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스팀다리미로 역사를 펴려는 사회에 맞서, 오월 어머니들의 주름이 말하는 진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스팀다리미로 역사를 펴려는 사회에 맞서, 오월 어머니들의 주름이 말하는 진실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에서 열리는 김은주 사진 개인전 《어매의 시간과 주름》

서울 구로구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에서 9월 11일부터 11월 28일까지 사진작가 김은주의 개인전 《어매의 시간과 주름》이 열린다. 박만우 관장이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오월어머니>(2011년 시작, 이후 2020~2022년 4점 추가) 37점과 <치유되지 않은 빛>(2020~2022) 8점, 도합 45점이 걸린다.

작가가 카메라를 들이댄 곳은 전남 화순 너릿재, 남광주시장, 학동삼거리, 505보안대, 국군광주통합병원 같은 이름들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치는 골목이고 시장이지만, 남편을 잃고 자식을 먼저 보낸 오월 어머니들에게는 숨이 끊어진 자리다.

용산동 이장 선종철은 집 앞에서 군인의 조준 사격에 죽었고, 남편 기종도를 광주교도소 옥사로 떠나보낸 박유덕, 계엄군 곤봉에 맞은 뒤 후유증으로 2004년 11월 30일에야 세상을 뜬 홍운석의 아내 임현서, 국군통합병원에서조차 치료를 다 받지 못하고 구금과 취조로 끌려다닌 이남순, 505보안대 지하실에서 고문당한 뒤 1981년 12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차명숙까지, 사진 속 얼굴들은 모두 국가가 세운 번듯한 기념탑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다.

공식사적지에는 동판과 조형물이 들어서지만, 이 시장통과 골목은 그냥 잊힌다. 작가는 그 잊힌 자리에 어머니들을 다시 세워 순간이나마 ‘기억의 사원’으로 되살린다. 작가 자신이 인용한 소설가 한강(1970~)의 문장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은 눈과 귀와 허파가 이미 사원이었는지도 모른다.

데리다가 광주에 오다: 대리보충과 차연

흥미로운 지점은 2020~2022년 사이 되찾아 찍은 <오월어머니> 신작 네 점이다. 5·18민주광장 분수대, 전남도청, 505보안대를 배경으로 한 이 사진들은 2011년 연작이 사실 ‘완결’되지 않았음을 뒤늦게 증명한다. 여기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대리보충’ 개념이 등장한다. 원래 완전하다고 여겨지던 것에 나중 것이 덧붙여지면서, 사실은 처음부터 결핍이 있었음이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국가가 아무리 배상금을 지급하고 기념관을 세워도 애도라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리다의 또 다른 개념인 ‘차연’도 이 전시의 뼈대다. 완성된 서사, 봉합된 상처, 깔끔하게 마무리된 스펙터클을 거부하고 고통의 빈자리를 계속 환기하는 전략이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제 됐다, 치유되었다”고 선언하는 순간 오히려 피해자 개인의 고유한 고통은 지워진다는 발상이니, 위령제나 기념식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매끈한 추도사를 떠올리면 뜨끔할 만한 이야기다

주름, 펴지 않아도 되는 이유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주름’은 두 겹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공간적 주름으로, 팬포커스 기법과 정방형 프레임으로 원근감을 눌러 찌그러뜨려 사진에 촉각적 질감을 만든다. 다른 하나는 시간적 주름으로, 방치된 건물의 균열과 유가족의 얼굴에 패인 주름을 나란히 놓는다. 무너진 병원 천장이나 벗겨진 벽체는 세월의 풍화가 아니라 국가폭력이 공간에 새긴 흉터고, 어머니들 얼굴의 주름 역시 2차 가해 속에서도 버텨낸 생존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박만우 관장은 도록 에세이에서 “피부나 벽면을 다리미로 펴듯 매끄럽게 만드는 것은 망각과 은폐의 시도”라고 썼는데, 곱씹을수록 절묘한 비유다. 역사에도 스팀다리미를 들이대는 이들이 늘 있었으니 말이다. 주름을 펴 버리면 옷은 새것처럼 보이지만 그 옷이 겪은 시간은 통째로 거짓말이 된다.

오프닝 현장에서 생긴 일

9월 11일 개막식에는 광주 오월어머니집 어머님 스물두 분이 함께해 주셨다. 사진 속 얼굴과 객석의 얼굴이 겹치는, 흔치 않은 자리였다. 이날 역사학자 한홍구(1959~)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트라우마센터 건립사업과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사업을 소개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헌정 질서를 짓밟은 이들의 행적을 시민의 힘으로 기록해 내는 작업으로, 한 교수가 책임편집인을 맡고 있는 바로 그 프로젝트다.

소개가 끝나자 어머님들이 잠깐 자리에 모이더니 저마다 쌈짓돈을 꺼내 50만 원을 후원금으로 내놓으셨다. 거창한 축사도, 화환도 아니고 주머니 속 지폐 몇 장이었다. 국가가 수십 년 걸려도 다 못 갚은 빚을, 정작 그 빚의 채권자들이 서로의 주머니를 털어 되갚으려 한 셈이니 이보다 더 한국적인 아이러니가 있을까 싶다. 공식 행사장에서 흔히 보는 억대 후원금 봉투보다 이 오만 원짜리 몇 장이 훨씬 무겁게 느껴진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전시회를 찾은 오월어머니회 어머니들과 찍은 기념사진. ⓒ필자 제공

2024년 12월 3일, 그리고 오늘 우리는 왜 이 전시를 봐야 하는가?

이 전시가 지금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라는 단어가 44년 만에 다시 뉴스 속보로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새삼 깨달았다. 국가폭력은 박물관 유리상자 안의 과거가 아니라 언제든 현재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관심은 몇몇 지휘부의 재판 결과에만 쏠리고, 그 사이 스러진 일상과 개개인의 트라우마는 다시 통계 속으로 흩어지고 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활동을 마친 뒤에도 미완의 기록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는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은주의 사진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교훈을 준다. 국가폭력의 청산은 특별법 하나, 위원회 하나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계속 되짚고 다시 찾아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 공식 사적지에 동판을 박는 일도 필요하지만, 시장통과 골목,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옛 병원 같은 자리를 잊지 않고 불러내는 일이 더 절실하다는 것. 그리고 그 청산의 몫을 정작 가장 크게 짊어져 온 이들이, 오늘도 자기 주머니를 털어 그 짐을 나누려 한다는 것. 오월 어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이 증명하듯, 애도는 봉합이 아니라 계속 벌어진 채로 존중받아야 할 상처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어매의 시간과 주름 The Time of Old Ma and Foldings: 김은주 사진 개인전

• 장소: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 일시: 2026년 9월 11일 (금) – 11월 28일 (토)

• 참여 작가 : 김은주

• 전시 기획 : 박만우 (스페이스99 관장)

• 주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 후원: (주)빙그레

• 개관시간: 화-금 오후 2시 – 오후 5시 / 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휴관일: 공휴일, 일·월요일

* 작가와의 대화

2026년 10월 10일 (토) 오후 3시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