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진보정당은 그동안 이같은 행태에 대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은 물론이고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게 만든다"며 비판해 온 당사자라는 데 있다. 특히 창원을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결정된 손석형 후보의 경우 그 자신이 한나라당 도의원의 총선 출마로 인한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이다.
창원을에서 김창근 후보를 내세워 경쟁하고 있는 진보신당은 3일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보수정치와 다름 없는 행태를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자임하는 것은 진보정당의 모습과 멀어도 너무 멀다"고 비판했다.
창원을 뿐이 아니다. 울산 동구에서도 이은주 통합진보당 예비후보가 시의원을 내던지고 총선 출마에 도전장을 냈다. 이 지역은 통합진보당 내에 노옥희 예비후보가 이미 뛰고 있는 곳으로 이은주 예비후보는 노 후보와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총선 출마 중도사퇴 방지 조례 만들겠다"던 손석형 경남도의원 '똑같은 행태'
▲ 지난 2008년 6월 경남 창원시 제4선거구에서 경남도의원으로 당선된 민주노동당 손석형 당선자의 모습.ⓒ연합뉴스 |
'진보정치 1번지'라는 창원을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은 학계, 시민사회 진영과 함께 '진보통합후보공동발굴위원회'를 꾸려 자체적인 단일화 작업을 벌여 왔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9일 자체 해산했다.
문제는 통합진보당이 내세운 후보의 행보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은 당원총투표라는 내부 절차를 거쳐 손석형 현직 경남도의원을 예비후보로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손 의원은 총선 출마를 위해서는 오는 1월 12일까지 도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손 후보가 이같은 한나라당의 행태를 비판하며 도의원에 당선됐다는 데 있다. 지난 2008년 강기윤 전 도의원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중도 사퇴한 뒤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손 후보는 도의원으로 당선됐다. 당시 손 후보뿐 아니라 진보진영은 보궐선거 비용을 강 전 의원에게 물려야 한다며 기자회견을 여는 등 강하게 비판했었다.
2008년 5월 손 당시 도의원 후보는 권영길 의원과 함께 창원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재보선 원인 제공자에게 선거비용을 부담하게 해야 한다"며 "당선되면 비용 부담 및 (공직자의) 중도사퇴를 막는 조례를 만들겠다"고 주장했었다. 그렇게 그는 도의원에 입성했고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랬던 이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 도의원직을 내던지려 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통합진보당의 단일화 경쟁자인 진보신당 후보는 김창근 전 금속노조 위원장이다. 김창근 후보와 손석형 후보는 모두 두산중공업 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후보발굴위원회가 손 후보의 출마에 난색을 표하며 통합진보당에 조정을 요구했지만 통합진보당은 당원총투표라는 절차를 명분으로 이 요구를 무시했고 손 후보를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 결국 발굴위원회는 손을 털었다.
손 의원은 이런 지적에 자신의 책 <손석형은 손석형이 아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중도 사퇴는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지만 최대 위기인만큼 창원을을 수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정당성을 강변했다.
지난해 마지막날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는 이 문제가 쟁점이 됐지만 특별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통합진보당은 조만간 다시 전국운영위원회를 열어 손 후보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울산 동구 예비후보 이은주 "내 사퇴는 한나라 심판 위한 것"
기성 정치인 못지 않은 통합진보당 후보의 행태는 울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 정치의 상징인 울산 동구에서는 민주노동당 간판으로 당선됐던 이은주 울산시의원이 이미 사퇴서를 내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 후보는 진보신당 출신인 노옥희 후보와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한나라당 울산시당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이은주 전 시의원의 사퇴를 비판했다. 이에 이은주 전 의원은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 것은 한나라당의 실정 때문"이라며 "몸을 던져 한나라당 심판에 앞장서겠다는 각오로 출마를 결심하고 주민의 양해를 구했는데 이 결단이 어떻게 엄청난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고 혈세를 낭비한 한나라당의 행태와 비교될 수 있단 말이냐"고 반박했다.
민주당조차 "지역 주민과의 약속 지켜야" 선출직 사퇴 자제 권고하는데…
현직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의 총선 출마를 위한 줄사퇴는 진보정당만의 일은 아니다. 노관규 순천시장(민주통합당)이 총선 출마를 위해 시장직을 사퇴했다. 노 예비후보는 지난해 10월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통합진보당의 김선동 의원과 맞붙게 된다. 그 밖에도 신혁국 문경시장(한나라당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 역시 지난해 12월 시장직을 내놓았다.
지방의원 가운데도 김대호 경북도의원(한나라당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 전일철 경북도의원(무소속), 경남도의회 허기도 의장(한나라당), 제주도의회 문대림 의장(민주통합당), 황보경 원주시의회 의장(민주통합당), 김진희 강원도의원(민주통합당), 최대규 강원도의원(한나라당)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현실에 민주통합당은 '선출직 지자체장, 지방의원의 사퇴 자제'를 권고하기로 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지난 2일 "최고위원회는 2012년 총선에 즈음해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선거에서 선택해 준 지역 주민과의 신뢰 약속을 지키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성실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줄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판은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나온다. 진보진당 박은지 부대변인은 3일 "그동안 진보진영은 국민의 선택을 무시한 채 정치인의 욕심으로 불필요한 혈세 낭비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총선 출마를 위한 선출직 사퇴를 강력히 반대해 왔다"며 "통합진보당의 상식적인 선택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도 마찬가지 우려가 존재한다. 한 관계자는 "경남의 분위기가 좋다 싶으니 아무나 후보가 되어도 당선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현대차노조 이경훈 전 지부장도 통합진보당 예비후보로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쏟아지는 가운데 울산은 진보정당 후보가 넘쳐나는 분위기다. 조승수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역구를 새로 옮긴 울산 남구에서는 이경훈 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이 통합진보당의 예비후보로 등록해 경쟁을 벌이게 됐다.
이경훈 예비후보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진행된 정규직화 싸움 당시 정규직노조의 수장이었다. 현대자동차사내하청지회는 지난 2009년 25일 동안 공장 내 점거 농성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경훈 당시 지부장은 "사내사청 노동자의 농성을 중단하라고 협박했다", "연대하러 온 사람들에 대해 폭력을 행사했다"는 등의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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