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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에서 나이 들고 싶다"는 말의 무게

[서리풀연구通]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 모두 여든을 넘긴 나이에 여러 병을 얻은 지 오래되셨다. 두 분은 늘 "자식들한테 손 벌리고 살지 말아야지"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아파도 꾹 참으시고, 병원비 걱정에 병을 키우셨으며, 입원하셨을 때도 면회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분의 말과 행동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엄마와 이모에게 "너희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며 자신을 돌볼 것을 계속 요구하셨고, 시설에 "버리지 말라"고도 하셨다. 오랜 기간 동생을 돌보았던 이모는 이제 외할머니의 보호자가 돼 직업처럼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친할머니는 몇 번이나 스스로 시설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남편과 사별하신 후에는 양로원이나 노래교실을 다니며 슬픔을 달래셨지만, 거동이 힘들어지시면서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장을 보러 가는 일도 버거워지자 요양보호사가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해드렸다. 최근 병원에 며칠 입원하신 뒤에는 병원 생활이 더 편하시다며, 냉장고를 다 치워달라고 하셨다. 그래야 자식들이 자기 뜻을 알 것이라고 하셨다.

두 분이 아픈 자신과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보이신 모습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달라졌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두 분 모두 '오랜 기간 살아왔던 집'에서 최대한 오래 살고 싶어 하셨다. 이는 우리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정읍시에서 연구 업무로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점은, 한국 농촌에서 '집'은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었다. 집 옆의 텃밭, 농사짓는 땅, 함께 사는 동물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들, 그리고 부모님 때부터 살아온 가족의 흔적까지 모두가 얽혀 있는 공간이었다.

▲장마철을 앞두고 더운 날씨를 보인 19일 경북 고령군 개진면 한 양파밭에서 농민들이 머리에 양산을 쓰고 양파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무렵 접하게 된 한 연구는 '농촌에서 만성질환(오래 지속되고 관리가 필요한 질병)을 가진 독거노인'이 집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와 이를 위해서 어떻게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고자 했다.

연구자는 65세 이상 노인 18명에게 3개월 동안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질문은 계속 집에서 살고 싶은지, '집'이 어떤 의미인지, 살던 집에서 살면 어떤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는지 등이었다. 연구 대상자는 여성과 남성 각각 9명이었으며, 평균 65.6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시설로 간 후에는 평균 13년 동안 혼자 살았다. 이들 모두는 하나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었으며, 돌봄 서비스나 건강 관련 방문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노인들은 자신의 고향이 곧 가족의 뿌리이며 지역 공동체와 전통이 함께 살아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 공간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였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두렵기에 불편함이 있어도 살던 집에 머무르고 싶어했다. 자식들의 집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며, 자신이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꺼리셨다. 시설에 가면 가족과의 관계가 끊기고, 신체적·인지적 기능이 더 빠르게 나빠질 것이라고 믿으셨기에, '마지막 수단'으로 인식했다.

살던 집은 이웃들이 근처에 살며, 도움을 받으며 사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병원까지 이동이 힘들고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추운 날씨에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쓰러져도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래서 가족, 요양보호사, 생활지원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반찬이나 생필품을 지원받기도 하였다. 병원 진료와 건강검진을 받으며, 꾸준히 운동을 하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혼자 살 수 있고,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존해야 하기 전까지는 살던 곳에서 나이들어가고 싶어했다.

연구자는 이를 '지키기-견디기-활용하기-살아가기'의 4단계의 과정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농촌 독거노인의 특성을 고려한 돌봄이 필요하며, 그들이 익숙한 환경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보건소나 경로당을 중심으로 한 건강검진, 신체활동, 사회적 교류 프로그램도 지금보다 더 확충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렇기에 노인들이 집에서 나이 들고 싶어한다면, 그 선택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의 두 할머니처럼 누군가는 집에서, 누군가는 시설에서 살고 싶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병들고 나이 들어가는 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왜 집에서 살고자 하는지, 그리고 자녀의 집이나 시설이 왜 두렵게 느껴지는지 이 연구를 통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 이들을 두렵게 하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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