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경북 경산시의 한 공장에서만 이주노동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넷이 골절상이었다. 32세 베트남인 A 씨는 양발 뒤꿈치가 모두 으스러져 입원했고 또 다른 32세 베트남인 B 씨는 척추, 발목, 양 발뼈가 부러졌다. 나머지 베트남인 둘도 모두 발뼈가 골절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1월 31일엔 인천에 있는 한 목재 야적장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C 씨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보호 장비가 없으면 흡입 후 4시간 만에 사망에 이르는 약품 흡입에 따른 사망이었다. 미등록 신분인 C 씨는 8일 전인 23일, 갑자기 들이닥친 출입국사무소 공무원들 단속을 피해 공장의 나무 저장고로 피신한 터였다. 그러다 8일 후 시신으로 발견됐다.
모두 올해 출입국사무소 미등록 이주민 단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확인된 부상·사망 사례는 이 외에도 수 건이 더 있다. 이마저 이주인권단체에 의해 확인된 일부 사례다. 이 와중에 법무부는 15일부터 오는 6월까지 77일간 경찰청·해양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와 함께하는 1차 집중 합동단속을 실시한다. 집중단속은 이주민 커뮤니티 사이에선 '인간사냥이 더 심해지는 기간'으로 통한다.
이에 100여 개 전국이주인권단체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사람은 없다.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정부 합동단속을 중단하라"며 "미등록 이주민의 인권과 체류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박희은 경기이주평등연대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최근 경기도 지역에는 출입국 단속이 너무 심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밖에 다니지 못한다"며 "이주노동자 지원센터에 긴급 의료비 지원 신청 문의도 예년에 비해 상당수 줄었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최근 인천의 한 건설 현장 점심시간에 출입국 공무원이 식당에 난입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폭력을 행사하는 걸 찍은 영상을 봤는데, 마치 조직폭력배를 검거라도 하는 듯했다"며 "출입국 단속반원들은 무법천지의 권한을 부여받은 것 같고, 이주노동자들을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대하며 사냥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난민 신청자들의 피해 사례도 속출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26일 에티오피아 출신인 한 이주민은 공장에 들이닥친 양주출입국 단속반을 피해 대형압축기계 쪽에 몸을 숨기다 기계에 오른쪽 다리가 끼어 발목이 절단됐다. 지난 2월 26일엔 경기 화성의 한 공장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3층에서 추락해 온몸에 골절상을 입었고 8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는 "(정부 단속을 피하다가 추락해 숨진 미등록 이주노동자) 딴저테이 사망사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단속 시 인명피해가 없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강압적 조치를 자제하며 안전매뉴얼을 만들도록 하는 권고를 했음에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며 "법무부는 오로지 단속 결과를 숫자로 세고 법무부의 성과로 자랑삼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는 관심 밖"이라고 비판했다.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원인은 이주민의 체류권을 보장하지 않는 정부의 잘못된 출입국 정책과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폭력으로 불안과 공포를 일으키는 강제이주노동제도 때문"이라며 "미등록 숫자를 줄이겠다며 정부가 강제 단속, 추방의 칼날을 휘두를수록 미등록 이주민들은 더욱 숨을 수밖에 없고 생활과 인권은 더욱 열악해진다"고 말했다.
발언에 나선 필리핀노동자공동체의 존스 갈랑 씨는 "1997년 금융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경제를 유지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게 했다"며 운을 뗐다. 그는 "고용허가제는 정당한 이직의 자유마저 제한하고,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사안에도 고용주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계절노동자는 비자 신분에 제한을 받고 가사 노동자는 일터에서 노예 취급을 받는다"며 "법이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복지를 적절히 보호한다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이주인권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지난 수십 년 간의 한국 사회 이주민 역사에서 단속은 정부가 바라는 미등록 이주민 숫자 축소도, 가장 취약한 미등록 이주민의 인권 상황 개선도 실패했다"며 "한편에서는 이주민 유입을 늘리려고 지자체별로 이주민 유치 경쟁에 나서는데, 한편에서는 일하면서 살아온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해서 쫓아내는데 골몰하고 있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 추방의 대상으로만 삼을 게 아니라, 과감한 사면 정책, 체류권 부여 정책을 통해 법 테두리 내로 포함해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선진적이고 발전적이다"라며 "단속 추방 정책 중단과 미등록 이주민 체류 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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