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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지금 '반정치'의 질병을 잔뜩 퍼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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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지금 '반정치'의 질병을 잔뜩 퍼트리고 있다

[장석준 칼럼] '정치'도 죽고 '법치'도 죽은 나라

지난주부터 이번 칼럼 주제로 써야지 하고 마음먹은 내용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7일 법원의 윤석열 구속취소 판결이 나오고 8일 실제로 내란 우두머리가 구치소에서 나오는 광경을 보고 나니 글을 쓸 의욕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당분간은, 이런 진창에서 동포와 함께 뒹구는 처지이면서도 마치 진창 밖에서 태연히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글은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심란해 할 일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과 법원의 형사 재판은 별개이고, 형사 재판만 하더라도 주범의 구속 여부는 최종 판결 방향과 별 관계가 없다. 내란 세력의 기세를 올려주려는 고도의 심리전에 이토록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아도, 도무지 용납이 안 된다. 헌법을 짓밟으며 친위쿠데타를 저지른 반역자가 어떻게 자유로이 시민 곁을 활보할 수 있는가? 대통령이 광기를 내뿜으며 을러대니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하수인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는데 막상 이들을 범죄로 내몬 자는 풀려나다니,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게 나라인가?

나라라고 할 수 없다. 나라라면, '정치'가 살아있고 '법치'가 통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도 죽고, '법치'도 죽었다. 우리는 지금 망국민 일보직전이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이 거부하고 파괴하려 한 것, 정치

지난 1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 정국의 진실이 있다. 그것은 지금 주도권이 윤석열을 중심으로 한 내란 세력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내란 세력은 가장 넓은 의미의 윤석열 지지층까지 포함하더라도 결코 상대적 다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주도권은 아직 저들의 손아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12. 3 친위쿠데타는 시간을 그 전과 후로 나누는 일대 '사건'이었다. 우선 형세부터가 그렇다. 사건을 일으킨 쪽은 내란 세력이고, 이를 진압한 다수 시민은 일단 저질러진 이 사건을 수습하는 쪽이다. 슬픈 진실이지만, 난동 상황에서는 난동꾼이 무대의 주인공이다. 난동꾼이 더는 어떤 짓도 못하게 제압되고 나서야 스포트라이트의 방향은 바뀌는 법이다.

게다가 친위쿠데타의 직접적 목표는 그날 밤 좌절됐지만, 그로 인한 효과는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 효과란 '정치'의 폭력적 중단이다. 윤석열은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통해 정치의 주된 제도적 무대인 국회, 지방의회, 정당을 모두 활동 정지시키려 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기관들인 언론과 노동조합, 시민단체까지 손보려 했다. 윤석열은 '정치 없는 세계', 즉 정치는 사라지고 통치만 있는 세계를 만들려 했다.

여기에서 '정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심오하게 들어가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주제다. 그러나 그저 생활인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정치가 집단을 만들고 유지하며 변화시켜가는 일이라는 정의(定義) 정도는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정치가 이런 일이라 짐작한다면, 집단 안의 다양한 사람들, 서로 사뭇 다를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을 조율하고 그때그때 합의를 만들며 극한 충돌을 최대한 막는 게 정치의 주된 숙제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만하다.

그러나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내내, 바로 이 '정치'를 하지 않으려 했다. 한사코 거부하고 심지어는 혐오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제6공화국 대통령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렇게 제1야당 대표를 범죄자로만 몰며 야당과 대화를 일체 끊은 전례는 없다. 3년 동안 거부권 행사로만 국회에 대꾸한 윤석열의 행태가 드러낸 것은 야당의 전횡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의 무지와 무능일 뿐이다. 스스로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고는 국회가 자기를 감금했다고 외치는 격이었다. 이것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비롯한 온갖 망상의 시작이었다.

▲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정연)

그러다 마침내 아예 정치가 박멸된 세상을 만들려고 12. 3 친위쿠데타를 감행했다. 다행히 군대를 동원한 작전 자체는 실패로 끝났지만, 정치는 실제로 중단되고 말았다. 제도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비상사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헌법이 규정한 정상적 정치 과정이 진행될 수 없다. 가뜩이나 윤석열 정부 내내 정치가 실종된 사회였는데, 이제는 내란 진압 절차 때문에 이 상황이 계속 연장되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은 12. 3 이후 한국 사회에 '반-정치'라는 질병을 잔뜩 퍼뜨려 놓았다. 지금 '극우파'라 불리는 윤석열 적극 지지층의 근저에 자리한 여러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윤석열처럼 정치 자체를 부정하거나 폐지해도 좋다는 태도다. 현 제1야당 대표의 대통령 선출을 통한 정권 교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면 12. 3 사태에 준하는 어떤 '비상'한 행동도 감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정서가 내란 우두머리 1인의 망상을 넘어 상당수 대중에게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기존 정치의 두 축 중 하나였던 국민의힘은 이런 '반-정치' 물결에 편승함으로써 자기 지반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참담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아무리 부패하고 저질스러운 정치라도 정치가 없는 쪽보다는 그래도 있는 게 백 번, 천 번 더 낫다는 진실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동서양의 적지 않은 이상주의자들이 정치가 사라진 세상을 꿈꿨지만, 현실에서 그런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그 정반대에 가깝다. 인류의 정신 수준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정치가 사라진 세상이란 일상적 내전일 뿐이다.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무제한적, 무차별적 폭력의 가능성에 노출된 위급 상황 말이다.

그래서 당장에 반드시 필요한 단 한 가지 과업은 12월 3일의 사건으로 시작된 국면에 확실한 매듭을 짓는 일이다. 정치가 존재하며 작동하는 사회로 하루빨리 돌아가는 일이다. 많은 시민들은 윤석열이 사회로부터 확실히 격리되고 내란에 대한 형사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는 광경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싶어 했지만, 이제 우리가 정치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로 여길만한 제도적 계기는 단 하나만 남았다. 헌법재판소 판결이다.

정치가 죽은 곳에 법치마저 죽다

정치가 잠시 잠 들었더라도 사회의 다른 장치가 제 몫을 다한다면, 시민들이 이처럼 불안과 불만에 휩싸이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이 다른 방파제를 믿고 차분히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장치란 '법치'다.

법치 역시 논란을 한 가득 몰고 다니는 말이다. 법률이 정치 뉴스보다 더 딱딱하게 느껴지는 만큼이나 '법치'라는 개념 또한 '정치'보다 더 현학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일단 생활인의 감각에 맞게 간결하게 정리한다면, 매뉴얼에 따른 국가 운영이라 할 것이다. 매뉴얼이란 물론 헌법과 법률 그리고 각종 규칙을 가리키며, 이런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라고 배치된 사람들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걸쳐 포진한 넓은 의미의 관료다.

물론 우리는 매뉴얼이 그다지 공정하거나 공평하지 못함을 잘 안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의 권리는 매뉴얼에 선명히 새겨져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들의 권리는 돋보기를 들고 찾아봐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리 질 낮은 정치라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이런 매뉴얼이라도 철저히 지켜지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돋보기로 봐야 할 매뉴얼 속 희귀한 내용들이 현실에서는 아예 자취도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가 잠 든 곳에서 매뉴얼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면, 권력과 폭력을 제한할 다른 어떤 문명적 수단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지난 석 달 동안 대한민국 국가기구는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내란 수사와 윤석열 체포 과정에서도 신물 나게 목격했지만, 지난 며칠 동안 법원과 검찰 사이에서 오간 미심쩍은 판결과 납득하기 힘든 결정은 그 절정이었다. 헌정을 전복하려는 친위쿠데타로 야기된 비상사태라면, 어떤 국가기구든 법률이라는 매뉴얼에 쓰인 내용을 가장 깔끔하고 담백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느닷없는 판례와 행간 읽기를 통해 매뉴얼의 문장이 가리키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시민들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난해한 수학 법칙을 동원해 황당한 '부정선거' 음모론을 뒷받침하려는 것과 유사한 지적 곡예가 판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어려운 법률 용어가 난무하는 이야기들 속에 헤맬 이유조차 없다. 상황을 이렇게 고약하게 만든 원인을 찾다보면, 거의 모든 가닥이 한 꼭짓점에서 만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1인에 대한 임명은 헌법이 하라고 한 일인데도 지금껏 하지 않고 있다. 반면 국회가 의결한 내란특검법에 대해서는, 헌법이 내란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일로 허용했다고는 도무지 해석하기 힘든 거부권을 행사했다. 만약 지금 박근혜 탄핵 때처럼 내란 특검이 활동하고 있었다면, 주말에 벌어진 황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행정부 관료체계의 맨 꼭대기에 있는 자부터 이렇게 매뉴얼을 하나도 안 지키고 있다. 정치가 잠시 멈춘 상황에서 법치로 공백을 메꿔야 할 공직자가 법치 아닌 다른 행위를 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어에는 이미 이런 행위를 칭하는 단어가 준비돼 있는데, 그것은 '정치질'이다.

정치질은 앞에서 말한 '정치'와는 전혀 다른 행위이고 또한 '통치'와도 다르다. 정치질은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거나 지위를 활용해 모략을 일삼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은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 각 조직 안에서 주로 어떤 행위에 능한지 질리도록 경험해왔고, 이를 칭하기 위해 '정치질'이란 말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국가와 모든 시민의 운명이 바람 앞 등불 신세가 된 이 비상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자가 정치질을 할지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저런 정치질로 지키려는 사익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미스터리다. 다만 정치뿐만 아니라 법치마저 작동하지 않는 이 상황보다 어쩌면 더 충격적이고 추악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다. 의지박약해 보이면서도 한없이 의뭉스러운 저 얼굴이 대한민국 고위 엘리트들의 민낯이다. 이런 진상이 드러난 이상, 이를 바꿔야 할 우리의 숙제도 더욱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상식의 확인

정치도 중단되고 법치조차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간다면,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국가를 다시 세우는 것뿐이다.

다만 더 두고 봐야 할 것은 모든 등불이 꺼져가는 중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단 하나 남은 등불이다. 헌법재판소 말이다. 제6공화국 헌법의 상징 중 하나인 이 국가기관만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법치의 충직한 수행 여부를 아직 증명하지 않은 상태다. 이 마지막 보루가 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그래도 제6공화국이라는 지반에 발 딛은 채 좀 더 안정적으로 새 민주공화국을 건설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실은 이 경우에조차 윤석열이 풀어놓은 난동의 씨앗이 우리를 힘들게 하겠지만 말이다.

제발 이런 역사의 연속적(단절적이 아닌) 전개의 연장선에서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서로 만나면 싸울 거리만 찾는 못난 놈들끼리 만나더라도, 주책없이 잔칫상을 뒤엎거나 그럴 궁리만 하는 구제불능의 사고뭉치만큼은 반드시 솎아 내야 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단한 진리나 윤리의 실현이 아니다. 이 상식의 확인이다.

▲9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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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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