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릴 시간도 주지 않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윤석열 파면 나흘 만에 차기 헌법재판관 후임을 지명했다.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해야 한다"고 지난해 12월 본인이 직접 한 발언, 법제처 발간 자료, 국회 입법조사처의 유권해석 결과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정이다. 월권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정하는 후보들의 면면도 상식적이라 보기 어렵다. 한 명은 내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할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운행수입금 2400원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버스 노동자를 해고한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인물이다.
내란 세력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며, 법원과 검찰도 이에 조응하고 있다. 내란수괴 피의자에 대해 법원이 구속을 취소하고 검찰은 항고를 포기했다. 노골적인 특혜라고밖에 볼 수 없는 조치였다. 지하주차장을 통해 법정에 출석하도록 허락하고, 형사재판에서 법정 내부 촬영을 거부하는 등 특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와 내란 세력에게 합당한 법적 책임이 실제로 물어질 수 있을지 여전히 우려된다.
그뿐만 아니라 내란 수괴가 직무 정지된 이후에도 부적절한 인사와 정책 추진, 거부권 행사 등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직접적 내란 세력은 아니지만 그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이들 또한 마지막까지 기회를 활용하려 한다. 이를테면 국가의 책무를 회피하고 자본의 이윤을 확대하려는 윤석열표 의료개혁은 직무 정지와 파면 이후에도 중단없이 강행되고 있다. 한편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폭력적이고 비인권적인 단속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은 사회 변혁이 단절적인 사건이나 일정한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어렵게 대통령을 파면시켰지만 그것만으로 구조적 고통이 사라진 세상이 자동으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내란 세력의 반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내란 수괴를 비롯해 일반 사람들과 괴리된 소수 권력자들 시각에서 보면 비상계엄을 통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만들려 했지만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해 좌절된 셈이다. 결국 각자의 전략과 실천이 사회 구조와 국면을 변화시키고 우리는 그 변화에 다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지금보다 평등하고 모두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정부, 자본, 시장 등 다양한 반동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며 변혁해 나가는 과정 안에 있다.
이를 고려하면 지금의 국면에서 내란 잔당들의 행태에 단호히 대처함과 동시에 지치지 않고 장기적인 변혁을 도모하려는 시야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대통령을 파면시켰다고 지나치게 낙관한다면 이후 변화가 더디게 느껴지는 일상을 마주하며 더 큰 좌절과 냉소로 빠질 수 있다. 반대로 헌법재판관이 내란 세력에 의해 임명된다거나 기대와 달리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관하는 것 또한 희망과 동력을 잃게 만든다. 무엇이든 단기적 현상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변혁을 준비하고 이를 끊임없이 추진하는 여정의 목표는 단순히 정권을 교체하고 현재진행형인 내란을 종식하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구조와 토대를 변화시키고 모든 영역과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권력 분포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본, 임대인, 수도권 지역, 남성, 선주민 등에 대해 노동자, 임차인, 비수도권 지역, 여성, 이주민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는 책임 지지 않는 국가 권력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 권력 사이에서 사회 권력을 강화해 나가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전문가나 기득권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넘어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국가와 자본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무분별하게 이윤 추구를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필수적 서비스에 접근하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사회적 기준선을 높이는 작업이기도 하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던 것은 그들이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비민주적인 행보와 기득권을 위한 정책, 각종 스캔들을 힘으로 덮으려는 모습은 그전부터 퇴진을 요구하게 만들었지만 임계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87년 이후 확립되었다고 믿은 민주주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순간부터 사회 대다수 구성원이 '도를 넘었다'고 느끼고 행동에 나섰다.
사회 권력의 강화는 타인과의 연결과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각자의 고통만 끌어안은 채 사라지지 않도록 서로의 아픔에 공명하며 각자의 경계를 넓혀나갈 때 우리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지난 겨울 남태령에서 경찰의 차벽을 열어냈던 것은 여성과 농민의 연대였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앞둔 지난 주말, 광장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고 '돈과 권력이 아닌 시민들의 생명, 안전이 우선시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다짐을 다시금 공유했다. 이처럼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연대를 확장할 때 우리의 요구는 더욱 강력한 사회적 힘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저항을 넘어 사회 전반의 권력 구조를 다시 쓰는 기반이 된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의 연대를 통해 사회 곳곳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해체하는 긴 여정 위에 서 있다. 지금의 반동은 그 길 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이를 넘어설 힘은 바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 권력에 있다. 사회 권력은 변혁의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변혁이기도 하다. 내란 세력을 종식하는 일은 이 과정의 일부이며 그와 경쟁하거나 별개로 놓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그 모든 것을 함께 바꾸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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