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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행과 정진후, 그리고 노동자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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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석행과 정진후, 그리고 노동자 국회의원

[기자의 눈] 누가 이석행에게 '배신자'라 돌 던지는가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이른바 '진보'는 그들대로 이석행 전 위원장의 입당을 비난하고, '보수'는 그들대로 "이당 저당 기웃거리며 지분과 자리를 요구하는 '노동 철새', '폴리 유니온'"라고 비판하고 있다. 노동운동을 버리고 정치에 입문한 것이 문제라면 그런 이들은 한 둘이 아니다. 당장 6일에도 나순자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왜, 이석행은 안 되는가.

이석행의 배신? 그는 버려졌다

▲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5일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연합뉴스
이석행의 선택에 대한 비난의 첫째 이유는 누가 뭐래도 "배신자"라는 것이다. 노동계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는 방법으로 그를 '외면'했고, <조선일보>는 6일 "민주노총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후 민노당을 지지해 와 놓고 (이제는) 1000명 입당원서를 들고 민주통합당에 왔다"고 비꼬았다.

그가 정말 배신한 것일까? 아니면 버려진 것일까?

민주노총 위원장 재직 시절 이랜드 매장 점거투쟁을 주도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총파업을 벌인 그는 2008년 12월 구속됐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이석행의 최측근이 그의 구속 전 수배 생활을 도왔던 한 여성 조합원에게 성폭력을 자행했다.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이석행은 구속된 상태에서 위원장직을 내놓았다. 2009년 3월 그는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출소했지만, 그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출소한 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장을 찾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지만, 민주노총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사과 인사를 하고 내려와 대의원대회장을 떠나는 그를 향해 뻔한 인사 차원의 손마저 내미는 이가 없었다. 공식적인 직책을 내어줄 수 없었던 당시의 여론을 백번감안한다 해도, 그를 위원장까지 만들었던 그 '조직'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해고자 출신으로 30년 넘게 '노동운동'만을 해 온 그가 먹고 살 일이 막막해 고통스러워한다는 얘기가 간간히 들려왔다. 교통사고를 당한 막내 아들의 치료비가 없다는 소식도 함께 들렸다.

그리고 그는 히터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이수호 전 위원장도 위원장직을 내놓은 뒤 다시 선생님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명예로운 '퇴진'이었다. 하지만 이석행은 달랐다. 1년여에 걸친 정신과 치료를 딛고 그는 그렇게 다시 '가장'이 되었고, 2010년 11월에는 송영길 인천시장의 노동특별보좌관이 됐다.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한 새 길이었다.

노동특보 시절 GM대우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주도했다. 4년간 진전 없이 끌어오던 노사 갈등을 풀어낸 당사자였다. 그리고 그는 송영길 시장, 홍영표 의원 등과의 인연을 디딤돌 삼아 민주통합당에 들어왔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석행의 '입당'을 보며 "씁쓸하다"고 했다지만, 본인의 측근이 저지른 일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침잠해 보낸 이석행의 지난 3년 여의 시간을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알고 있을까?

성폭력 사건의 당사자가 웬 정치냐? 정진후 전 위원장은?

물론 그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것도 수배 중인 자신을 도와준 여성 조합원을 자신의 측근이 성폭행한 '파렴치한'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성폭력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사람이 무슨 정치냐"는 비난은 이 지점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렇다면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은 어떤가. 통합진보당의 앞번호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정진후 전 위원장은 같은 성폭력 사건의 처리 문제를 미숙하게 처리해 피해자 지지모임으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는 인물이다. 이석행 위원장의 수감 중 벌어지고 세상에 드러난 이 일을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무마'하려 했었다. 그 작업은 이석행 위원장을 배출한 이른바 '국민파' 지도부와 전교조 지도부의 공동 작품이었다.

정진후 전 위원장은 당시 수석부위원장이었다. 피해자를 직접 만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조직 보위' 논리를 들이대며 사건을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하고자 했던 전교조 지도부의 책임자였다. 정진후 전 위원장은 사건 당시의 정진화 위원장의 뒤를 이어 전교조 수장이 되었고, 오랜 시간 끌었던 성폭력 사건의 처리 과정을 맡아 또 논란의 중심에 섰다. 누구의 더 잘못이 크냐는 계산은 구차하지만, 두 사람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더욱이 정진후 위원장이 배지를 달겠다고 나선 곳은 통합'진보'당 아닌가. 비리 연루자를 공천하는 민주통합당과는 한사코 다른 정당이라고 스스로 주장해 온 정당에서 성폭력 피해자 측으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는 인물에게 배지를 주는 것은 상식선에서 이상하다.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민주노총 위원장 경력을 자신의 '출세'를 위해 팔았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왜 하필 민주통합당이냐"고 말하는 이들이 호소하는 '찝찝함'도 이 연장선이다. 이런 비난에 대한 반론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노총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통합진보당 지지 여부를 놓고 민주노총은 여전히 갈등 중이다. 핵심은 국민참여당과 손 잡으면서 탄생한 통합진보당이 과연 '노동자들의 당인가 아닌가'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일단 4.11 총선 방침만을 결정함으로써 이런 논란을 절묘하게 피해가는 절충점을 선택했지만, 반발은 여전하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명부 비례대표 집중투표를 결정한 민주노총의 방침에 일부 조합원들은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하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오랜 세월 노동조합의 꿈이었지만, 유럽과 다른 우리의 짧은 노동운동의 역사와 이명박 정권이 만나면서 그 꿈은 부서지고 있다. 민주노총이 지지했던 민주노동당은 분당됐고, 다시 통합하면서는 한 축이 떠나고 새로운 이들이 들어왔다.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현재로서는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더, 이석행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조직을 대부분 이끌고 간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마저 제 자리를 잡지 못해 '당무 거부'를 일주일 가까이 이어가고 있는 민주통합당에서, 민주노총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몇 배는 더 암투가 치열할 이 당에서, 노동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한때의 대선주자마저 '왕따'가 되는 민주통합당에서, 이석행이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비정규직과 노동자의 문제에 힘을 쏟기 위해 간다"는 그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노동자 이석행이 '의원'이 되고, 또 당의 중심이 되고, 나아가 언젠가는 당 지도부가 될 수 있다면 노동자에게 좋은 일 아닌가. 그의 선택에 대한 비난은, 아직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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