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의 가해자·기록·회복·기억을 이틀 동안 다 헤집는다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사회과학대학 대강의실에 9월 18일부터 19일까지 연구자, 활동가, 조사관, 법조인이 모인다. 이름하여 '2026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 부제는 「가해의 심도와 치유의 길: 과거사 정리의 전환과 모색」이다. 작년에 처음 열려 젊은 연구자와 활동가가 많이 모였던 자리인데, 올해도 이틀 내내 국가폭력, 기록, 회복, 기억을 파고든다. 개회사는 강원대 통일강원연구원 송영훈 원장이, 축사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송상교 위원장이 맡는다.
가해자를 색출하는 시간
첫날 첫 마당의 제목은 「국가폭력의 구조와 가해자들」이다.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김상숙은 한국전쟁 당시 영천의 학살을, 최태육은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작업을, 방학진은 고문 기술자들이 훈장까지 받은 사연을 발표한다. 노용석은 라틴아메리카의 가해자 처벌 문제를 짚는다. 여기서 잠깐,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7년 집권 동안 수천명을 고문하고 죽였지만 정작 법정에서는 늙고 아프다는 이유로 재판을 여러 번 피해가다 천수를 다 누리고 죽었다.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가 겪은 것은 결국 "가해자는 늙어 죽고, 기록은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는다"는 익숙한 결말이다. 한국의 과거사정리도 이 결말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 다들 궁금해 할만 하다.
기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둘째 마당은 「과거사정리, 기록관리는 작동하고 있는가」다. 심성보는 과거사위원회 기록이 흩어지고 사라지는 현실을, 김신석은 사회적 참사 조사 경험을, 오경한은 입양기록물 문제를 다룬다. 기록이라는 게 참 얄궂다. 가해자는 서류를 태우거나 숨기는데, 피해자는 평생 그 서류 한 장을 찾아 헤맨다. 셋째 마당 「진실규명 결정 이후 회복의 법제도」에서는 임재성이 덕성원 사건을, 이주언이 배상을 넘어선 존엄 회복을 이야기한다. 국가배상 판결 하나 받으려면 몇십 년이 걸리는 나라에서,"회복"이라는 단어는 참 사치스럽게 들릴 때가 많다. 첫날 저녁에는 식사와 교류회가 이어지는데, 낮 동안 학살과 고문이야기를 듣고 저녁에 술잔을 부딪치는 이 낙차가 이 대회의 묘한 매력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판을 새로 짠다
둘째 날은 「차세대 연구자·활동가 세션」으로 문을 연다. 정순임과 강미경은 제주 4·3의 연좌제와 구금 피해를, 김소현은 2014년 멕시코 게레로주에서 학생 43명이 실종된 아요치나파 사건을, 오은영은 엘살바도르 내전기 학살 매장지 위에 쓰레기 매립장을 지으려는 계획에 맞선 운동을 소개한다. 이언제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이시성은 전병순(田炳淳, 1929~2005)의 소설 『절망 뒤에 오는 것』을 통해 여순사건의 문학적 재현을 짚는다. 전병순은 1948년 여수여자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그해 10월 여순사건을 직접 겪고, 이를 소재로 소설을 써서 1962년 여류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국가가 반란군의 소행이라 우기던 그 사건을, 한 여성작가가 정부의 민간인학살로 정면에서 그려냈다는 사실은 지금 봐도 대단한 배짱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배우는 불편한 진실
이 대회의 흥미로운 점은 한국만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멕시코, 엘살바도르, 라틴아메리카의 사례가 계속 등장하는데, 결론은 대개 비슷하다. 진실은 밝혀져도 가해자는 좀처럼 벌받지 않고, 피해자 지원은 예산 핑계로 축소되고, 시간이 지나면 여론은 다른 뉴스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벌써 몇 기째를 거듭하며 진실규명 결정문만 쌓아가고 있고, 그 결정문이 실제 배상과 사죄로 이어지는 비율은 여전히 낮다.
과거사를 밈으로 씹어먹는 시대
둘째 날 오후 「회복과 치유로 가는 길」에서는 엄경선이 납북 귀환 어부 피해를, 박명배가 안동대학교 김영균(1971~1991) 분신 사건의 배후 조작 문제를, 강성호가 여순사건의 기억과 치유를 다룬다. 김영균은 1991년 5월 1일, 노태우 정권에 항의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고 다음날 숨졌다. 그런데 정작 죽음 이후 안기부는 있지도 않은 배후 조직을 조작해 12명을 구속시켰다는 것이 박명배 발표의 핵심이다. 가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 이후에도 조작으로 이어진다는 뼈아픈 사례다. 마지막 자유토론의 주제는 더 도발적이다. "알고리즘 시대의 과거사정리: 왜 디지털 세대는 과거사를 '밈'으로 소비하는가?" 학살과 고문의 역사가 몇 초짜리 짧은 영상 속 우스갯소리로 소비되는 시대, 진지한 연구자들이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한국에 남기는 숙제
이 대회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들이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 라틴아메리카식 결말, 즉 늙고 아프다는 핑계, 기억이 안 난다는 변명, 지지세력의 결집이 낯설지 않게 반복된다. 이 대회가 하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고, 기록을 남기지 않고, 피해자를 방치하면 화해는 말뿐인 구호로 끝난다는 것이다. 12·3 내란 이후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도 다르지 않다. 처벌은 언제 끝까지 갈 것인가, 기록은 누가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디지털 세대가 밈으로 소비하지 않고 진지하게 마주하게 할 방법은 무엇인가. 강원도 산자락에서 벌어지는 이 이틀간의 토론이 그 답의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던져주길 바랄 뿐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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