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고령층, 이주민, 홈리스…디지털 행정 절차에서 소외받는 사람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고령층, 이주민, 홈리스…디지털 행정 절차에서 소외받는 사람들

[서리풀연구通] 홈리스 여성의 경험으로 바라본 디지털 전환의 딜레마

2016년 개봉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다니엘은 평생을 성실한 목수로 살아왔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상병수당을 신청하지만, 복잡한 절차와 비현실적인 기준에 가로막힌다. 결국 그는 상병수당 대신 실업급여라도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지만, 신청은 온라인으로만 가능했고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다니엘은 큰 어려움을 겪는다. 관공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관공서 직원은 관료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그를 외면한다.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던 중, 다니엘은 상병수당 항소를 기다리다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지며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영화는 디지털 행정 절차가 취약계층에게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철저한 신청주의에 기반한 복지제도가 사람들을 돕기보다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또한 기술 발전이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개봉한지도 벌써 10년이 가까워졌지만, 영화 속 장면은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서는 노인, 복잡한 온라인 신청 절차와 구직활동 증명의 부담 때문에 실업급여 신청을 포기한 60대 중장년층, 그리고 진료 예약 플랫폼 사용이 어려워 자녀의 소아과 진료를 받기 힘든 이주여성 등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은 디지털화가 홈리스 여성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본 질적 연구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관련논문 바로가기: 디지털화, 휴대전화, 인터넷 사용과 사회권과의 관계: 홈리스 여성들의 경험). 홈리스 여성은 신체적·정신적 질환,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며, 열악한 수면 환경, 외로움, 불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낮은 자존감과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는 등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취약성은 사회권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과 디지털 기술 활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사회권은 민주주의와 평등권의 확산과 함께 발전해 왔으며, 기본적인 복지 보장은 단순한 자선이나 연대의 차원이 아니라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사회권은 보건, 교육, 주거, 사회 보험 등 기본적인 복지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포함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책임이지만, 홈리스 여성의 경우 이러한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연구진은 홈리스 여성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 경험을 통해 이러한 디지털 도구와 의료 및 사회 서비스 접근성의 관계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연구가 수행된 스웨덴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기 보급률이 매우 높으며, 2017년에는 국가 디지털 위원회를 설립하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혁신을 주요 목표로 삼는 등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홈리스 여성들은 스톡홀롬에 위치한 노숙인 전용 1차 의료센터에서 모집되었다. 연구팀은 스웨덴어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노숙 경험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극심한 고통이나 불안을 호소하거나 폭력적·학대적 행동을 보이는 여성은 인터뷰에서 제외하였다. 귀납적 주제 분석을 통해 홈리스 여성들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에 관한 두 가지 주제가 도출되었다.

1. 휴대전화 소유의 조건과 상황

홈리스 여성들은 불안정한 생활로 인해 휴대전화를 분실하거나 도난당하는 일이 잦았으며, 이를 소유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연락처와 같은 정보를 저장하고 주치의와의 연락 유지, 나아가 치료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홈리스 여성의 경우 의료 서비스 및 사회복지 서비스 접근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2. 사회권에 영향을 미치는 홈리스 여성의 구조적 그리고 개인적 어려움

1) 구조적 어려움

홈리스 여성들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삶을 살며 휴대전화 사용을 위해 필수적인 전기, 와이파이, 전자 신분증(electronic ID)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휴대전화는 기본적인 통화와 문자 기능만 가능해 인터넷 접속이 어려웠다. 또한 일부 여성들은 스마트폰이 없거나 데이터 요금이 부담스러워 무료 와이파이에 의존해야 했는데, 와이파이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전자 신분증을 발급받으려면 본인 확인이 필요하고 일정 기간 동안 동일한 휴대전화를 유지해야 하지만 도난·분실로 인해 쉽게 신분증이 소멸되었고, 이로 인해 병원 예약이나 약 처방 갱신이 어려워졌다. 일부 여성들은 절차가 지나치게 번거로워 결국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2) 개인적 어려움

일부 여성들은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거나 기술을 배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꼈다. 홈리스 생활을 오래 하면서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기회를 놓친 경우도 많았다. 건강 문제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도 인터넷 사용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과거 공공기관과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사회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낮아 온라인 예약이나 전화 상담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다.

3) 극복전략

여성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시도했다. 이메일을 이용해 공공기관과의 소통 기록을 남기는 방식, 와이파이를 찾기 위해 쉼터나 호텔 로비 등을 이용하는 방식, 그리고 친구나 가족, 쉼터 직원의 도움을 받아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 등이 있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는 점도 강조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휴대전화와 인터넷 접근성이 의료 서비스 및 사회복지 서비스 이용 방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홈리스 여성들은 디지털 기술 사용에 있어 인터넷 연결, 기기 충전, 도난 위험, 기술적 한계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스웨덴 디지털화 위원회는 디지털화가 사용자들의 기술적 이해 없이 대규모로 시행될 경우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 연구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확인됐다. 접근성과 활용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디지털화가 여성 홈리스들의 건강권 실현을 돕기보다 오히려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생존이 우선되는 홈리스 상황에서는 건강 관리에 대한 개인적 참여가 더욱 어려워지고, 디지털화가 오히려 이들의 사회적 배제를 심화할 위험에 대하여 연구진은 경고한다.

최근 디지털화는 새로운 건강 결정요인으로 작용하며, 특히 취약계층에게는 디지털 건강 형평성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COVID-19 팬데믹 동안 의료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원격의료와 같은 대안이 제시되기도 하였으나 실효성을 거두는 데 한계가 있었다. 홈리스, 장애인,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은 복합적인 의료 및 사회적 요구를 지니고 있음에도 디지털 전환이 사회적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접근되기보다 활용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개인화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기술 접근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리터러시, 비용 부담, 콘텐츠의 적절성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단순한 디지털 접근성을 넘어, 취약계층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포괄적인 디지털 포용 정책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 서지정보

Klarare, A., Vamstad, J., Mattsson, E., Kneck, Å., & Salzmann-Erikson, M. (2024). Social rights in relation to digitalization, mobile phone, and internet use –experiences of women in homelessness: a qualitative study. Critical Public Health, 34(1), 1–16. https://doi.org/10.1080/09581596.2024.2342334

▲ 서울 종로구 한 지하 도보에 박스로 만든 울타리 속 노숙인의 침낭이 펼쳐져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