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듣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한 첫날, 이란에 있는 여자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져 175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여자 초등학생이었다. 한쪽에서는 포탄이 떨어져 무고한 생명이 죽고 다른 쪽에서는 치솟는 유가와 가스비에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중동 지역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공공기관과 학교에 주 4일제를 도입하거나 휴교하고 연료 배급제를 시작했고 개인 차량의 하루 주유량을 제한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번 위기가 1970년대 두 번의 오일 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충격을 모두 합쳐놓은 수준으로 이대로 위기가 계속되면 어떤 국가도 그 영향에서 안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도 당연히 전쟁의 영향에서 안전할 수 없다. 비상이 걸렸고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고유가 피해 지원금 지급, 차량 5부제를 넘어 2부제 시행 등 유가 급등에 대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불똥은 '쓰레기봉투 대란'으로 번졌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직접 나서면서 일단 수습되는 것 같았지만 전쟁 여파로 석유화학제품 수급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비닐·플라스틱 대란' 우려는 커지고 있다. 비닐을 만드는 공장들이 원료 가격 상승으로 기계를 멈추고 있어서다. 비닐은 원유를 나프타로 가공한 뒤 이를 폴리에틸렌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 제작된다. 물량은 부족하지 않지만 비닐 생산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문에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종량제 쓰레기봉투부터 사재기가 시작된 것이다.
당장 각종 작물을 파종하는 농가부터 비상이 걸렸다. 농업용 비닐과 부직포 수급에 차질이 생기고 면세유, 비료 등 농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나프타를 수입하는 비중이 큰 국내 중소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가 나프타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등 수급 대책에 나섰으나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나프타는 플라스틱·합성섬유·합성고무 등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핵심 원료로 활용된다. 나프타를 분해하면 에틸렌이 나오고 에틸렌을 가공하면 비닐과 플라스틱의 직접 원료인 폴리에틸렌 등 합성수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정부 대책은 나프타의 유출을 막는 데에만 집중돼 있다. 나프타를 분해한 2차 소재의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구 건너편인 남반구에서는 전례 없는 폭염과 산불이 국토를 집어삼켰다. 2026년 초 호주와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지역은 5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염과 그로 인한 통제 불능의 대형산불로 심각한 기후 재앙을 겪었다. 호주에서는 50도에 육박하는 전례 없는 폭염과 산불로 주민이 대규모로 대피해야 했고, 칠레 남부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대도시 인근 해안 마을까지 덮치면서 마을의 80%가 잿더미로 변했고 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로스 알레르세스 국립공원의 3천 년 된 고목들이 화재 위협에 노출됐고,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10년 만에 최악의 산불 시즌을 맞닥뜨려야 했다.
전쟁과 석유 등 에너지, 폭염과 같은 기후 위기는 얼핏 별개처럼 보이지만 사실 '화석 연료'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돼 있다. 특히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전쟁은 전 세계가 직면한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주목할 점은 과거와 달리 에너지 공급망 자체를 정밀 타격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 그리고 이에 대응한 이란의 보복은 상대방의 에너지 시설을 겨냥했다. 에너지 시설이 파괴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국제 유가는 단숨에 폭등했다. 에너지가 안보의 도구이자 전쟁의 목표가 되는 순간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시민들의 일상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에너지 시설 타격은 전 세계 원유와 가스 가격을 폭등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구의 대기에도 치명적인 상흔을 남겼다.
이번 전쟁으로 단 14일 만에 배출된 온실가스가 약 560만 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슬란드의 연간 배출량을 단 2주 만에 쏟아낸 것인데, 무기 사용과 전투기·함선 운용, 석유 저장 시설과 민간 인프라 폭격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아직 끝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온실가스는 약 3억 1100만 톤으로 추정되며 프랑스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공격한 1년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도 약 3300만 톤에 달하는데 이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요르단 같은 국가의 연간 배출량보다 많다. 전 세계 군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총배출량의 약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는 군사 부문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군대와 전쟁은 기후 위기를 가속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통제 불가능한 변수다.
전쟁은 그 자체로 기후 재앙이다. 탱크와 전투기가 뿜어내는 막대한 탄소 배출량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의 비극은 포성이 멈춘 뒤에도 계속된다. 가자 지구와 중동의 파괴된 도시들을 재건하고 주택을 다시 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은 해당 지역 국가들의 수십 년 치 감축목표를 단번에 무력화한다. 폭탄 하나가 떨어질 때, 우리는 그 건물을 짓기 위해 들어갔던 과거의 탄소와 그것을 치우고 다시 짓기 위해 필요한 미래의 탄소를 동시에 낭비하는 셈이다.
이처럼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은 인류가 수십 년간 쌓아온 감축 노력을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든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은 당장의 생존을 이유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게 만들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예산을 국방비로 돌리게 한다.
한국은 에너지의 약 93%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 및 정제원료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서, 천연가스는 호주와 카타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전량 수입하며, 석탄은 호주와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렇게 수입된 원유는 산업 부문(정유, 석유화학 등)과 수송 부문에서 대부분 소비되고, 가스는 산업과 난방, 전력 생산에, 석탄은 전력 생산과 산업(특히 철강)에 사용된다. 이처럼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대부분 화석연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전쟁 등 외부 충격에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제주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이제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면 미래가 매우 위험하다"며 "대한민국은 전체적으로 재생에너지로 정말 신속하게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31일 의결한 '중동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보면,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화석 연료 가격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체 추경 예산(26조 2000억 원)의 약 20% 수준인 5조 1000억 원을 전 국민 유류비·교통비 경감 사업에 쓰기로 했는데, 이 중 4조 2000억 원은 정유사 손실 보전 등 석유 최고가격제 지원에 배정됐다. 반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지원과 소상공인 전기화물차 지원 등을 포함하는 에너지 전환 예산은 5000억 원에 그쳤다. 이제는 말이 아닌 근본적이고 담대한 정책과 예산이 정말 필요한 때다. 연료(석유) 전환을 넘어 원료(나프타)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에너지 위기와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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