 외면하고 '배지' 쫓는 '권력형 진보정치' )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현직 지방의원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 조치도 마련해 두지 않았고, 손 후보나 이은주 후보의 출마를 제지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통합진보당은 이들 후보들이 당원 총투표를 통해 후보자로 확정됐다는 점만을 강조하며, 후보 자격 박탈을 검토하거나 논의하지도 않았다. 두 후보의 행태가 논란이 되자 통합진보당은 해당 후보들의 지방의원 사퇴로 치러지게 되는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결정만을 했을 뿐이다.
통합진보당은 총선 예비후보자들에게 "(야권연대 논의 등) 당의 모든 방침과 전략 결정에 승복한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사전에 고려해, 후보직을 사퇴해야 할 수도 있는 후보들의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야권연대에 대한 이처럼 치밀한 준비는 성추행·성폭력 사건 처리 미숙·현직 지방의원 사퇴로 얼룩진 통합진보당의 후보자들이 불러 온 파문과 비교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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